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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Oct 22. 2023

이사 온 동네에 단골 가게가 생겼다.

[6-4]



  악몽을 꿨다. 30년 동안 살았던 동네를 떠나는 일은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다소 당황했는데, 침대를 두고 소파에서도 잘 자고, 여행을 가면 오히려 꿀잠을 자는 편이라 그랬다. 잠귀가 어둡고 둔한 편이라, 누가 업어 가도 모른다. 아침에는 차 다니는 소리도 날 깨우는 알람이 아니라 AMSR처럼 들릴 정도이니 말이다. 

  아마 새 집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고, 동네도 낯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간혹 딱히 원인을 모를 때는 나이 탓도 하게 되는데, ‘20대에는 새로운 동네에 대한 호기심으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30대라 낯선 것이 주는 흥분 보다는 겁이 늘었나’ 생각했다.

  한 주가 지나도 악몽이 계속됐다. ‘집을 아직 온기로 가득 채우지 않아서 그런가보다’하고 밥도 하고 찌개도 끓이고 복작복작 해보았다. 처음으로 풍수지리를 진지하게 믿어볼까 생각했다. 남편도 악몽이 계속되면 침대 방향을 돌려 보자며, 베개나 이불도 더 잘 맞는 게 있는지 찾아보자고 했다. 나중에는 수면 적정 온도와 습도를 찾았고, 습·온도계를 침실에 두고 부단히 애를 썼다. 


  어느 새부터 악몽은 잦아들었는데, 동네와 친해지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우리 집 주변에는 체인점 보다 개인이 운영하는 주인의 취향이 담긴 식당이나 카페들이 곳곳에 있다. 

  귀여운 강아지가 반겨주는 카페가 있다. 강아지 유치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사장님과 같이 출근하는데, 사람을 좋아하는 나머지 손님들을 가장 먼저 반긴다. 눈이 마주치면 조용히 다가와 엉덩이를 내민다. 우리 동네를 좋아할 이유가 늘어난 셈이었다. 통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좀 쐬고 있기에도 좋고, 커피와 디저트류 모두 맛있어서, 남편과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집에 꽃을 두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기도 하니, 꽃을 좀 꽂아놓기로 했다.

  “질 보다 양으로, 집에 둘 2만원 어치만 주실 수 있나요?”

  동네 꽃집에 가서 조심스레 물었는데, 사장님은 ‘마침 들어온 꽃이 있어서 2만원이면 충분히 드릴 수 있어요’라며 꽃을 꺼냈다. 

  “여름철이 꽃이 가장 저렴한 시즌이에요. 시기적절하게 잘 오셨어요. 장미꽃은 색이 좀 연하면 가치가 낮다고 가격이 확 낮아지거든요. 꼭 붉은 빨간색 아니어도 되고 이런 분홍색 장미꽃도 좋아하시면 같이 드릴게요.”

  내가 기대했던 양보다 두 배 쯤 되는 꽃다발을 신문지에 싸서 주었다. 집에 있는 화병이 부족해 임기응변으로 와인 병 빈 병과 더치커피 담았던 병을 깨끗이 씻어 화병으로 활용했다. 


  점차 우리 동네에 단골 가게가 늘어나고, 자랑하고 싶을 만큼 좋은 가게들이 많이 생겼다. 건강한 재료로 만드는데 맛있기까지 한 베이커리가 있는 데, 한동안 소금빵 샌드위치 메뉴에 꽂혀 발길이 이어졌다. 소금빵에 바질페이스트를 바르고 썬드라이 토마토와 햄, 치즈를 얹어 먹으면 좋은 주말 브런치가 된다. 좋은 과일만 선별해 판매하는 과일가게, 사장님이 추천하는 몇 가지 종류의 와인만 들여오고 주기적으로 라인업이 바뀌는 와인 바틀샵, 인생 단발머리를 만나게 해준 미용실, 메뉴판만 봐도 배우신 사장님이 틀림없는 술집 등, 동네에는 내가 좋아하는 곳들로 가득해졌다.     


  나이니, 풍수지리니, 침구니 악몽의 원인을 찾아 헤맸지만, 돌아보면 새 동네, 그리고 새 보금자리와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고, 악몽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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