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13편)
나 어릴 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제대로 세 끼 챙겨 먹지 못하는 살림이라 한 끼에 반 끼쯤 되는 양을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파 먹을 게 없나 두리번거렸다. 특히 겨울철엔 아버지 일감도 떨어져 시래기 잔뜩 넣고 밥알 얼마를 섞어 끓인 시래기죽은 왜 그리 소화가 잘 되던지. 방귀 몇 번 뀌고 나면 다시 배가 고팠다.
그렇게 살다 끼니도 해결되면서 시래기죽보다는 먹고 나면 더 든든한 먹거리가 정거장(버스정류소가 아닌 일종의 '쓰레기 하치장')에서 나왔다. 이름하여 '짬빵'. 미군부대 주변에 살다 보니 누린 혜택(?)이랄까. 양동이 하나 들고 부산진구 초읍동 정거장에 가 줄 서 기다리다 사온 짬빵은 쉽게 말하면 미군이 먹다 남긴 음식이다.
짬빵은 아무것도 모르고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아니 먹을 만한 게 아니라 노상 삼시세끼 제대로 된 밥 먹을 수 없는 사람에겐 값싸고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나도 산동네 아이들과 같이 학교 마치자마자 엄마에게서 받은 돈과 양동이를 들고 정거장으로 달려갔다. 일정한 시간에 나오기에 혹 늦으면 못 사 올까 봐 그리 했다.
이렇게 사온 짬빵은 바로 먹지 못하고 반드시 골라내는 작업을 한 뒤 끓여야 했다. 그 속엔 별의별 게 다 들어 있었으니까. 반쯤 베문 감자, 뼈에 붙은 고깃조각, 빵 부스러기가 먹을 거라면, 담배나 이쑤시개 같이 먹어선 안 되는 것도 들어 있었다.
당연하리라. 미군들이 먹고 난 식탁에서 나온 모든 음식물을 다 끌어 모은 일종의 음식물 쓰레기였으니까. 가끔 최악의 쓰레기가 나올 때도 있었다. 바로 희끄무레한 빛깔의 긴 골무처럼 생긴 고무주머니 (설명은 생략하니 눈치껏 짐작하시길).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짬빵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따지지도 않고 그저 배고픔만 면하면 된다는 생각에 끓여먹었다. 문제는 짬빵도 시래기죽 못지않게 소화가 잘 된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짬빵 먹고 난 뒤엔 달리지 말라고 했을까. 뛰고 나면 금방 배고프다고.
요즘 유튜브를 자주 본다. 혹 정치 관련 내용일 거라 오해 마시길. 주로 동남아시아 생활상은 담은 유튜브다. 물론 이제 동남아시아도 대도시 지역은 우리나라 못지않다. 집값부터 편의시설과 음식물 등. 그런데 시골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꼭 나 어릴 때 우리 동네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본다고 할까. 화장실도 제대로 돼 있지 않고, 식수도 엉망이고, 쌀 한 가마니 아닌 한 봉지 사다 먹는 것조차 어찌 그리 닮았는지...
며칠 전이다. 라오스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는 한국인 젊은이가 우연히 한 마을을 지나다 다리 밑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보고 말을 붙이면서 인연을 맺는다. 사진 찍도록 해 준 아이들을 근처 구멍가게로 데려가 과자를 사서 준다. 서른 명쯤 되었지만 다해야 우리 돈으로 만 원 안팎. 그렇게 인연을 맺은 그는 그곳을 주기적으로 찾아가 자연과 일체가 돼 노는 아이들을 영상에 담는다. 그 대가로 과자를 사주고.
어느 날 그는 아이들에게 한국어 인사말 몇 개를 가르쳐 준 뒤 다음에 올 때 다 외운 사람에게 식당에 가 음식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식당에 간 적 한번 없는 아이들에게 그 약속이 먹혀들었는지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은 그가 돌아올 날만 기다리며 인사말을 외우고 또 외웠다.
마침내 그가 돌아와 아이들을 다 모은 뒤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했는데, 단 한 명도 틀리지 않고 답을 했다. 그는 차를 빌려 아이들을 태우고 가까운 도시의 식당으로 갔다. 그렇게 고급스럽지 않은 식당이었지만 거기 나온 음식을 아이들은 입에 퍼 넣기 바빴다. 어른 아닌 아이들이라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한 사람당 1인분 식사로 끝날 줄 알았는데 2인분을 먹어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그때 그의 눈에 한 아이가 들어왔다. 다른 아이들은 2인분을 다 먹어치웠는데 오직 한 아이만 한 그릇의 음식을 천천히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그가 다가가 물었다.
“아니 너는 여태 한 그릇을 붙잡고 있니? 다른 애들은 두 번째 먹는데... 혹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니?”
“아뇨.”
“그럼?”
“밥이 줄어드는 게 슬퍼서요.”
사실 라오스어를 모르니까 난 그가 번역한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 유튜버의 의역일 수 있지만 그 장면에 어찌나 잘 들어맞던지. ‘밥이 줄어드는 게 슬퍼서’, 밥을 빨리 먹으면 빨리 줄어드는 게 슬퍼서 천천히 먹고 있다는 말. 그 순간 그 아이가 사는 동네와 내가 자라던 동네가 겹쳐졌고, 그 아이는 나로 바뀌었다. 시래기죽, 먹고 나면 금방 소화가 돼 방귀 뀌기조차 조심했는데... 짬빵, 먹고 나선 달리기조차 하지 말라고 했는데...
세상에는 아직도 끼니를 거르고 사는 곳이 많다. 아니 우리나라만 해도 작년 결식아동은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더욱 코로나로 인하여 그 숫자는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추세라 하니 안타까운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나는 밥이 없어 굶지 않는다. 그러니 ‘밥이 빨리 줄어드는 게 슬프지’ 않다. 또 한 끼 굶는다고 하여 별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나뿐 아니라 어떤 사람은 살찐다고 일부러 굶기까지 하는데 그까짓 밥 좀 빨리 없어진다고 안타까우랴.
밥이 빨리 줄어드는 게 슬프지 않은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슬퍼해야 할 건 정작 인정과 사랑이 빨리 없어지는 사실 아닐까?
*. 짬빵은 '잔반(殘飯 : 먹고 남은 밥)'이란 일본식 한자어가 변해서 온 말인데, 우리말로는 ‘대궁’ 또는 ‘대궁밥’이라고 합니다. 당시를 살리기 위해 명색이 국어교사 출신이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대궁밥이라 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입에 붙은 '짬빵'으로 씀에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