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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Oct 04. 2024

떴다! 삼일특공대

30회

이제 2주 후면 독도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삼일절 독도칼부림사건이 발생한 지 꼭 6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의 대표적 극우단체에 의해서 치밀하게 계획되었던 이날의 사건으로 한국대학생 한 명과 일본인 세 명이 희생되는 참상이 발생했다.

다케시마 수복결사대는 이날의 사건을 명분으로 사쿠라가 절정에 이를 즈음 독도를 침략했고 급기야 한일 간의 독도전쟁으로 비화되었다.

당시 흑군파의 기습적인 침략에 맞서 삼십삼  독도경비대원들은 최후의 한 명까지 장렬하게 싸웠지만 안타깝게도 전원이 전사하는 큰 희생을 치르고 말았다.


일본에 빼앗긴 독도를 탈환하기 위하여 해병대 1사단이 출동했을 때 그 지휘대장이 바로 유 소령이었다.

독도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 소령은 ‘독도수호 철통 해병부대’가 창설될 때 자원하여 초대 부대장이 되었다.

당시 정부는 제2의 독도전쟁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독도를 철통 방어기지로 구축했다.

단순히 소극적인 개념의 방어기지가 아니라 동해를 사수하는 최전방의 전진기지로 변화시킨 것은 유 대장의 공이 지대했다.

유 대장은 이미 해병대뿐만 아니라 국방부차원의 독도 지킴이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보직은 철밥통처럼 굳건하기만 했다.

군의 인사원칙상 5년 연속으로 독도부대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조치에 가까웠다.


이번에 중령으로 진급하면서 곧 해병대사령부로 발령이 날 예정인데 이미 야전 근무에 특화된 온몸의 근육들이 벌써부터 근질근질하여 몸살이 날 지경이다.

이럴 때 운명의 여신이 그를 찾아왔다.

사십 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유 중령을 국방부장관이 연방정부청사로 불러들였다.

“유 중령! 당신은 이미 독도수호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어! 우리 해병대의 자랑이야!”

긴장된 자세를 유지하던 유 중령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을 뿐입니다!”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곧 해병대사령부로 발령 날 예정이던데 어떤가?

그보다는 당신 성미에 딱 들어맞는 특수임무를 한번 맡아보는 것이!

구미가 당기지 않은가?”

유 중령은 일체의 좌고우면 없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구미가 당깁니다! 무엇이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그렇잖아도 답답한 사령부의 업무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는데 사령부만 아니라면 아무 데라도 상관이 없었다.


장관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구미가 당길 거야! 내가 연방대통령님께 큰 소리를 쳤던 것도 당신들 같은 골수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지”

잠시 후 밖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때마침 당신의 부사수가 등장했구먼!”

우람한 체격의 큰 덩치에 새까만 얼굴이 인상적인 이 소령이 들어왔다.

군기가 바짝 들어간 절도 있는 자세로 경례를 한 후 평양말씨로 떠나갈 듯이 소리쳤다.

“국방장관님의 부름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소령의  늠름한 태도가 흡족했던지 장관이 책상 앞으로 걸어 나와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당신이 백두산흑곰이라며! 한눈에 봐도 흑곰이 틀림없구먼!

그래 잘 왔어! 두사람다 이리로 들 와서 앉지!”


창가 쪽으로 배치된 회의용 탁자의 양편으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을 바라보던 장관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이제 딱 두 주가 남았구먼,

2주 후면 우리 연방에서 가장 위험한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네,

그것도 하필이면 우리 조상님들이 목숨 걸고 일제의 압박에 항거했던 신성한 삼일절을 골라서 말이야,

우리 연방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평양!

그 평양의 중심부인 중앙광장은 그야말로 극단의 두 단체로 말미암 피범벅이 될 것이야!

어쩌면 저들이 원하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

저들의 목적은 우리 연방을 또다시 두 동강내는 것일 텐데 독도수호 철통 부대장!

신일진회가 내어 걸 집회의 선동구호가 무엇인지 아는가?”

“예! 평양 대진격의 날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

유 중령의 두 눈동자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6년 전의 독도전쟁이 생각납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하여 삼십삼 명 독도경비대원들과 여섯 해병의 고귀한 생명이 바쳐졌습니다,

큰 희생을 토대로 탄생한 대고려연방을 또다시 분단시키기 위하여 토착왜구들이 설쳐대는 꼴입니다,

결단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탁자를 내리치려던 유 중령의 왼손을 장관이 오른손으로 불끈 감쌌다.


이번에는 왼편의 이 소령을 바라봤다.

“백두산 흑곰! 난 이 소령보다는 이 별칭이 훨씬 정감이 가네만 그렇게 불러도 되겠나? 흑곰!”

피씩 입 꼬리가 올가가 던 이 소령이 이번에도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기왕이면 백두산 흑곰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장관이 파안대소하면서 이 소령의 오른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힘차게 감싸며 말했다.

“자네 역시 내가 그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어,

백두산부대의 중대장으로서 자네가 보여준 활약상은 꽤 인상적이었거든!

아마도 통일이 되던 해였으니까 벌써 5년이 지났구먼!

남북대학생탐험대와 함께 씩씩하게 행진하던 자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네,

중국군을 제압하고 우리 국민들을 구출해 냈을 때는 또 얼마나 감동을 먹었는지 아는가!

중국군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던 자네의 그 당찬 기개를 지금의 연방은 필요로 한다네!

