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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 May 20. 2021

슈퍼볼과 블루베리스무디

한국어 학급의 일상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20년을 창원에서 산 지방 출신이며 지방과 사투리에 대해 어떠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이 없다는 것을 밝힌다.)     


  세계적으로 가장 화려한 스포츠 경기는 무엇일까?      


  단연 슈퍼볼이지 않을까 싶다. 단, 한 번의 경기에 시청자가 1억이 넘는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엄청난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만큼 화려하긴 또 얼마나 화려한가? 자칫 단순할 수 있는 던지고 달리는 행위가 이렇게 아름답고 힘이 넘칠 수 있는지 경외를 느낀다. 경기도 경기지만 하프타임 쇼는 백미다. 세계에서 가장 핫 하다는 가수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공연을 한다. 가수들에게도 그 공연에 오르는 것 자체가 어찌나 큰 영광인지 가수 위켄드는 사비로 78억을 들여 무대를 꾸몄다고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NFL과 슈퍼볼의 열성적인 팬 같지만 내가 이것들에 익숙한 이유는 광고 덕분이다. 원체 시청률이 높고 시청인구가 많다 보니 슈퍼볼 광고는 재미있고 인상 깊다. 그리고 시즌이 되면 엄청난 액수의 광고비를 기꺼이 지출한 한국 기업에 관한 기사를 많이 접할 수 있다.      


  2020년 슈퍼볼 광고 중 내 시선을 확 끈 광고가 있었다. 현대차 광고였다. ‘Smaht Pahk’이라는 이 광고는 소나타의 자율 주차 기능을 강조한 광고다. 여러 광고 중 이 한국 광고가 내 시선을 끈 이유는 문화를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광고 내용은 단순한다. 소나타가 혼자서 주차하고 사람들은 놀란다. 그리고 ‘스맛 팍’ ‘스맛 팍’이라고 소리친다. 영알못인 내가 들어도 이상한 발음이다. 알고 보니 그 발음과 억양은  ‘Smart Park’의 보스턴 사투리라고 한다. 보스턴 특유의 거친 억양이 있는데 그 억양으로 'Smart Park'을 발음하면 '스맛 팍'이라 한다. 알고 보니 광고의 배경이 보스턴이고 등장인물들도 보스턴 출신이라고 한다. 한국 광고가 미국에서 광고를 하면서 미국 지역 사투리를 재치 있게 사용한 것이다. 많은 미국인이 이 광고를 호평하고 ‘스맛 팍’을 따라 했다고 한다. 덕분에 광고제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단순히 사투리를 사용한 광고가 왜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았을까? 사투리가 가진 힘과 그 영향력 때문이다. 


  언어는 문화의 결정체이다. 언어로 사물을 지칭하고 생각을 표현하니 당연하다. 언어 자체가 문화를 담고 있다. 언어는 그 자체가 문화면서 문화에 영향력을 미친다. 특별한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사투리가 그 사례다. 오래전부터 자연적‧인문적 이유로 자연스럽게 구분 지어진 지역의 하위문화는 사투리를 통해 표현된다. 인과 관계가 역전되어 사투리가 그 지역의 고유문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사투리를 분석하면 그 지역의 인문학적‧자연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부산 사투리가 억양이 세고 빠른 이유가 부산이 바다가 근처라 날씨가 언제 바뀔지 몰라 신속하고 명확한 의사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최근 사투리가 큰 위기를 맞았다. 엉뚱하게도 SNS나 YOUTUBE의 영향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사투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며, 쉽게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들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지역 특색이 없어지고 획일화, 공통화되었다. 그러니 사투리가 설 자리가 없다. 사투리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한국어의 다양성과 지역의 개성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반에서 나와 함께 이주배경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한국어 강사 선생님은 찐 경상도 분이시다. 인사 몇 마디만 나누면 바로 알 수 있다. 평소 말씀에서도 억양이 묻어나지만 특히 ‘으’아 ‘어’ 발음을 뒤엉켜 쓰신다. ‘정리해야지’를 ‘증리해야지’, ‘먹으세요’ ‘믁으세요’ ‘글씨를 쓰세요’ ‘글씨를 써세요’라고 하신다.     


  처음 선생님의 사투리를 수업 시간에 들었을 때 ‘아뿔싸’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이들이 선생님의 사투리를 듣고 잘 못 발음하면 어떻게 하지?’ '사투리만 알아듣고 표준어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나 역시 경상도서 20년을 산 촌놈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투리는 잘못된 언어와 발음이 아니다. 틀린 언어가 아니라 한국의 특정 문화를 듬뿍 담고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한국어의 다른 모습이다. 아이들은 한국어 강사 선생님의 사투리를 들으면서 한국어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지고 보니 선생님의 사투리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참고로 내가 카페서 ‘블루베리스무디’를 주문하면 아직도 사람들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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