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학급의 일상
하나로 개인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나이, 성별, 학력, 거주지? 어떠한 것도 개인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워낙 그 범주 안에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녀로만 구분하면 개인의 특색을 전혀 알 수 없다. 다른 기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러 기준 중 그나마 잘 표현하는 것이 있다. 직업이다. 개인의 개성과 직업의 특징이 상관있는 경우가 많다. 특정 직업을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상은 다른 기준에 비해 개인을 잘 드러낸다. 각종 심리검사가 나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처럼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한 직업에 속한 개인들이 전형적이고 공통적인 이유는 같은 행동과 말을 하며 그 일과 관련한 같은 생각과 언어를 공유하고 반복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한쪽으로만 씹으면 한쪽 얼굴 근육만 발달하는 것과 같다. 타고난 근육이 달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그 근육을 우리는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병을 말 그대로 질병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직업병은 질병보다는 습관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에 여러 직업인의 직업병이 나왔다. 호텔리어는 동네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깍듯이 한다. 의사는 미용실 가운을 수술 가운인 마냥 뒤에서 앞으로 입고 교도관은 문이 열린 채로 있는 것을 참지 못한다고 한다. 다양한 직업만큼 직업병도 다양하고 재미있다. 한국어 학급에서 한국어 교육을 하는 나도 직업병이 있다.
또박또박 말한다. ‘굉장히 또박또박 말씀하시네요.’ 요즘 만나는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수업 시간에 공부하거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거나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아이들에게 한국어 자극이다. 최초이며 유일한 자극인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내 말투와 발음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발음을 정확하고 또박또박하게 하는 습관이 들었다. 띄어쓰기를 신경 써 문장을 딱딱 끊어 읽거나 두음법칙을 잘 지켜 발음한다. 억양과 음높이도 특이하지 않도록 신경 쓴다. 말의 내용도 문어체인 학습 자료를 주로 말하다 보니 더욱 명확, 간결하게 말하게 되었다. 가끔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사용하고 듣는 실제 한국어와 너무 괴리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된다.
천천히 말한다. 말의 빠르기는 생각의 깊이와 비례한다. 흥분 정도와도 비례한다. 그래서 수업하다 보면 점점 빨라진다. 하지만 빨리 말할수록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억지로 내 말의 속도를 조절하게 되었다. 특이한 것은 말의 속도를 조절하다 보니 마음도 같이 조절된다. 흥분할 만한 상황에서 말의 속도를 줄이니 마음이 다스려졌다.
의심이 많아졌다. 스스로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자꾸 팩트체크를 한다. 내가 쓰는 단어와 말이 정확한 한국어인지에 대해 계속 의심한다. 설명하다가도 네이버 사전과 국립국어원으로 수시로 확인한다. 한국어가 모국어지만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대화가 막히면 번역 어플의 힘을 빌린다. 이 경우에도 구글과 파파고를 동시에 사용하여 크로스체크한다. 아이들에겐 이해도를 자꾸 확인한다.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00 알고 있나요?’ ‘00 무슨 뜻인지 알아요?’다. 거의 모든 것을 확인한다. 한 문장을 읽다가 한 시간이 가는 일도 있다. 나와 학생, 어플까지 항상 의심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발라졌다. 초등학생들에게 교사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존재다. 아이들은 교사를 모델링하여 정서적·지적 성장을 한다. 말 그대로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시는 게 초등 교사다. 여기에 한국어 학급 교사는 한국인으로서의 모델까지 추가된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투 표정과 몸짓이 곧 한국인의 행동과 말투 표정과 몸짓이다. 말과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내 개인적인 성격이 한국인의 특성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재촉하지도 않고 흥분하여 소리 높여 얘기하지도 않는다. 모든 국적 아이를 의식적으로 동등하게 대하고 같은 빈도로 말을 건다. 온화하고 정의로운 모델이 되도록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직업병에 ‘병(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어감이 좋지 않다. 하지만 직업병이 몸에 배었다는 것은 얼마나 그 직업을 충실하게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다. 애착과 소명 의식의 결과다. 한국어 교사로서 나의 직업병도 자존감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