백두산 흑곰! 자네에게 묻겠네?

신성한 삼일절 날 북조선재건회의가 내어 걸 집회의 선동 구호가 뭔지 아는가?”


장관의 질문과 동시에 탁상 위에 올려진 이 소령의 양팔이 부덜부덜 떨렸다.

“개돼지로 사느니 총집결하자, 백두로!라고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반연방 분열구호가 아닙니까?

반동분자 박철의 뒤에는 중국군부가 버티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이 따위의 반역집회를 허용한 행정법원판사의 대갈통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 갔습니다!”

이 소령의 다소 거친 언사에도 장관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씁쓸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번갈아서 바라보던 그의 두 눈에선 강력한 레이저가 발사되었다.

“연방대통령님께서 내게 뭐라고 명령하셨는지 아는가?”

장관이 묘한 미소를 띠면서 잠시 뜸을 들이자 두 사내들도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두 사람도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중국과 일본의 사주를 받은 저 토착 왜구 놈들과 땟놈들을 역도들이라고 지칭하시면서, 

대고려연방의 역도들을 처단하라고 명령하셨네! 어떻게?

그 옛날 수양제와 당태종을 박살 냈던 대고구려의 용맹스러운 기상으로 말이야!”

두 사람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장관을 바라보며 거의 동시에 말했다.

“연방군대가 나서는 겁니까?”

“계엄령이 발동되는 겁니까?”

장관이 다시 두 사람의 어깨를 한꺼번에 눌러서 함께 자리에 앉았다.

“저들이 무슨 요술을 부려서 연방행정법원으로부터 집회허가를 받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연방은 결단코 저들의 집회를 허용할 생각이 없다네,

그렇다고 민주국가에서 무턱대고 계엄령을 발령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계엄령도 아닌데 마구잡이로 군대를 투입할 수도 없지 않겠나?

연방대통령님이 내게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저들의 응징을 주문하셨을 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자네들을 경찰특공대에 파견하는 방안이었어!

어떤가? 자네들도 연방대통령님의 명령을 이행하고 싶지 않은가?”


경찰특공대로 파견된다는 말에 갑자기 머릿속이 엉클어져 버린 두 사람이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는 사이 장관이 탁상을 내리치면서 큰 소리로 고함쳤다.

“어떤가? 그럴 생각들이 있는가! 없는가!”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더니 금세 의기투합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동시에 말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명령을 따르갔습니다!”   

장관이 이들의 두 어깨에 양팔을 올린 채 힘차게 흔들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 독도수호 철통 부대장이고 백두산을 누비던 흑곰이지!

이번 기회에 연방군대의 매운맛을 똑똑히 보여주란 말이야!

대고려땅에서 두 번 다시는 이따위의 역적질을 모의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 줄 수 있겠나?”

“맡겨만 주십시오! 얼반 죽여 놓겠습니다!”

“백두산흑곰의 피맛을 보여주갔습니다!”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두 사람은 장관실을 나서자마자 곧장 연방경찰청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 이들의 신분은 군인에서 경찰로 변신되었고 일체의 행정 처리는 연방정부차원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난생처음 연방경찰복장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두 사람에게 연방경찰청장은 총경계급장과 경정계급장을 달아주었다.

이번에 새로 창설한 삼일특공대의 대장과 부대장으로 임명하는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말했다.

“자네들은 이제부터 연방대통령님의 명령으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자네들이 수행할 임무는 우리 연방의 안위와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실패는 있을 수 없고 오직 임무의 완수만 있을 뿐이다!

우리 연방경찰은 두 단체 간의 폭력사태가 예견될 경우 집회의 해산을 명령할 것이고, 이에 불응할 경우 곧바로 엄정한 법집행을 개시한다!

우린 연방법을 집행하되 저들을 선량한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연방을 분열시키려는 외세의 앞장이로 간주하고 응징하게 될 것이야!

이에 대한 모든 법적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역도들의 머리와 가슴부위만 손대지 말고 팔과 다리정도는 얼마든지 부러뜨려도 좋다,

대고려연방을 분열시키려는 매국노들에게 베풀 온정 따위는 없으니 반쯤 죽여서 연방법의 준엄함을 만천하에 보여주도록!

연방경찰청 삼일특공대 대장 유 총경!

연방대통령님과 날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 있겠나?”


그렇잖아도 토착왜구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유 대장으로서는 그 어떤 좌고우면도 있을 수 없었다.

“예! 반쯤 죽여서 두 번 다시는 반연방 역적질을 못하도록 단단히 버릇을 고쳐 놓겠습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경찰청장이 유 대장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면서 말했다.

“더도 덜도 말고 말이야,

독도를 탈환할 때의 그 기개로만 싸워주게!”

“예! 죽을힘을 다해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경찰청장이 이 경정을 바라보며 고함치듯 말했다.

“연방경찰청 삼일특공대 부대장 백두산흑곰!

대고려연방 국민들의 십 년 묵은 체증을 시원하게 뚫어줄 수 있겠나?”

“땟놈들과 쪽발이 놈들의 간담이 서늘하게끔 백두산흑곰의 매서운 맛을 보여주갔습니다!

다시는 까불지 못하도록 질근질근 씹어서 먹어버리겠습니다!”

