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대륙이란 말이 더 맞겠지만) 호주엔 파도타기에 적당한 바다가 많이 있다.
알파벳 G 모양으로 솟구치는 파도가 규칙적으로 잘 이는 곳 말이다. 파도를 즐기는 이들은 사시사철 보드를 들고 놀 곳을 찾아다니는데, 겨울이 되면 날씨가 따뜻한 북쪽 케언즈로 올라갔다가 날이 풀리면 빅토리아주로 내려오곤 한다.
파도타기가 호주에서 시작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란다. 세계 파도타기 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벨 비치 (Bell Beach) 근처의 서퍼 박물관에서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The Long Ride : 100 Years of Australian Surfing. 아는 것보다 궁금한 게 더 많은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 봤다.
이름을 날렸던 유명한 써퍼들이나 그들의 경기 모습을 사진이나 필름으로 볼 수 있었다. 시대별 변천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보드도 있었는데, 기술과 유행에 따라 길이도 길어졌다가 짧아지고 넓이나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흥미로왔다. 상어를 놀라게 하려는 듯 칼라풀하고 무시무시한 조각을 새긴 것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써퍼 우상을 그려 넣고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한 것도 있었다.
한쪽엔 보드를 직접 갈아 만드는 전문가가 제작과정을 실연한다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일본인 이어서 놀랐다.
시대를 느끼게 하는 라디오나 수영복이 재미있다. 그때는 이런 모습이 얼마나 쿨했겠나...
1950-60년대에 한창 인기를 몰던 서핑. 당대의 젊은이들은 이런 콤비를 끌고 지붕에 보드를 실은 채 돌아다니다가 바닷가에 작은 텐트를 치고 놀고먹고 파도 타는 재미를 즐긴 게다. 지금 내 주변에 계신 7,8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런 식으로 젊음을 불태우며 살았을 거란 생각을 해보니 좀 재미있기도 하고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었나... 전쟁을 치르고 끝내고 피비린내 나는 삶의 터전에서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발버둥 치던 때였던가.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때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사는 아무개 젊은이가 나의 젊었던 시절 유행이나 문화 따위를 박물관에서 들여야 보며 이런 비슷한 상념에 젖을까.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환경에 속해 태어나 제각기 다른 삶을 산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상처로 남은 과거를 회한이나 아픔으로 되돌아보게 되고 누구는 그저 흐뭇하고 원 없던 시간으로 키득이며 추억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멋지고 신나는 서퍼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왜 이런 궁상스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젊고 자유롭고 싱글일 때 파도타기를 못해봐서 그런가. 사진이나 필름 속에서 만나는 저 찬란한 젊은이들이 알고 보면 지금은 이 세상에 없거나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을 거라는 현실이 떠올라서 그런가. 아님 그냥 지금 이곳이 가을이라 그런가. 젊음도 환호도 메달도 트로피도 영광도 다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이제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아들이 차일드 케어에서 엉엉 울며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 넘어져서 손바닥이 까졌던 것이다. 안아주고 눈물 닦아주고, 손 씻어주고 약 발라주고, 아이스크림 주고 과일 깎아주고... 다시 돌아왔다. 좀 전까지 사로잡혀 있던 감상에서 깨어났다. 내가 뭘 쓰고 있던 건지 기억이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