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던가 - [박남준 시선집](2017년)
#. 박남준 시인(1957년생) : 전남 영광 출신으로 1984년 [시인]을 통해 등단. 현재 지리산 주변 하동군 악양면에 살며, ‘지리산 지킴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지리산을 사랑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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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늙음을 한탄하고, '젊을 때 좀 더 ~~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반성 류 글이 나오면서 '그래 늙으면 다 부질없는 거야' 하는 부정적 인식만이 소용돌이칠 때, 박경리 님은 몇 편 안 되는 시에서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하면서 늙음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했습니다.
그 뒤 노사연이 부른 [바램],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 /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란 노랫말에서 더욱 위안을 받았지요. 오늘 띄우는 이 시는 앞에 든 두 분의 시(노래)보다 제게는 더 다가옵니다. 늙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기에.
우리 민화나 수묵화 등에서 바위와 소나무는 주요 소재였습니다. 바위의 굳건함과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주는 상징 의미에 푹 빠졌으니까요. 그래서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는 그림의 주요한 재료가 되었고, 그런 그림 볼 때마다 마음이 정화됨을 느꼈습니다. 헌데 한 번 생각해 볼까요? 바위에 소나무가 자람은 바위 어딘가에 금이 갔는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홀씨가 싹 틔우고 뿌리내렸다는 뜻입니다. 바위는 절대 구멍이 나선 안 되며, 나더라도 그걸 감춰야 합니다. 왜냐면 그 틈은 바위에게 상처가 되니 상처가 덧나면 장차 심각한 상황까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처음 젊은 바위는 자신의 몸에 한 점 구멍 나지 않도록 철저히 봉쇄했건만 늙으니 결국 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결국 바위가 늙어 기운이 없어 틈을 만들게 되었다는 뜻이니 늙음의 부정 의미를 드러내려는가 했더니 전혀 아닙니다.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기자 내치기는커녕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이리저리 틀며 물을 받았습니다. 그 작은 소나무 홀씨가 뿌리 내림은 바로 바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위 홀로 있기보다 자기 곁에 푸른 벗을 두려고 한 아름다운 사랑의 힘.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 /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제가 이 시구 읽자마자 책갈피에 넣어두었습니다, 언젠가 써 먹으려고. 아름다운 관계란 이토록 자신의 몸을 비틀어서라도 내어주는 것입니다. 허나 받아들이는 과정이 쉬워선 안 됩니다. 일단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며 넉넉한 품을 갖춰야 합니다.
문득 시인은 자신을 뒤돌아봅니다.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던가"
이 시구를 읽고 시인이 단순히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구절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은 없겠지요. 물론 스스로를 반성하는 한편 그걸 잊고 사는 우리를 일깨우려 함을.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저는 콱 찔립니다. 남을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없어서.
제가 새해 시 배달 시작할 때 함민복, 박남준, 고정희, 황지우, 안도현, 천양희, 오탁번 하는 순서 지킵니다. 그만큼 좋아하는 시인 순서란 뜻이지요. 여태 박남준 시인 해설 끝에 오래전 문학기행 갔을 때 함께 간 여선생님이 반했다는 에피소드를 올렸는데 오늘은 다른 내용으로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박남준 시인은 한 달 살이에 필요한 돈을 30만 원으로 정해놓고, 그 이상 수입이 생기면 몽땅 기부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시인이 심근경색이 와 수술할 돈을 모았는데, 1차 끝난 뒤 2차 수술에 쓸 돈으로 이웃사랑에 썼답니다. 그걸 안 기자가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당초 한 번의 수술이 더 남았는데 마음으로는 순리를 거스르는 게 아닌가 생각되어 수술을 않겠다고 작정했거든요. 그런데 주위에서 하도 성화를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어느 날 (지리산 실상사) 수경스님과 연관스님이 오셔서 슬그머니 수술비 놓고 가셨어요. 적은 돈도 아니고. 그런데 수술을 할 생각이 없었으니 그 돈을 빨리 해체해야 하겠더라고요. 네팔에도 보내고 시민단체에도 보내고 다 나누어 없애버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