이 부대장이 우작스럽게 먹이를 뜯어먹는 흑곰의 흉내를 내자 장내는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들의 결의에 찬 모습이 흡족했던지 연방경찰청장의 두 손은 좌우의 두 삼일특공대원을 와락 끌어안았다.


국방부장관과 경찰청장은 평소에도 정치와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학자 출신의 연방대통령을 마음으로부터 존경했다.

일체의 정치적 편견 없이 오직 연방의 안착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크게 감명받았다.

연방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국민들에게 연방의 구심점으로서 통일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각인되었다.

지만 무소속의 한계는 부정할 수 없었다.

5년 전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남과 북이 하나되었을 때 당시는 이질적인 남과 북이 조심스럽게 섞여다분히 과도기적인 상황이었다.

물리적인 통일뿐만 아니라 화학적으로도 완전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연방대통령처럼 정치색이 무색무취한 화합형 지도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9월 초로 예정된 제2대 연방대통령 선거부터는 정당 간의 경쟁구도가 형성될 수밖에 없어 연방대통령의 입자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럴 때 연방대통령의 연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연방정부 내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주도하던 대표적인 인사가 국방부장관과 경찰청장이었다.

이들은 연방대통령의 연임을 위한 정치적인 명분을 찾고 있었는데 바로 민족주의에 바탕한 강력한 리더십이었다.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흐름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꿈틀대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포문을 열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민 대통령이었다.

연방의 정치지형상 마음만 먹는다면 본인이 직접 나설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는 연방대통령의 연임을 언급하면서 정치적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런 와중에서도 연방대통령 스스로는 자신을 무능한 정치인이라고 단정하면서 다가오는 제2대 연방대통령 선거에는 나설 의향이 없었다.

연방법으로는 중임이 가능했지만 나서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단지 정 위원장이 마음에 걸렸고 정 위원장을 비롯한 북쪽 다섯 개 주 국민들이 통일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남은 임기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겉으로는 연방경찰의 단독작전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군경의 합동작전이 분명한 문제의 이 작전을 내부적으로는 ‘미친개 퇴치작전’으로 명명했다.

며칠 후 평양의 능라도종합경기장에서는 전국의 각지에서 올라온 연방경찰 버스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섰다.

대고려연방의 명운이 걸린 3월 1일까지는 이제 꼭 열흘,

전국의 열두 개 주에서 올라온 태권도 유단자들로 구성된 연방경찰의 수가 무려 일만이었다.

연방경찰청 삼일특공대의 집압훈련은 좌군과 우군으로 나뉘어서 밤낮없이 강행되었다.

유 대장이 지휘하는 우군은 남쪽 여섯 개 주에서 파견된 연방경찰로 구성되었고, 이 부대장이 지휘하는 좌군은 북쪽 다섯 개 주와 광개토대왕자치주에서 파견된 연방경찰로 구성되어 자연스럽게 좌우군의 경쟁체제가 형성되었다.

우군은 유 대장의 독도수호 철통 해병부대를 빗대어서 철통독도부대로 불리었고 좌군은 이 부대장의 별명을 따서 백두산흑곰부대로 불리게 되었다.

비록 짧은 열흘간의 훈련이었지만 두 부대 간의 치열한 경쟁구도로 인하여 훈련의 효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들의 훈련복장은 거추장스러운 시위진압복장이 아니었다.

머리에는 가벼운 흰색 헬멧을 썼을 뿐 날렵한 청잠바와 청바지 차림에다 딱딱한 축구화를 신고 있었다.

헬맷의 좌우에는 무궁화와 목란이 사이좋게 문양으로 박혀있어 이들이 연방경찰임을 알게 했다.

예외 없이 등 뒤에는 묵직한 2미터짜리 죽검을 차고 있었고, 죽검을 휘두르는 특공대원들의 표정에서는 한껏 격앙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연방국회가 통과시킨 헌법개정안의 국민투표 일자가 6월 15일로 확정되었다.

개정내용은 딱 두 가지였다.

옥상옥의 불필요한 존재로 지목되었던 제6장의 헌법재판소를 폐지하는 안과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에서 단서조항이 삽입되었다.

‘단, 대고려연방을 분단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한 자는 연방의 국민이 누리는 기본적 권리를 박탈하반통일죄로 처벌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조항이었으나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연방대통령의 뚝심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였다.     


드디어 대고려연방의 명운이 걸린 2035년 3월 1일의 태양은 동해바다의 수평선을 뚫고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이른 새벽부터 남북의 모든 고속도로는 평양을 향해서 달려가는 관광버스의 행렬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신일진회와 북조선재건회의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참여자들에게 고가의 일당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삼십만 원부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백만 원으로 까지 인상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국회를 통과한 헌법개정안의 영향으로 어지간한 반연방주의자가 아닌 이상 집회에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칫하면 반통일 분단주의자로 낙인  일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양측에서부터 올라가고 내려오는 인파의 물결이 족히 이십만은 넘어 보였다.

그만큼 골수에 사무친 토착왜구와 토착땟놈들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요소요소 광범위하게 숨어있었다는 반증이다.


이제 그들이 단체로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한 곳을 향하여 모여들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대고려연방을 무너뜨려서 다시금 과거의 분단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믿는 자들이 그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부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예정되었던 열한 시가 다가오자 금수산태양궁전 앞 중앙광장은 좌편과 우편으로 나뉘어 각 진영당 십만 이상의 거대한 인파들이 운집했다.

