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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Oct 22. 2023

서울 토박이, 경기도 읍민이 되다.

[6-1]



  서울 모 병원에서 태어나, 주변 동네에서 쭉 살았다. 동네를 벗어난 것은, 고등학생 때 포항에 있는 학교를 가고 싶어 약 3년 간 하숙생활, 기숙사 생활, 자취를 한 것이 전부다. 대학생 때는, 학교까지 지하철로 여섯 정거장이면 갔다. 사회생활 첫 직장은 강남 쪽에 있었는데, 아침마다 지옥철을 타야 하는 것은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였다. 

  ‘8시 5분까지 지하철 타면 되니까 오늘은 화장 좀 더 해도 되겠다.’ 머릿속에 있는 타이머를 맞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9층에 멈춰 선다. 

  “안녕하세요.”

  같은 동 9층에 사는 이웃도 비슷한 시간에 출근을 한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그는 항상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금방 멀어진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의 하루 일과’에 감정이입한 적이 있는데, 평일 오전 7시 50분, 나를 태우고 9층에서 한 번 더 멈춰서 이웃을 태운다. 8시가 넘어가면, 유치원과 초등학교 가는 아이들이 타느라 층층이 멈춰 선다. 엘리베이터가 잠시 아이들 소리로 북적이는 시간이다. 출근할 때 이 시간은 피해 일찍 나오는 것이 좋다. 저녁 7시, 운동화 두 짝만 든 트레이닝복 차림의 탑승자들이 늘어난다. 매주 수요일은 분리수거 지정일로, 엘리베이터에겐 조근과 야근을 하는 가장 바쁜 날 일 것이다.      


  성큼성큼 앞서 가는 이웃이 저 멀리 작아져, 나도 빠른 발걸음을 해본다. 지하철역 빠른 환승은 '3-4'이지만, 모두 여기에 줄을 서니 나는 살짝 옆으로 이동해 '4-1'에서 탄다. 회사에 가까워질 때쯤, 미리 커피 주문을 위한 사이렌 오더 앱을 켠다. 커피 픽업 대기 8번. ‘타이밍이 딱 좋다.’     

  

  서울이 좋았다. 누가 봐도 내향형인데, 카페에 다이어리나 책을 들고 나가 할 일을 하면서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주말엔 맛있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새로운 메뉴 도전하는 것도, 전시회나 박물관 가는 것도 좋아했다. 날씨 좋을 때는 올림픽 공원이나 서울 숲에 가서 몇 시간씩 걷는  좋았다. 늦게까지 술 한 잔 하기도 했는데, 자정이 지난 새벽에도 사람들이 북적여 한 동안은 집에 걸어가는 걸 위험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저렴한 동네 피부과 몇 군데를 다니며, 매 달 이벤트 알림을 보고 시술을 받는 것도 좋아했다. 엄마와 우리 집 세 명의 딸들이 함께 쇼핑을 가면, ‘같은 배에서 났는데 어쩜 이리 취향이 다를까’ 신기하다. 첫째는 하얀색 또는 아이보리 계열의 블라우스를 좋아하는데, 옷장에 비슷한 게 열 벌 정도 걸려있는데, 목 칼라 디테일이 정말 다르다며 하나 더 산다.     


  서울엔 어렸을 때부터 똑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들도 있고, 새롭게 생겨나는 것들도 있다. 옛 것과 새것이 함께 공존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매력으로 다가온다.

  성수동, 효자동, 연남동, 을지로, 용산구, 압구정 로데오, 동네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그중,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 거리를 좋아한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다. 조금만 올라가면 경복궁역 위로 조용한 효자동이 나오는데, 옛 감성을 담은 가게들이 띄엄띄엄 있다.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왔을 뿐인데 조용하다. 아늑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아래쪽 중림동도 매력적이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렸다 을지로나 익선동으로 넘어가면 삽시간에 번화해진다. 여러 경험을 쌓고 자극을 받기에 적합한 곳이다.      


  누구나 에너지를 가득 끌어다 쓰는 시기가 한 번씩 있지 않나. 20대 초중반의 나는 다양한 경험을 즐겼는데, 이런 나에게 서울은 최적의 도시였다. 서울은 다양한 경험들을 위한 각종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이다. 

  수학과 영어 과외를 했고, 로스팅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영상 아카데미를 다니며 공부했고, 공모전에 출품했다. 초등학교에서 외국인과 함께 익숙하지 않은 국가의 문화를 교류하는 수업을 운영했고, 통역 활동을 했다. 서울 관광을 하러 온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서울 투어를 시켜주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아이들 유초등부 교사 활동을 했다.          


  독립을 했고, 서울을 떠났다. 경기도민이 되었다. 새로운 지역에 터를 잡고 새 출발 한다는 설렘도 잠시, 평생 살았던 동네를 떠난다는 것에 관한 낯선 마음과 서운함, 염려 같은 것이 몰려왔다.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동네 행정복지센터에서 재발급을 했는데, 'OO시'라고 적혀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아 드니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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