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정이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안 돼- - 이런 사람 좋아하면- - 슬픔이 많은 사람은 싫어- - -노 -노- - '
그 날, 결국 써 가져간 쪽지는 버렸다.
줄까도 했지만 왠지 부끄럽고 실소가 났다.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야- - - 나 한테 무슨 일이 생긴거야?'
정이는 나름 운명적인 인연을 믿어 왔다.
한 발의 화살로 꽂혀 버리는 뜨거운 느낌. 마땅히 그런 것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의 환경이, 그의 지나간 슬픔이 문제가 되지 않을 터.
'이건 아닌거야- - -'
그가 나를 흔들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는 바람이었으면 했다. 진심으로, 내 일상에 내 고요한 마음에 어지러운 돌풍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정이는 마음을 단단히 다독였다.
'아무것도 아닌거야- - '
그와의 만남은 그 후로 몇 번 더 이어졌다.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조근조근, 이건 이렇구 저건 저렇구- - -
나는 이런 사람이구 당신은 저런 사람이니- - - 우리는 아니라고- - - 맞지 않는다고- - -'
말을 해야겠다고 만날때마다 정이는 다짐했지만 막상 속 마음을 꺼낼 수가 없었다. 웬일인지 자신이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열심히 장황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쩐지 야박하게 그 마음을 자를 수가 없었다.
장소는 한결같이 'ㅇㅇ제과점' 그는 '빙수떡 집'이라 불렀다.
그는 좋아하지도 않는 빙수를 녹여 얼음물로 마셨다. 과일도 떡도 다 정이에게 건져 줬다. 싫다고 거절한 뒤로는 접시에 쭉 꺼내 늘어 놓았다.
'저게 뭐야? 싫으면 먹지를 말던가- - '
깔끔하게 메뉴를 바꿔주길 바랬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게- - - 싫어 하면서도 볼썽 사납게 왜 저러구 있을까- - - 역시, 아냐- -'
만날때마다 그는 식사는 거의 안했다.
항상 술을 마셨다. 그리고 주절주절 얘기를 했다.
'이 사람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겠군- - - 그 슬픔 다 녹여내고 쨍-하고 밝은 인생 살려면- -'
고독하고 외롭던 미국생활을 얘기했다. 너무 힘들었노라고. 사촌형들이 있었지만 남보다 못했다고. 그 형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넌 잘 되면 안 되. 니가 잘 되면 세상이치가 무너지는 거야' 대놓고 조롱했다고-
'그러면 보란듯이 잘 살면 되잖아- - - 삼십칠년이나 살았으면서 아직도 징징대고 있으면 어쩌라고- - 아직도 정서불안이면- - 어쩌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