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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것들의 오후

EP.01 멈춰 있는 하루의 정적

by 마리엘 로즈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게 오늘의 전부였다.

비누 거품 속에 달이 한 조각 끼어 있었다.

말린 꽃잎은 아직도 향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 냉장고 불빛이 나보다 먼저 깨어났다.

고양이는 잠결에 세상을 용서하고 있었다.

텀블러 뚜껑 위로 빗방울이 구르고,
그 안에서 내 하루가 아주 천천히 식고 있었다.

양말 한 짝이 세탁망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창문 밖 구름은 내일의 계획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마우스 커서가 멈춘 자리에서
생각이 잠깐 산책을 나갔다.

책갈피는 늘 가장 외로운 페이지를 품고 있었다.

커피에 얼음을 넣었는데,
시간이 먼저 녹았다.

식탁 위에는 빵 부스러기 대신
어제의 대화가 흩어져 있었다.

햇빛은 유리잔을 통해 내 마음을 엿보고 있었다.

바람이 스치는 순간,
공기도 웃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게 오늘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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