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았네. 수업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첫눈 온다고 창밖만 바라보던 정근이, 꼴찌가 좋다며 툭하면 수업 빼먹던 민철이, 부모 몰래 오토바이 타다가 넘어져 여섯 달 꼬박 병원 신세 지던 동준이, 부모 이혼하고 난 뒤에 학비조차 내지 못하던 순식이...... .
그 못난 것들이 겨우겨우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말이야, 틈틈이 못난 스승을 찾아와 위로하고 간다는 것을. 그 못난 것들이 하나같이 땀 흘려 일해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는 것을. - [감자가 맛있는 까닭](2018년)
#. 서정홍 시인(1958년생) : 경남 창원 출신으로, 워낙 가난한 환경에 야간중학교를 끝으로 학교와 단절했는데,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현재 합천군 황매산 자락 시골에서 '열매지기 공동체’, ‘담쟁이 인문학교’ 열어 이웃들과 함께 배우고, 청년 농부를 돕는 일에 애쓰고 있음.
<함께 나누기>
서정홍 시인은 몰라도 '58년 개띠'란 말은 다 들어보셨겠지요. 바로 시집 [58년 개띠]를 펴냄으로써 58년 개띠를 세상에 드러낸 시인입니다.
아마도 교사 출신이라면 시 내용이 확 와닿으리라 믿습니다. 졸업 후에 찾아오거나 연락 보내는 제자 가운데 우등생보다 열등생이 더 많음을. 시시때때로 말썽, 돌아서면 사고, 말 안 듣는 게 특기라 학교 다닐 때 이쁜 모습 하나 보여주지 않던 그 애들이 잊지 않고 찾아옴이 참 경이롭습니다. 시인은 정규학교 대신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아시다시피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 적응하기 힘든 아이들이 주로 다니지요. 그러니 더 말썽 많이 피우고 사고도 더 크게 쳤을 겁니다. 그런 애들 중에 특히 더 애먹이는 학생도 있었을 터.
1연에서 시인은 많은 내용을 생략한 채 독자에게 맡겼습니다.
정근이가 왜 수업 시간에 공부 대신 창밖만 바라보았는지, 민철이가 왜 툭하면 수업을 빼먹었는지, 그리고 동준이, 순식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든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그 사연과 원인을 생략했습니다. 물론 생략해도 우린 다 알지요.
2연에 가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분명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벌 받고 공부 못해 꾸지람 듣고 해서 선생님과 학교가 지긋지긋하련만 그 못난 것들이 찾아옵니다. 잘난 것들은 자랑하러 들르다가도 그렇지 않으면 돌아보지 않는데, 못난이들은 찾아오고 또 찾아옵니다. 참 이상하지요. 왜일까요? 그건 아마도 크면서 얻은 깨달음 때문일 겁니다. 오래도록 방황하고 많이 아파할 때 곁에서 사람 돼라고 훈육한 그 사랑을 잊지 못하기에. 학교에서 버림받은 못난이들, 그 못난이들의 따스한 마음 덕분에 아직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낍니다.
다니엘 꼬르네호라는 1987년생 스페인 청년이 한글을 독학으로 익힌 뒤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문학번역’ 과정까지 익혔답니다. 그는 한국 생활을 마치면서 [번개-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롭고 번뜩이는 이야기]란 제목의 일러스트레이션을 펴냈습니다.
좀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예전 박광수 씨가 [광수생각]이란 만화책을 펴냈지요. 그와 비슷하다고 여기면 될 겁니다. 다만 내용이 대부분 현재 우리나라 현실을 비트는 형태라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는 거기 나오는 글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날 우정은 결점이 되었다. 학교에 가는 이유는 배우기 위해서가 아닌 이기기 위해서이다." 이 말에 반박하고 싶은데 부끄럽게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 학교와 우리 사회 모습이니까요.
오늘 시와 비슷한 시구가 작년에 작고한 신경림 시인의 [파장]이라는 시에 나옵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오늘 옆자리 못난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대들이 있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고 어깨 토닥여 줍시다.
<뱀의 발(蛇足)>
*.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잘난 것들과 못난 것들의 차이는?'
잘난 것들은 저 잘 되면 저가 잘나서 그리 되었다 하고, 못난 것들은 내가 잘 되면 다 누가 도와서 그리 되었다 합니다.
또 잘난 것들은 저 잘못되면 남이 자기를 방해해서 그리 되었다 하고, 못난 것들은 잘못되면 다 자기가 잘못해서 그리 되었다 합니다.
세상은 못난 것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여야 하건만 희한하게도 잘난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