양 진영의 무대에 설치된 대형 확성기에서는 과거 분단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랫소리와 정치적 구호들이 난무하면서 집회의 분위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삼일특공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백 대의 연방경찰버스는 광장의 좌우에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지만 정작 광장 안에서는 버스너머의 상황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정복차림의 연방경찰들느슨하게 진영의 한가운데를 가르면서 질서를 유지했다.


수백 장도 더 되어 보이는 현수막들이 삼만 평 규모의 드넓은 중앙광장을 둘러치고 있었다.

대부분 통일을 후회하는 내용들과 또다시 분단을 촉구하는 허접한 문구들 일색이다.

그중에서도 애드벌룬에 매달린 채 공중에서 펄럭이고 있던 저들의 메인 현수막 두 개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나는 ‘평양 대진격의 날’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돼지로 사느니 총집결하자 백두로!’였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사용한 문양의 표식이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태극기와 인공기가 아니었다.

한쪽은 화려한 벚꽃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붉은색 큰 별과 나란히 선 작은 별의 문양이다.


주석궁 앞의 중앙광장이 족히 이십만도 더 되는 인파로 꽉 들어차게 되었을 때 좌우의 단상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확성기소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를 원색적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마치 상호 간 충돌시각을 합의라도 했다는 듯 충돌직전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째깍째깍 곧 터질 것 같은 세기의 특종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세계에서 몰려든 언론사 카메라들도 초긴장 상태다.


행사를 시작하고서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양 진영의 무대 단상에서는 거의 동시에 나 회장과 박철이 마이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경쟁하듯 대고려연방에 대한 끝 간 데 없는 저주의 독설을 쏟아냈다.

그런데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두 소리가 서로 상충하는가 싶더니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다 같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그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자 서로가 상대에게 마이크를 끄라며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양 진영을 갈라놓는 안전장치라고는 정복차림의 연방경찰들이 서너 발작마다 한 명씩 줄지어 선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 회장이 물을 마시기 위하여 잠시 마이크를 내려놓았을 때였다.

간간이 들려오던 북조선재건회의 박철대표의 연설이 갑자기 쩌렁쩌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경애하시는 우리 총사령관님께서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 줄 아십니까?

며칠 전에도 제가 찾아뵈었는데 피눈물을 흘리시면서 통일을 후회하고 계셨습니다!

남조선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울분을 토로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인민군대까지 다 내어준 판국에 우리 인민들은 남조선의 개돼지가 되었다고 치를 떨고 계셨습니다!

혹시 여기 모이신 분들 중에서 통일된 지금의 세상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 저기 몇 분이 손을 드셨는데요,

저 사람들은 틀림없이 남조선에서 올라온 역당들이 맞을 겁니다,

남조선 역당들은 손을 내리라우! 당신들한테 물어본 게 아니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남조선의 개돼지로 사느니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떨쳐 일어나 이 더러운 세상을 확 뒤집어엎어야 합니다!”


십만 인파의 열광적인 함성 속에서 박철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때였다.

기회만 엿보던 나 회장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거의 빛의 속도로 마이크를 잡았다.

“반역죄요!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라도 된답디까?

도무지 안 맞는 사람들하고는 굳이 모여서 살 것이 아니라 헤어져서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 수가 있어요,

여기 북한사람들하고 우리는 과거 한차례 전쟁도 치렀던 관계라 회복할 수 없는 구원의 찌꺼기도 남아 있단 말입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행복하게 잘 살면 장땡이지 뭣 때문에 기어이 하나가 못 돼서 이 야단들인지 난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남쪽과 북쪽은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여기 평양만 해도 도대체 무슨 놈의 동상이 저리도 많은 겁니까?

정 씨 왕조 폭망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저런 흉측한 동상들이 버젓이 서 있단 말입니까?”

나 회장의 이 말과 동시에 좌측편의 일십만 군중들이 일제히 흥분하면서 우측편의 군중들을 향해서 거칠게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손에 쥔 물병을 던지기도 하고 정복경찰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나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 위원장 그 작자도 대단히 문제가 많은 사람이에요!

과거의 인권유린 사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법정에 세워서 단죄해야 합니다!"

나 회장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금수산 태양궁전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한껏 목청을 드높였다.

“저기 저 안에 누가 잠들어 있는 줄 아십니까?

두 독재자가 금칠을 하고서 호사스럽게도 드러누워 있다고 합니다,

모두 끄집어내어서 부관참시를 해야 합니다!”


이쯤 되자 이제는 정말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중간지점을 느슨하게 지키던 정복경찰들도 줄을 지어서 퇴장하기 시작했다.

중과부적인 상황이라 지금 피하지 않는다면 자칫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어 취해진 조치였다.

그런데 이 장면은 모두가 원하던 장면이었다.

신일진회도 원했고 북조선재건회의도 원했고 심지어는 연방경찰버스 뒤에서 대기하던 삼일특공대도 간절히 바라던 장면이었다.


드디어 철통 독도부대와 백두산 흑곰부대가 몸을 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

애초부터 이런 사실을 알턱이 없었던 두 진영은 서로 간에 합의된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분단시절 때처럼 서로 간 집단적인 증오의 감정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만큼 전쟁을 치를 작정이었다.

이렇게 싸울 거라면 차라리 다시 헤어지는 편이 낫겠다는 여론이 형성될 때까지 그렇게 처절하게 싸우기로 묵계되어 있었다.


