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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산골일기(197)

제197화 : 미꾸라지 부활을 꿈꾸다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4. 2025

     * 미꾸라지 부활을 꿈꾸다 *          



  컴퓨터 관리 미숙으로 내장하드가 망가져 20년 가까이 모아놓은 글 자료가 다 날아갔다. 순전히 다 내 잘못이니 수원수구(誰怨誰咎 :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하랴) 하리오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그나마 20년 전 2005년에서 08년 약 3년간 인터넷에 연재한 글을 찾아낸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오늘 글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개울가 미꾸라지)



  기온이 완연히 봄날씨로 돌아서면서 우리 집에도 할 일 많아졌다. 겨우내 하지 못하고 밀린 일들이 주욱 널려 있어서다. 굳이 하나하나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다만 오늘(2007년 2월 23일)은 연못을 전보다 깊게 파는 일을 하기로 했다.     



  작년 여름, 처음 연못을 만들기로 작정했을 때 바닥을 어떻게 할까가 가장 신경 쓰였다. 즉 물 빠짐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하느냐는. 내가 돌아다니며 본 다른 집의 연못 바닥은 대부분 시멘트로 처리했거나 심지어 두꺼운 비닐을 깔아 놓았다. 방수 생각하면 그게 가장 편하다.     
  그러면 연못에 자라는 수생식물과 물고기는 죽은 물(썩어가는 물)을 먹고 자랄 게 아닌가. 그게 문제라 썩 내키지 않았다. 해서 이틀에 한 번씩 물을 대주는 일이 좀 귀찮더라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새 물을 먹고 자람과 죽은 물 먹고 자람이 다를 거라는 판단 아래.


(2006년 여름날의 연못)



  수생식물은 생각대로 잘 자랐다. 연꽃, 수련, 생이가래, 물채송화, 물배추, 부레옥잠이 매우 잘 자라 이웃에 분양하기도 했으니. 그러는 중에 물고기가 없으면 허전한 듯싶어 가까운 개울로 가 버들치를 잡아넣었고, 미꾸라지도 시장에 가서 1만 원어치 사다 넣었다.     
  그런데 얼마 뒤 뱀이 드나들면서 피라미도 미꾸라지도 보이지 않아 다 잡아먹었거니 했다. 그때 연못 만든 걸 얼마나 후회했든지. 그러던 차 작년(2006년) 10월 중순쯤 집을 한 열흘 비울 일이 있어 나갈 때 연못에 물 대주는 일 이웃에 부탁하는 걸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돌아왔더니 바닥이 바싹 말라 흙이 드러났고, 수생식물은 다 죽어가고, 미꾸라지와 피라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을 이제라도 다시 넣을까 하려다 어차피 살아날 것 같지도 않은데 하는 심정에 그만 그대로 두었다.


(2007년 봄을 앞둔 연못 - 물 주기 전엔 바짝 마른 상태)



  오늘 아침, 연못을 그대로 두자니 보기 흉하고 덮어버리자니 일한 공이 아깝고... 이리저리 고민하다 다시 제대로 만들기로 했다. 사실은 새로 만들기보다 작년 작품(?)을 그대로 이용하되 다만 연못의 깊이만 좀 더 아래로 파 물이 오랫동안 마르지 않도록 함이 목적.     
  물속이 깊으면 이틀에 한 번 물을 보충해 주는 대신 사흘이나 나흘에 한 번씩이면 되니 사나흘 집을 비워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무심코 괭이로 판 뒤 삽으로 흙을 퍼내려는데 뭔가 꼬물꼬물 하는 생명체가 보이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눈에 힘을 줘 자세히 보았더니, 세상에! 미꾸라지였다. 새끼를 갓 벗어난 크기의 미꾸라지. 이미 물을 안 넣은 지, 다시 말하면 연못 바닥이 마른 지 넉 달이나 지났다. 그렇다고 바닥이 습하지 않고 바짝 말랐는데 거기서 살아있다니.


(실제 그날 되찾은 미꾸라지)



  믿기지 않아 다시 삽으로 떴더니 또 한 마리가 보였다. 더 있는지 파헤쳐 보려다 자칫 삽에 찍히면 여태까지 버티어 온 그 끈질긴 생명력을 해칠 것 같아 얼른 덮어버렸다.      그러니 땅속에 몇 마리 더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물기 없이 바짝 마른 땅속에서 여태껏 살아 있었을까?
  미꾸라지는 온도가 낮아지거나 가뭄이 들면 흙 속에 들어가 휴면을 취한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또 물속에 산소가 부족한 경우에는 장(腸)으로 공기호흡 하기도 한다는 말도. 허지만 바닥 마른 지 넉 달이나 지났는데….
  더욱 지난 10월부터는 가뭄이 들어 며칠 전 비가 오기 전까진 제대로 된 비를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그 건조함 속에 살아남았다니….


(물 한 방울 저장 안 될 것 같은 절벽 경사 틈에 뿌리 내린 소나무)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시인 김광섭 닣은 큰병이 나 병원에 입원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데 어느 날 창틈 사이에 채송화꽃이 피어남을 보았다. 아니 어떻게? 창틈 사이에 먼지가 쌓이고 그 자리에 채송아 씨앗이 날아왔던가 보다. 씨앗은 먼지를 흙 삼아 비를 물 삼아 싹을 돋웠고 꽃을 피웠다.     
  그걸 보고 시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한 줌도 안 되는 가냘픈 채송화가 보여준 생명력. 나는 명색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 아닌가. 시인은 거기서 용기를 내 다시 살기로 결심했고 기적이 일어났다. 되살아나자마자 쓴 작품이 바로 「생의 감각」이다.     


  달내마을에서 한 십여 분 동쪽으로 차를 몰고 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거기 갯바위 꼭대기에 소나무 한 그루 휑뎅그렁하게 자라는 걸 볼 수 있다. 그걸 볼 때마다 경이감에 잠긴다. 적어도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려면 일정한 흙이 있어야 하는데 바위밖에 없는 거기에 뿌리를 내리다니….


(제주도 '땅채송화' - 바위에 핌)



  오늘 나는 또 하나의 다른 경이감을 맛보았다. 도무지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미꾸라지는 꿋꿋이 살아 있었다. 바짝 마른 연못 속 미꾸라지는 비정한 주인의 무관심에도 언젠가 비가 오면 부활을 꿈꾸었으리라. 어쩌면 비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까지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정말 하찮은 미꾸라지가 보여준 끈질긴 생명력이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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