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진 테이프를 멈추고,
나를 고치기로 했다

심과 신의 균열

by 숨 Breath

호흡의 기억 - 프롤로그


이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줄 알았던 기록이다.

감정이 소진되어 텅 빈 가슴에 무감각이 내려앉고,

숨 쉬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시간.


그때 나는

머리로는 잊으려 애썼지만

몸은 끝내 기억하고 있었다.


떨림을, 진동을,

잊을 수 없는 호흡을.


이 책은

숨을 참았던 순간부터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순간까지의 기록이다.

탈진의 바닥에서, 무감각의 끝에서,

오랜 시간 묻어둔 떨림이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과정.


신과 심에 남은 기억.

시간은 흘러가는데, 몸과 마음은 멈춰 서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호흡이 나를 다시 부른다.


이건 나만의 숨쉬기였고,

어쩌면 당신이 잊고 있던 호흡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함께 숨을 쉬어 보자.



전체 여정은 4부로 이어지며,

브런치북으로 2권(1권 : 탈진에서 진동까지 / 2권 : 이름과 착지)으로 나누어 완결합니다.




1권 목차 (호흡의 기억 1 - 탈진에서 진동까지)


감정이 소멸한 바닥에서 시작해, 작은 호흡이 다시 내쉬는 순간까지. 무감각의 절정과 자아 해체, 그리고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떨림을 기록합니다. (전 2권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


1부. 감정의 탈진

-심과 신의 균열

-무감각

-홀로 간 여행

-확인과 부담

-낮과 밤의 역전


2부. 나는 누구인가

-두고 온 것

-섬세한 아이

-부서진 영혼

-최선의 사랑

-트리거


3부. 진동의 이름 - 1막. 남아있는 진동

-다시 울린 진동

-최초의 감각

-멀어짐의 흔적

-하나의 선택지




1부 감정의 탈진


<심과 신의 균열>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심신(마음과 육신)을 이끌고 나가길, 신(육신)은 비틀어진 보도블록에 발을 내디디며 지치더라도 가려는 길이 바른길이라고 심(마음)을 위로한다. 그동안 쌓아 올린 믿음이 나를 배신하지 않길 바라며.


원래 인생이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 투성이라며.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을 쫓으며 살아갈 수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 포기하면 나약한 거라며, 그만두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다잡는다.


견디는 무게는 내딛는 발을 더 무겁게, 매번 같은 길 위에 매번 같은 보도블록만 밟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수용할 수 없는, 공기조차 통하지 않는 꽉 막힌 사람이 되었다.


결국 마지막 숨을 쉬어야만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이 맞는가? 맞다면 나는 이제 와 왜 공허하며, 왜 모든 것이 의미 없어졌을까.




퇴사를 말할 당시, 두근거리는 마음 따라 분명 입술이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이것 또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더는 물러날 곳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늘어진 테이프처럼 울렁거렸다. 출퇴근길에 흔히 보이는 차들이 치고 갔으면 이란 생각을 할 땐 정말 오늘은 기필코 말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심장 소리에 그만둔다는 말이 묻힌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그분에겐 들렸나 보다. 그분은 크게 화를 냈다.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화내는 소리에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더욱 확신을 얻었다. 더는 듣지 않아도 되는 소리이다. 해방감을 느꼈다. 회사와 상의해서 퇴사 기간을 결정하려 했다. 그분은 이번 프로젝트까지는 하고 그만두라고 하셔서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잠시 나갔다 오시더니 이틀 뒤까지 근무하라고 했다.


갑작스러웠다. 당황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좋았다. 이미 굳어버린 표정에 거짓된 미소조차 얹을 수 없으니, 아무렇지 않은 척 몇 달을 더 버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이런 마음 상태로 일을 하는 건 회사에도 민폐일 것이다. 몇 년간 근무한 회사였지만 이렇게 며칠 만에 정리가 되는 게 한편으론 허무했다.


끝이란 항상 허무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반복되는 균열이 세상에 나를 이해할 곳은 없다며 자꾸 밀어낸다. 더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나도 돌아서기로 했다. 나 또한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떤 곳에는 혐오와 냉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사람 곁을 지날 때는 숨을 참기도 했다. 사람들의 말 뒤에 숨은 의도를 해석하며, 내게는 그냥 주어지지 않았던 것들을 경험 삼아 경계한다.


퇴사 후 만나는 사람마다 말한다. “요즘 얼굴이 좋아 보인다.”, “편안해 보인다.”


붙들고 있는 긴장이 조금은 놓아지고 있었다. 과부하가 걸린 것뿐이라고,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실은 쉽게 예민해지고, 긴장하게 되었다. 한없이 위축되고 나약해진 모습만 보인다. 무엇에도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다. 또 다른 시작에 앞서 두렵기만 하다.


관심을 보이다가도 난관에 부딪히면 쉽게 꺼져버리는 열정 따위. 볼품없다. 아무런 문제없어 보이는 신과 엉망이 되어 버린 심은 갈림길에 어느 길로의 타협도 하지 않았다.


주변을 적막으로 채우고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물러서 보니 많은 것들에 지쳐있는 내가 보인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결국 나를 지치게 했고, 이 사실은 내 근간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쉽게 답할 수 없기에 멈추어 서 있다. 고장 나버린 카세트와 같다. 늘어진 테이프를 다시 또 감기엔 이미 수없이 반복하여 되돌리려 노력했고, 결국 다시 돌리기엔 지쳐있었다.


새로운 테이프로 갈아 끼워야 한다. 그전에 고장 나버린 카세트부터 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새로운 테이프를 돌린다 한들 금세 또 늘어진 테이프처럼 울렁거릴 것이다.


무언갈 느끼기 위해 나부터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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