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연애도, 운동 실력도 남들보다 느린 속도였다. 대학 시절 룸메 언니가 과제할 때 엉덩이 붙이고 앉은 지 한참이나 됐는데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내 모습이 선명하다고 했다.
어차피 평생에 걸쳐 어딘가로 가야 하는 일생이라면, 천천히 걸어가도 좋다.
보다 자유롭게, 다양한 나의 세상을 누비면서,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원하고 선택한 길 위에 당당하게 두 발 붙이고 있길 바라며.
자신을 향해, 세상을 향해 씩씩하기 걸어가고 있길 바라며.
-어차피 일할 거라면 원하는 일 할게요 255p-
뭐든 느린 사람이 바로 나다. 그렇지만 느린 만큼 끈기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기에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말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래, 이 속도가 나와 맞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다가도 빠른 속도로 일취월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지곤 한다. 주변인들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정말 끝도 없다. 벌써 나의 몇 배 이상의 돈을 모은 친구들, 본인만의 사업을 시작해서 자리 잡은 지인들.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 본 나인데, 평생을 함께 할 짝을 만나 결혼하는 지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나는 열 번 해서 안 되는 것이 어떤 이는 한번 만에 성공해 버리기도 하고.
나는 왜 다방면으로 느린 것일까? 상대적 박탈감은 나도 모르는 사이 찾아와 스며들곤 한다.
대학교 4학년 시절, 지도해 주신 교수님을 만나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 추억을 떠올리시곤 말씀하셨다.
졸업작품 준비하면서 비가 오는 새벽에 목공방에서 입채 패널 만들겠다고 밤새 씨름했던 나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며.
디자인대로 실제 구현하기 위해 교수님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밤새 작업을 했었는데 각의 형태가 잘 안 나 와 내가 이제 제발 그만 포기하기를 바랐다고 하셨다.
나의 끈기 하나는 인정하신다며 웃음 지으며 호탕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했던, 정말 불타오르는 열정을 갖고 계신 지도 교수님이셨기에 포기라는 단어를 생각하셨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 기억상으로는 나는 너무 힘들었고 교수님이 날 포기하지 않으신 걸로 기억하는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신 것과 서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다, 끈기. 주변인들이 유독 나에게 말해주는 장점이다. 초, 중, 고 시절 입 안에서 피 비린내 맛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꾹꾹 참고 달려 오래 달리기를 항상 순위권 안에 들었었다.
반에서였는지 전교에서였는지 1등 한 기억도 꽤나 많이 떠오른다. 너무너무 힘겹지만 조금만 더, 저기까지만 더.
그 '조금'이 쌓이고 쌓여 '조금'이 아니게 된다. 무언가를 하나 시작하면 운동이든, 기록이든, 취미든 오랫동안 이어나간다.
비록 나의 속도는 더디고 느린 편이지만, 이 끈기를 유 지해 나가야지만 큰 성장이 따를 것이라 예상된다.
모든 것이 느린 나에게 끈기란 생명줄이 되어 줄 지탱 요소가 될 것이란 것을. 이 집요한 끈기를 잃지 말자.
느리지만 부단한 노력은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라 믿으면서.
느리다는 것은, 그 안에서 숨을 고르며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스스로가 느리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책하지 말자. 느리지만, 그 속에 쌓인 경험들이 기어코 나의 서사가 되어 줄 순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