이 시각 주석궁의 중앙광장은 좌우로 나뉜 이십만의 집회인파가 서로 충돌하기 일보직전의 상황이다.

이 장면들은 긴급속보가 되어서 전 세계의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송출되었다.

세계인들은 또다시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던 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기 위하여 속속 TV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북경의 시 주석 집무실,

몇몇의 상무위원들이 TV모니터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때 왕 서기가 모처럼 자신의 공치사를 하고 싶었던지 입이 건질건질 했다

“주석님의 동의하에 다 내가 기획한 사업이었습니다,

두고 보시면 알겠지만 머지않아서 내전이 일어날 겁니다,

한반도가 다시 두 동강으로 쪼개어질 때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아질 겁니다!”

시 주석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지만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로하고 싶었던지 왕 서기를 바라보며 피씩 입 꼬리가 올라갔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과 도쿄의 총리 집무실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이들 외세들의 입장에서는 대고려연방의 등장으로 그동안 그들이 누리던 전략적 이익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이 지역에서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현실적으로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분단시절 자신들의 눈치나 살피던 두 약소국이 갑자기 하나가 되어서는 NK차르봄바 급의 치명적인 핵무력을 보유한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해 버렸으니 어찌 불편하지 않았겠는가!

지금 세계인들이 TV모니터로 시청하고 있던 이 재미난 장면들은 대고려연방의 분열을 학수고대하던 외세들의 간절한 바램을 십분 만족시켜 주었다.

큰 골칫거리 하나가 사라질 조짐을 보이자 그들은 쾌재를 부르면서 이 상황을 맘껏 즐기고 싶었다.


그때였다.

드디어 광장의 좌우 끝지점에 나란히 주차되어 있던 연방경찰버스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밀착되어 있던 버스들이 사람의 이동이 가능할 만큼의 틈을 벌이는가 싶더니 건너편에서 삼일특공대원들이 크게 원을 그리면서 달려 나왔다.

삽시간에 좌우에서 오천 명씩 일만의 특공대원들이 둘러싸게 되자 광장은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봉쇄됐다.

여기저기서 ‘백골단이 나타났다!’라고 소리치며 웅성대기 시작한다.


나 회장이 당황하여 머뭇거리는 사이 박철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오호라! 연방경찰 놈들이 지금 우리하고 한번 해보자는 거지요!

어림잡아서 은 되어 보이는데 오늘 참석한 우리 북조선재건회의 동지들의 수가 족히 십만은 넘는단 말입니다,

저기 남조선에서 올라온 벚꽃 미치갱이들이야 다리야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바쁘갔지만 우리 재건회의 동지들은 사정이 좀 다르지 않갔어요!”


그러면서 박철이 품 안의 안주머니에서 대략 오십 센티 길이의 금칠로 도색된 막대를 꺼내어 왼손으로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좌측편의 일십만 북조선재건회의 패들이 동시에 품속에서 똑같은 형태의 금색막대를 꺼내 들었다.

금칠한 막대에 새겨진 붉은색의 큰 별과 작은 별의 문양은 중국이라는 큰 별과 북조선이라는 작은 별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했다.

박철이 오른손을 들어 막대의 끝을 잡아당기자 태양빛에 반사된 서슬 퍼런 칼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동지들! 총사령관님을 드높이 모시고 다시 한번 더 인민의 낙원을 건설해 보지 안 갔어!

우리 모두 죽을 각오로 싸워보지 안 갔어!”

이 소리에 십만 재건회의 패들이 일제히 삼일특공대를 향하여 방향을 돌리며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들었다.

‘와’하는 엄청난 함성소리를 내어 지르며 곧바로 찔러버릴 기세로 전투자세를 갖추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비열한 빨갱이 놈들이 칼을 준비하셨구먼!”

확성기에서는 나 회장의 간사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빨갱이 놈들은 나중에 손봐주기로 하고 우선 저 연방경찰 놈들부터 아작을 내버려야겠어!”

이들의 복장은 처음부터 간편한 등산복차림이었고 각자 1.5미터 길이의 등산용 지팡이를 휴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팡이는 일반적인 보통의 등산용 지팡이가 아니라 최근 일본에서 개발된 일만 볼트형 초강력 전기충격기였다.

나 회장이 먼저 오른손을 높이 들고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지팡이에서 불꽃이 튀면서 고압의 전류가 흘렀다.

이것을 신호로 나 회장의 십만 남쪽 패들이 하늘을 향해서 동시에 고압전류의 버턴을 눌렀다.


일촉즉발의 이 영화 같은 장면들은 또다시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완전무장한 이십만의 두 진영과 대치하던 연방경찰의 대응은 병력의 숫자로 보나 무기체계로 보나 너무나도 허술해 보였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연방의 민낯이 철저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만약 여기서 연방경찰이 무너진다면 대고려연방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외세의 사주를 받은 분단세력들은 더욱더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고, 종국에는 한민족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대고려연방이라는 이름도 반납해야 되는 상황다.


이 아찔한 상황에서 삼일특공대의 유 대장과 이 부대장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유 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경찰버스 위에 설치된 길이 3미터의 초고성능 앰프가 엄청난 압력으로 증폭되는가 싶더니 단번에 두 진영의 소리를 압도해 버렸다.

“나 연방경찰청 삼일특공대 대장이요!

신성한 삼일절을 맞이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는 대고려연방의 역도들에게 경고한다!

