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히지도, 경도되지도 않기
오늘 저는 굉장히 중요한 발표를 망쳐버린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들이 모두 기대하던 발표였는데요. 질의응답 10분의 시간 동안 질문이 아닌 조언만 듣다 나와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조언 새겨듣겠다고 고개 숙이고 있다 나오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사족만 한껏 달다 나온 것이 후회됩니다.
행복이나 사랑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우울이랍니다.
사람이 우울한 일이 생기면 우울한 것이 당연한데, 무턱대고 ‘괜찮아 괜찮아’하면 마음이 곪아버리니까요. 우울한 날에는 우울하게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우울함을 곱씹는다면 작았던 우울도 몸집을 불려 저를 짓누르게 되지요.
그렇다면 적당한 우울이라는 것은 뭘까요?
저는 오늘 오랜만에 친구와 밥을 먹었답니다. 여섯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한 친구가 먹자고 연락을 주어, 근처 샐러드 집에 갔지요. 풀 밖에 없는데 너무 비싼 거 아니야? 그냥 서브웨이 갈 걸…. 잡담을 하다보니 속에서 엉망으로 자라나던 슬픔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이 시간에 왜 사무실에 안 있고.
그 말에 조금이라도 참아왔던 마음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와서, 발표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망친 것 같다고. 이제 남은 기간동안 어떻게 버텨야 할 지 막막하다고. 속으로는 한껏 울고 있었지만 혹여 친구가 걱정할까봐 눈물 한 방울 내지 않고, 웃으면서, 유쾌하게 말했습니다.
에효. 먹고 살기 참 힘들다….
티가 났을지 안 났을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며 이번에 자신이 낸 책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깟 사업 좀 못 따도 그냥 잘 하면 되지. 물론 받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다음번에는 이런 방향으로 하면 어떨까?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방금 전까지 과거에 박혀 있던 제 눈이 다시 앞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지나간 걸 어쩌겠어. 다음 것 준비 잘 하면 되지.
저는 여전히 우울합니다.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진 기분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