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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Sep 07. 2024

[장편소설] 삼백아흔 송이 장미꽃(22)

제22편 : 여자(13)

  [제22편] : 여자(13)



    바다는 한없는 무거움이다.

    바다는 가없는 가벼움이다.


    바다는 극도의 단단함이다.

    바다는 극단의 부드러움이다.


    바다는 지독히 배타적이다.

    바다는 지극히 포용적이다.


    바다는 증오를 먹고 산다.

    바다는 그리움을 먹고 산다.


    바다는 울음이다.

    바다는 웃음이다.


    바다의 그리움을 맨 처음 저울에 달아본 사람은 누구일까



  여기 와서 좋아진 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들 영휴가 너무 좋아하여 나도 덩달아 좋아진 점, 또 하나는 둘이 이렇게 매일 갯바위에 나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 아들은 처음엔 꽤나 낯설어했고, 서먹서먹해했다.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가 어린 몸으로 감내하기 쉽지 않았으리. 그러나 영휴는 나보다 먼저 이곳에 적응했다.

  머물고 있는 친구 시가(媤家) 바로 곁에 마침 초등학교 선생님이 계셔 사정 얘기- 빚더미에 앉아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도망쳐 왔으니 누구도 우리 주소를 알아선 안 된다는 식의 상황 -를 듣고 초등학생은 그런 요식 행위는 그리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말에 학교에 보냈더니, 분명히 처음에 힘들어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깐. 어느새 사귀었는지 친구라면서 집으로 데려오기도 하고 놀러 가기도 했다.


  “새댁 또 거기 나와 앉아 있네.”

  “새댁이 머꼬? 선상님 보고.”

  일어나 인사를 했다. 여기 와서 알게 된 이웃이다. 머리에 커다란 함지박을 이고 이 시간에 방파제로 가는 걸 보니 배가 들어올 때가 다 된 모양이다.

  “핵교 댕기는 큰아가 있어도 너무 고부니까 우짤끼고 새댁이라 칼밖에.”

  “그라도 선상님은 선상님인 기라.”

  멀어져 가는 소릴 들으며 빙긋이 웃었다. 여기 와서 낯선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나 하는 우려는 이내 시간이 지나면서 따뜻한 이웃 때문에 금방 잊혀 갔다. 누구든 나를 위로하려 들 뿐.


  IMF는 여기서도 통했다. 다들 젊은 여자가 이 어려운 시기에 사업을 하다가 망한 걸로 알고 한 마디라도 편하게 해 준다. 특히 옛날에 유치원 교사를 잠시 했다고 한 얘기가 어떻게 들어갔는지 그다음 날 이곳 유치원 원장이 마침 선생님 한 명이 필요하다고 찾아와 부탁할 때는 즉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거기 있을 때 비하면 형편없는 수입이지만 씀씀이가 적은 이곳에서 이 일만이라도 계속할 수 있다면 버텨내는데 충분히 도움 되리라. 물론 젊은 - 마흔을 앞둔 나이가 젊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음은 여기 있는 초중학교 다니는 여자아이를 제외하곤 몇 안 되는 영계에 속한다고 옆집 초등학교 선생님이 말해 주었으므로 - 여자가 아이 하나 데리고 이곳에 살러 왔다는 사실이 많은 화제를 낳고 있음을 알지만 동정도, 격려도, 비웃음도 다 나 하기 나름 아닌가.


  “어머니, 할머니께서 식사하러 오시래요.”

  우리 식사는 우리가 해 먹겠다고 했는데도 친구 시어머니는 혼자 먹기 적적했는데 마침 잘 됐다 하면서 함께 먹자고 했고, 그러면 내가 식사를 하겠다고 하자, ‘그럴라카믄 우리 집에서 나가삐라!’고 억지 부리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나중에 하숙비라도 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터다.

  “숙제는 다했어?”

  “예.”

  “짝지라든 여자애 하고는 사이가 좋아졌어?”