셋을 셀 때까지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하라!

투항하지 않는다면 폭력시위에 관한 연방 법률에 따라서 강력 응징할 것이다!

하나!”

이 소리에 일만의 삼일특공대원들이 허리춤 뒤에 차고 있던 방독면을 쓰기 시작했다.

“둘!”

이 소리와 동시에 특공대원들이 자신들의 청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기 시작했다.

“셋! 삼일특공대 돌격!”

이 소리와 동시에 특공대원들이 주머니에서 꺼내든 것은 빨간 사과모양의 최루탄이었다.

광장을 둘러싼 특공대원들이 일제히 사과 탄을 던지자 순식간에 온 광장이 최루탄 연기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최루탄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잠시잠깐의 정적이 유지되었다.

이 정적의 실체는 삼일특공대원들이 본격적인 미친개 퇴치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허리춤 뒤의 죽검을 빼어드는 정적이었다.


이때 ‘와!’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좌우에서 일만의 특공대원들이 일시에 광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좌측의 백두산흑곰부대는 북조선재건회의 진영을, 우측의 철통독도부대는 신일진회 진영을 보이는 대로 인정사정없이 죽검으로 내리쳤다.

머리와 가슴부위만 제외한 채 허리와 다리 팔을 겨냥하여 닥치는 대로 내리쳤다.

죽검을 내리칠 때 나던 ‘쩍쩍’하는 소리가 온 광장에 울려 퍼지면서 외마디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고 역도들이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간혹 쓰러지기를 거부하면서 안간힘을 다해서 버티면 뾰족한 축구화로 무지막지하게 촛대 뼈를 가격하여 쓰러 뜨렸다.

삼일특공대원들에게 있어 그들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외세의 사주를 받고 통일조국을 분단시키려는 미친개로 취급되었다.


광장을 완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광장은 역도들의 역겨운 피냄새로 진동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엠블런스를 부르지는 않았다.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아직도 멀쩡한 자들의 손에는 그들끼리 수갑이 채워졌는데 그 길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차마 눈 뜨고서는 바라볼 수 없는 이 참혹한 광경을 북경 도쿄 워싱턴에서도 목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과격한 진압방식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는 정도의 의례적인 브리핑만 했을 뿐 깊이 개입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연방정부가 쳐놓은 덫에 반통일 세력들이 한꺼번에 걸려들어 일망타진된 사건으로 분석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외세들은 이제 아무런 걸림돌도 없이 거침없이 질주하게 될 대고려연방의 향후 행보를 걱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북경의 시 주석 집무실,

조금 전까지의 흥분된 분위기와는 달리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시 주석의 이 한마디가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이 될 예정이다.

“저것은 대고려연방의 국내문제로서 주변국들이 개입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일관되게 대고려연방과의 우의를 유지할 것이며…”


옆자리의 부인이 정 위원장의 왼손을 가만히 감싸는 가운데 정 위원장도 서재의 TV를 통해서 속보 형식으로 방송되는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로하신 연방대통령께서 나와의 약속을 지키셨구먼! 이제야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어!”

떠난다는 정 위원장의 말에 일순간 감정이 복받친 부인의 눈가에서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이내 밝은 표정으로 정 위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진짜로 통일된 것이 맞지요?

우리나라가 다시는 분열되지 않겠지요?”

부인의 이 말에 정위원장이 화통하게 웃으면서 저만치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진숙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럼! 이제 대고려연방은 아무도 못 건드려!

동북아시아의 최강자로 우뚝 일어섰단 말이야!

두고 들 보라고? 앞으로 미국 중국 일본아이들이 쩔쩔매면서 우리한테 매달리게 될 테니까!”


세계의 여론은 참으로 미묘하게 흘러갔다.

정상적인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참혹한 장면들이 전송됐지만 세계의 여론은 의외로 연방정부에 우호적이었다.

세계의 언론들이 처음부터 광장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태의 전개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던 탓이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전송한 기사의 타이틀은 ‘뿌리째 뽑혀버린 대고려연방의 반통일 세력!’이었다.

일본과 중국의 소규모 온라인 매체에서는 연일 연방경찰의 가혹한 진압방식을 비판했지만 대부분의 주류언론들은 국내정치적인 문제로 치부하면서 아예 기사로도 다루지 않았다.

주변국들이 각자 알아서 눈치껏  동북아 최강자에 대한 심기외교에 나설 것이라던 정 위원장의 예견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진숙의 보고를 받은 연방대통령은 민 대통령과 함께 또다시 예고도 없이 정 위원장의 관사를 방문했다.

연방대통령이 정 위원장을 보자마자 황망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이런 낭패스러운 일이 다 있답디까?

이민을 가신다고요? 재고해주셔야 합니다!

이제 겨우 연방이 안정을 되찾아 가는 마당에 그런 황망한 결정을 하셨단 말입니까?”


정 위원장이 편안한 미소를 띠면서 두 대통령을 번갈아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차라리 지금이 적기지요!

내가 떠나야 우리 연방이 더욱 안정을 찾을 겁니다, 

보세요? 얼마나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다과상을 준비하여 서재로 들어오던 부인의 밝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었다.


부인이 직접 다소곳하게 녹차를 따른 후 최근에 보기 힘든 화사하게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위원장님께서 마음의 결정을 하신 후부터 우리 부부는 정말로 편안해졌습니다,

이제야 정말 살 것 같습니다!

