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5월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집의 작디작은 마당 안에서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라 해도 꽃의 계절인 5월 초중순의 꽃소식.
4월과 5월의 정원을 디졸브 하는 백리향과 차가플록스는 비록 최고의 순간이 지나갔지만, 봄정원의 잔잔한 배경이 되어 여전히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팬지와 비올라는 절정의 순간. 4월 말까지 두세 송이 드문드문 존재감만 과시했던 팬지는 드디어 꽃이 폭발, 이 커다란 꽃이 화수분처럼 터지고 있다. 비올라도 형형색색 꽃으로 지은 꽃밥처럼 마당 곳곳에서 잔치상을 차리고 있다.
커다란 꽃을 화분 가득 채울 만큼 풍성하게 피어난 팬지는 씨앗부터 파종해서 몇 개월을 한 땀 한 땀 키워온 꽃이다. 파종의 세계는 씨앗 심기부터 새싹이 나는 발아의 과정, 그리고 본잎의 탄생과 꽃 피기까지 그 모든 순간이 놀랍고도 흥미로운 경험으로, 묘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또 내 손으로 처음부터 키워낸 꽃은 그 예쁨이나 애착뿐 아니라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도 느끼게 된다.
3월 중순 모종으로 구입한 로벨리아가 드디어 본격적인 개화를 시작했다. 두 손가락만 했던 로벨리아 모종은 한 달 반 만에 화분이 터져나갈 만큼 몸집을 키우더니 이제는 분홍과 파란 별의, 꽃으로 가득한 은하수가 되었다.
노지월동한 꽃들 중 5월의 첫 시작은 차이브였다. 3월 초부터 장미 앞쪽에서 장미에게 준 비료를 함께 받아먹으며 무섭게 자라기 시작했던 차이브는 이제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커버렸다. 덩치가 산만해진 차이브는 사방으로 잎을 산발하며 마당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래서 올해 봄까지만 꽃을 보고 정리를 하려고 한다.
차이브를 마주 보며 같은 분홍빛 계열이지만 조금 더 선명한 분홍 빛깔의 꽃이 피는 겹깃털동자꽃이 5월의 바람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적당한 키, 아담한 폭, 가지와 꽃대의 튼튼함,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 햇빛을 머금은 꽃의 빛깔 등 모든 것이 조화로운 5월 초중순 정원의 사랑스러운 꽃이다.
클레마티스는 2년이나 키웠지만 아직도 아래쪽에서부터 꽃이 채워질 기미가 안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도 잠시. 회색의 벽돌 벽 앞에 연꽃처럼 피어난 '리틀 머메이드'와 갈색의 나무 벽 앞에서 하얗지만 화려한 '더치스 오브 에딘버러' 두 클레마티스를 보고 있으면, 그 신비로움에 마비되어 눈을 뗄 수 없는 마법의 순간이 시작된다.
5월을 대표하는 꽃은 장미다. 우리 집 장미 중 개화 순서 일등의 장미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에버로즈의 '가든 에버스케이프'. 올해 들어 이 친구는 작년 1년 차 때와 비교하여 나무의 크기는 세배, 꽃 하나하나의 크기는 1.5배는 커질 정도로 성장 속도가 놀랍다.
단아한 홑겹의 이 가든 에버스케이프는 필 때는 다홍색, 질 때는 분홍색을 보여주는데, 고운 한복이 생각나는 전통미 가득한 투톤의 색을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여러 장미 중 일등으로 개화해 봄 여름 가을을 다 채우고 겨울 직전 가장 늦게까지 끊임없이 꽃이 피는 개화력 최고의 장미이기도 하다.
위의 꽃들 외에도, 덩치는 산만해졌지만 아직 하나 둘 꽃을 찔끔찔끔 보여주고 있는 숙근 제라늄 '버시컬러', 장미 앞에 심었지만 어느새 장미 기세에 눌려 위치 선정에 애를 먹고 있는 숙근 세이지 '뉴디멘젼 로즈', 초화들 사이에서 갈수록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 집 마당 원년 멤버 애기말발도리 '유키 체리 블라썸' 등도 5월의 초중순을 함께 하고 있는 마당의 식구들이다.
꽃을 보며 즐기는 5월의 하루하루, 이것이 바로 '행복 가드닝'일 것 같지만 가드닝의 세계는 그리 녹녹하지 않다. 어느새 진딧물이 장미의 새순을 가득 덮어버렸다. 작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잡아도 잡아도 끝없이 몰려오는 진딧물과의 싸움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우리 집 장미에게는 코니도를 비롯해 약을 전혀 안치기 때문에 님케이크 등을 통한 예방 방제나 손으로 잡아 죽이기 같은 원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다리를 타도 손이 안 닿는 덩굴장미 보니의 꼭대기 가지에 있는 진딧물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 그래도 고생을 사서 하기로 했으니 감당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이다. 손에 초록물이 들어도 부지런히 보이는 데로 잡아들이는 수밖에.
5월 5일 어린이날부터 이틀간 물폭탄이 떨어졌다. 요즘 날씨는 적당히가 없다. 비가 오기 전에는 28, 29도의 기온을 기록하며 한여름을 방불케 하더니 이번에는 여름 장마철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서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 피어 있는 꽃, 피기 위해 준비하는 꽃들이 다 쓰러져 버렸다.
독일 장미 '벨렌 슈필'의 수세가 짐승처럼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올해 특별히 욕심 내서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5일의 물폭탄 때문에 길고 굵은 가지들이 주저앉아 버려 밑에서 자라고 있던 초화들을 다 뭉개 버렸다.
그래서 코딱지만 한 정원에서 욕심은 금물이란 진실을 다시 한번 깨우치며 꽃봉을 대여섯 개 이상은 물고 있는 벨렌 슈필의 큰 가지 두 개를 과감히 절단했다. 또 비 맞고 치렁치렁해져 지저분해 보이고 꽃봉도 안 달고 있는 덩굴장미 보니의 새로운 가지들을 미련 없이 잘랐다.
물폭탄에 꽃들이 주저 않은 김에 구절초, 쑥부쟁이, 연분홍빛 소국 등 국화과 꽃의 가지치기를 해줬다. 국화과 꽃의 가지치기는 보통 5월 중순 전에 한 번, 7월 중순 전에 한 번 해주는 것이 좋다. 가지치기를 하면 적당한 키의 높이로 키우면서도 보다 풍성하게 꽃을 볼 수 있고, 통풍이 원활하게 되어 병충해 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니 성장하고 있는 꽃을 자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위질을 시기적절하게 해 주면 더욱 정돈되고 아름다운 정원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5월의 가드닝이다. 다사다난한 이 세상을 견뎌내고 마당 곳곳에서 하나 둘 꽃이 만개하고 있다. 나도 이 꽃들만큼 유연하고 단단해질 수 있을까, 정원을 보며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작은 마당에서 오늘도 비와 바람, 그리고 흙과 벌레와 함께 하는 5월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5월 1일~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