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 미꾸라지 부활을 꿈꾸다
* 미꾸라지 부활을 꿈꾸다 *
컴퓨터 관리 미숙으로 내장하드가 망가져 20년 가까이 모아놓은 글 자료가 다 날아갔다. 순전히 다 내 잘못이니 수원수구(誰怨誰咎 :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하랴) 하리오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그나마 20년 전 2005년에서 08년 약 3년간 인터넷에 연재한 글을 찾아낸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오늘 글도 그 가운데 하나다.
기온이 완연히 봄날씨로 돌아서면서 우리 집에도 할 일 많아졌다. 겨우내 하지 못하고 밀린 일들이 주욱 널려 있어서다. 굳이 하나하나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다만 오늘(2007년 2월 23일)은 연못을 전보다 깊게 파는 일을 하기로 했다.
작년 여름, 처음 연못을 만들기로 작정했을 때 바닥을 어떻게 할까가 가장 신경 쓰였다. 즉 물 빠짐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하느냐는. 내가 돌아다니며 본 다른 집의 연못 바닥은 대부분 시멘트로 처리했거나 심지어 두꺼운 비닐을 깔아 놓았다. 방수 생각하면 그게 가장 편하다.
그러면 연못에 자라는 수생식물과 물고기는 죽은 물(썩어가는 물)을 먹고 자랄 게 아닌가. 그게 문제라 썩 내키지 않았다. 해서 이틀에 한 번씩 물을 대주는 일이 좀 귀찮더라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새 물을 먹고 자람과 죽은 물 먹고 자람이 다를 거라는 판단 아래.
수생식물은 생각대로 잘 자랐다. 연꽃, 수련, 생이가래, 물채송화, 물배추, 부레옥잠이 매우 잘 자라 이웃에 분양하기도 했으니. 그러는 중에 물고기가 없으면 허전한 듯싶어 가까운 개울로 가 버들치를 잡아넣었고, 미꾸라지도 시장에 가서 1만 원어치 사다 넣었다.
그런데 얼마 뒤 뱀이 드나들면서 피라미도 미꾸라지도 보이지 않아 다 잡아먹었거니 했다. 그때 연못 만든 걸 얼마나 후회했든지. 그러던 차 작년(2006년) 10월 중순쯤 집을 한 열흘 비울 일이 있어 나갈 때 연못에 물 대주는 일 이웃에 부탁하는 걸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돌아왔더니 바닥이 바싹 말라 흙이 드러났고, 수생식물은 다 죽어가고, 미꾸라지와 피라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을 이제라도 다시 넣을까 하려다 어차피 살아날 것 같지도 않은데 하는 심정에 그만 그대로 두었다.
오늘 아침, 연못을 그대로 두자니 보기 흉하고 덮어버리자니 일한 공이 아깝고... 이리저리 고민하다 다시 제대로 만들기로 했다. 사실은 새로 만들기보다 작년 작품(?)을 그대로 이용하되 다만 연못의 깊이만 좀 더 아래로 파 물이 오랫동안 마르지 않도록 함이 목적.
물속이 깊으면 이틀에 한 번 물을 보충해 주는 대신 사흘이나 나흘에 한 번씩이면 되니 사나흘 집을 비워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무심코 괭이로 판 뒤 삽으로 흙을 퍼내려는데 뭔가 꼬물꼬물 하는 생명체가 보이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눈에 힘을 줘 자세히 보았더니, 세상에! 미꾸라지였다. 새끼를 갓 벗어난 크기의 미꾸라지. 이미 물을 안 넣은 지, 다시 말하면 연못 바닥이 마른 지 넉 달이나 지났다. 그렇다고 바닥이 습하지 않고 바짝 말랐는데 거기서 살아있다니.
믿기지 않아 다시 삽으로 떴더니 또 한 마리가 보였다. 더 있는지 파헤쳐 보려다 자칫 삽에 찍히면 여태까지 버티어 온 그 끈질긴 생명력을 해칠 것 같아 얼른 덮어버렸다. 그러니 땅속에 몇 마리 더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물기 없이 바짝 마른 땅속에서 여태껏 살아 있었을까?
미꾸라지는 온도가 낮아지거나 가뭄이 들면 흙 속에 들어가 휴면을 취한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또 물속에 산소가 부족한 경우에는 장(腸)으로 공기호흡 하기도 한다는 말도. 허지만 바닥 마른 지 넉 달이나 지났는데….
더욱 지난 10월부터는 가뭄이 들어 며칠 전 비가 오기 전까진 제대로 된 비를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그 건조함 속에 살아남았다니….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시인 김광섭 닣은 큰병이 나 병원에 입원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데 어느 날 창틈 사이에 채송화꽃이 피어남을 보았다. 아니 어떻게? 창틈 사이에 먼지가 쌓이고 그 자리에 채송아 씨앗이 날아왔던가 보다. 씨앗은 먼지를 흙 삼아 비를 물 삼아 싹을 돋웠고 꽃을 피웠다.
그걸 보고 시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한 줌도 안 되는 가냘픈 채송화가 보여준 생명력. 나는 명색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 아닌가. 시인은 거기서 용기를 내 다시 살기로 결심했고 기적이 일어났다. 되살아나자마자 쓴 작품이 바로 「생의 감각」이다.
달내마을에서 한 십여 분 동쪽으로 차를 몰고 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거기 갯바위 꼭대기에 소나무 한 그루 휑뎅그렁하게 자라는 걸 볼 수 있다. 그걸 볼 때마다 경이감에 잠긴다. 적어도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려면 일정한 흙이 있어야 하는데 바위밖에 없는 거기에 뿌리를 내리다니….
오늘 나는 또 하나의 다른 경이감을 맛보았다. 도무지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미꾸라지는 꿋꿋이 살아 있었다. 바짝 마른 연못 속 미꾸라지는 비정한 주인의 무관심에도 언젠가 비가 오면 부활을 꿈꾸었으리라. 어쩌면 비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까지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정말 하찮은 미꾸라지가 보여준 끈질긴 생명력이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