두 분 대통령님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내외도 이제부터는 여생을 좀 편안하게 보내고 싶어서 그럽니다”

두 내외의 태도로 볼 때 이미 내려진 결정을 물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간파한 민 대통령이 정 위원장에게 물었다.

“그래 어디로 가시기로 하셨습니까?”

이때 정 위원장의 입에서 의외의 답변이 튀어나왔다.


“쿠바로 가기로 했습니다!”

쿠바로 간다는 정 위원장의 말에 두 대통령이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연방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방금 쿠바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잘못들은 것은 아닌지…”

정 위원장이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쿠바가 맞습니다! 쿠바와는 공화국시절부터 참으로 우의가 돈독했었지요,

우리가 어려울 때, 심지어는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우리를 외면하던 순간까지도 유일하게 의리를 지켜준 나라가 바로 쿠바였습니다,

쿠바의 국가평의회 의장은 최근까지도 내게 연락을 하여와서는 나의 근황을 물어왔더랬습니다,

주석궁 집회문제로 한참 머리가 아플 때는 지나가는 말로 코히마르 해변을 걷고 싶다고 했더니 진짜로 초청장을 보내왔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코히마르 근처의 작은 섬 하나를 통째 비워놓고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물러도 좋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안사람이 너무 좋아해서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렇게 말한 정 위원장이 부인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미소 짓자 부인이 소녀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급 중학생 시절 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정말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오래전에 위원장님한테 코히마르 해변을 거닐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가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행복합니다!”


행복해하는 부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행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민 대통령이 이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답답하실 텐데요, 어쩌면 많이 무료하실 겁니다,

섬 생활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것도 지구반대편에 위치한 중미대륙의 쿠바라니요!

웬만하면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시지요!”


정 위원장이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가령 내가 러시아나 중국 어디쯤으로 간다고 했을 때 오히려 더 복잡해지지 않겠습니까?

그 두나라가 좋은 뜻으로 받아줄 리도 만무하겠지만 나로서도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쿠바쯤으로 가야 나라가 조용해질 겁니다,

눈에서 멀어져야 잊히는 것이고 인민들의 마음에서 잊혀야 우리 인민들이 미래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다시 우중충해지려고 하는데 그냥 두 분께서 편하게 보내주시라요!”


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한 민 대통령이 고개를 돌리면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안경을 벗은 후 눈가 주위를 촉촉하게 적신 물기를 닦은 후 살짝 메인 소리로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우선 당분간만 그렇게 하시지요!

절대로 길게 머무를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잠깐 여행 가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부인이 씩씩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위원장님하고 저는 난생처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 시간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는 쿠바에 도착하면 농사를 지을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신이 납니다!”


부인의 이 말에 정 위원장이 겸양 은 표정으로 호방하게 웃으며 또다시 부인의 오른손을 따듯하게 감쌌다.

“뭐 그러기로 했습니다,

농사짓고 있는 나의 모습이 참 많이도 어색하시겠지만 사실은 나로서도 기대가 됩니다!”


연방대통령도 더 이상은 만류의 말을 하지 못했다.

“정히 그러시겠다면 한 몇 년 만 계시다가 다시 돌아오시죠,

제가 쿠바의 국가수반께도 따로 연락을 넣어 놓겠습니다,

그리고 딱 한 가지만 더 요청을 드리자면 쿠바로 가실 때 연방정부의 전용비행기를 이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또”


이때 정 위원장이 연로한 연방대통령의 두 손을 감싸며 이번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방대통령님께는 참으로 많이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마음고생을 시켜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두 잊어주십시오!

네 까짓것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방전용기를 타고 가지요!”


연방대통령이 다시 정 위원장의 두 손을 감싸면서 살 뜻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원장님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대고려연방은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통일 후 이렇게 빨리 안정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 모두가 위원장님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커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쿠바로 가시더라도 우리 대고려연방의 국정자문위원장 자격으로 가시는 거니까,

우리 연방 대사의 정기적인 방문도 받으시고 연방정부 차원의 제반지원도 꼭 받으셔야 합니다!”


위원장의 전매특허인 듯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대통령도 따라서 함께 일어났다.

정 위원장이 두 대통령의 어깨를 감싸면서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쿠바까지 가서 그렇게 번잡스럽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두어 가지 일만 처리하게 되면 곧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아쉽지만 두 분 대통령님들과도 여기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나고 싶어서 그러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시거든 쿠바로 꼭 한번 놀러 오십시오!

제가 농사지은 것들로 식사 대접을 하겠습니다! 으흐흐흐”  


두 대통령이 다녀간 다음날부터 정 위원장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마지막 정리 작업을 빠르게 진행해 나갔다.

림광철 국정자문위원의 책임 하에 북쪽 다섯 개 주 전역에 산재해 있던 어마어마한 숫자의 동상들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대형 크레인에 의해서 조심스럽게 내려진 동상들은 몇 부분으로 절단되어 근방의 건축자재 재활용공장으로 운반되었다.

잘게 분쇄된 석분은 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었는데 건축자재로서도 인기가 좋았지만 기념품으로 보관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 위원장이 부인과 진숙 그리고 네 명의 국정자문위원들을 대동하고 평양특별시자치주의 주지사실로 들어섰다.