  그저께 아들애가 다른 줄에 앉은 여자애에게 저가 과제한 자료를 건네주는 걸 보고 그때부터 짝지가 말을 안 하더라나.


  “아뇨, 여자들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누구에겐 주면 되고, 누구에겐 주면 안 되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빙긋이 웃었다. 초등학교 오 학년의 연령으로 풀기는 아마 어려웠으리라.

  “네가 너무 매력적인 남학생이라서 그래.”

  “아녀요, 어머니.”

  슬쩍 옆으로 보니 얼굴이 빨개진다. 그 학교에서 엄마 대신 ‘어머니’란 호칭을 쓰는 유일한 학생이란 옆집 선생님의 말이 생각나 손을 끌어당겼다. 엉망인 엄마 아빠의 관계에서도 나무랄 데 없이 자라준 아이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상황을 너무도 슬기롭게 극복해 주니. 빵점인 엄마 아빠에 비하면 백 점인 아들. 그러나 지금보다 더 큰 아픔이나 충격을 받았을 때도 이겨내리란 보장은 없다. 나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따랐다. 다만 한 마디만 했다.

  ‘어머니가 끝까지 절 데리고 가 주신다면….’



  “무슨 일 있니?”

  친구 시어머니로부터 들어오면 부산으로 전화해 달라는 말을 듣고 건 전화다.

  “아니 무슨 일 있어서가 아니고 궁금해서 그래. 유치원에 일자리 얻었다는 얘긴 들었는데 넌 진짜 대단하다. 나 같으면 어디 혼자 놓이면 도무지 살아갈 자신이 없는데.”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야.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건방지겠지, 호호호.”

  “계집애, 넌 건방질 자격이 충분히 있어. 그리고 웃는 걸 들으니 너무 좋다. 영휴도 잘 지내?”

  “응, 그 애는 나보다 훨씬 나아. 벌써 저 때문에 여자 친구들 사이에 질투가 생겼나 봐.”

  듣고 있던 아들이, ‘어머니, 아니에요!’ 하는 소리를 무시하고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옆집 선생님 얘길 들으니 이미 자기 반에선 주목의 대상이래.”

  이래서 자식 가진 사람은 팔불출이 되나 보다.


  “어쩜, 피는 못 속이는가 봐. 너도 그랬잖아.”

  “내가 뭘 그래?”

  “너는 어느 좌석에 가도 주목의 대상이었잖아. 내가 얼마나 질투를 느꼈다구.”

  “으응 그으래? 예전에 미처 몰랐는 걸 걸 걸.”

  “계집애두 이젠 진짜 마음이 놓인다,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참 진짜 다른 얘긴 없는 거니?”

  “사실…”

  친구가 뜸을 들이는 바람에 갑자기 긴장된다. 친구가 뜸 들일 일이라면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목소리를 낮춘 채 묻지 않을 수 없다.


  “말해 봐, 누가 여길 눈치챘어?”

  “아니 그게 아니고 …”

  다시 말을 끄는 바람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뭔 일이 있어? 왜 그래? 네가 그러니까 나 무서워.”

  “아냐, 아냐. 그런 일이 아니라니까. 얼마 전에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어.”

  “그 사람이라니? 애 아빠 말이니?”

  정신이 없었다. 그 사람이 눈치챘다면 끝이다.

  “아니 애 아빠 말고 너와 사귀었다는 남자분 말이야.”

  “그이가 네 집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 알 리가 없어….”

  “네가 안 가르쳐 줬어? 난 네가 가르쳐 줘서 아는 줄 알았는데….”


  그이가 알아내다니? 유치원에선 아무도 알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는 완전히 비밀로 했다. 단지 그이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부산에 살고 있다는 얘기한 적밖에 없는데…. 그 정보만으로도 알아내다니? 한 순간 내 위치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보다 기쁨이 솟구친다. 훨씬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그 짐승보다 거기까지나마 그이가 빨랐다는 사실 때문에.


  (다음 호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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