이 자리에는 북쪽 다섯 개 주와 광개토대왕자치주까지 모두 여섯 명의 주지사가 정 위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고려연방은 이제 그동안의 역경과 어려움을 물리치고 명실 공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 위원장이 보여준 희생과 결단에 대하여 과거 그를 따랐던 인민들이 가지는 감정은 뜨거운 감동 그 자쳬였다.


정 위원장이 들어서자 북쪽의 삼천만 인민들을 대표한 여섯 명의 주지사들이 정 위원장에게 격한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정 위원장이 몇 차 레나 그만 것을 주문했지만 누구랄 것도 없이 말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소리는 멈추질 않았다.

정 위원장 내외가 겨우 자리를 정돈하고 앉았을 때 진숙의 능수능란한 지휘로 녹차 잔들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찻잔의 세팅이 완료되자 부인이 먼저 해맑은 미소를 띠면서 인사말을 시작한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차인 백두산야생녹차를 준비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보통의 다른 차들과는 향과 빛깔부터 그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백두산야생녹차의 칭찬행렬이 이어졌다.

“그랬군요! 어쩐지 빛깔과 향이 참으로 곱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옳습니다! 역시 녹차는 백두산 야생에서 채취한 녹차가 최고지요!

다른 차들은 이 특유의 깊은 맛을 따라오질 못한단 말입니다!”

“당연하지요! 대고려연방에서 최고로 우뚝 솟은 장군봉의 기운을 받고 자란 야생녹차란 말입니다!”

“암요! 이 깊은 맛을 따라올 차가 없지요!”


저마다 한 마디씩을 거들면서 백두산예찬론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기도 했지만 특히 정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오랜 세월 자신들 가문의 뿌리를 백두산에 두고서 통치기반으로 활용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들의 백두산예찬은 정 위원장 가문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현이었다.


찻잔을 내려놓던 정 위원장이 다정다감한 표정으로 주지사들을 일일이 바라보며 오늘의 용무를 풀어놓으려 했다.

“내가 오늘 이렇게 여러 지사님들을 보자고 했던 것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특별한 용무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요,

지금은 대고려연방의 자랑스러운 국민들이 되었지만 과거 나를 따랐던 삼천만 우리 인민들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챙겨줄 선물이 있어 보자고 했소!”


뜬금없이 정 위원장이 선물을 주겠다고 하자 여섯 명의 주지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독도대첩으로 일본을 통쾌하게 제압한 지도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소,

당시 우리의 핵무력 한방으로 미 항공모함을 줄행랑치게 만들지 않았겠소?”

정 위원장의 이 말에 참석한 주지사들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기렇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NK차르봄바가 온다고 하면 울던 아이들도 단박에 울음을 그친다고 합니다”

“우리 연방의 핵무력은 세계최고의 핵무력이 분명합니다!

그 위력을 흉내 낼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 나라도 없단 말입니다!”


주변에서 선선히 맞장구를 주자 정 위원장의 유머스런 입담도 멈추질 않았다.

“당시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조금 받아냈었지,

많은 금액도 아니었어 고작 백억 달러 정도?”

이 말에 좌중은 폭소가 터져버렸다.

맞습니다! 한 오백억 달러는 받아냈어야 했는데 그때는 우리가 좀 봐줬더랬지요!”

“오백억 달러가 뭐야! 최소 천억 달러는 받아냈어야 했는데 우리가 아량을 많이 베풀었던 게지요!”

웬만큼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만면에 넉넉한 미소를 띤 정 위원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중 절반을 뚝 잘라서 남쪽에서 보내왔기에 후일 요긴하게 사용할 요량으로 조선중앙은행에 맡겨났더랬지,

그런데 이제 그 돈을 집행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당신들을 보자고 했던 거요!”


영문을 모른 채 자리에 앉아 있던 주지사들은 정 위원장의 이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십억 달러라는 거금의 존재몰랐거니와 이 시점에서 이 돈을 공개적으로 집행한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정 위원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던 말을 계속했다.

“당초는 인민들에게 집단농장과 국유기업을 배분할 때 함께 집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더랬지, 

그런데 내 안사람 말이 그렇게 되면 인민들의 씀씀이가 헤퍼져서 금방 바닥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인민들에게 가장 요긴한 때를 기다렸던 것인데 당신들도 알다시피 그 후로도 여러 일들이 계속해서 터지지 않았갔어?

그런 이유로 늦어졌는데 그래도 너무 많이 늦지는 않았지?”


정 위원장은 농담까지 섞어가며 태연하게 말했지만 사실 이 돈은 노동당 39호실에서 관리해 온 일종의 통치자금이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던 의제를 지금 정 위원장이 느닷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한편 지역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주지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큰돈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그 어떤 논쟁과 다툼도 허용할 의사가 없었고 이미 그 사용처는 결정된 상태였다.

주지사들에게는 통보하는 형식을 취하며 평소의 그답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현재를 기준으로 다섯 개 자치주와 광개토대왕자치주로 이전하여 거주하는 인민들까지 포함하여 과거 우리 공화국 출신의 모든 인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시오!

남녀노소를 구분치 말고 한 살 먹은 갓난아이나 백 살 먹은 노인네나 똑같이 공평하게 지급하란 말이오!

단 일시불로 한꺼번에 지급을 하던?

연금형식으로 길게 나누어서 지급을 하던?

고런 것은 주정부와 인민들이 잘 협의해서 원만하게 처리하면 될 문제겠고 그렇게들 처리하면 일들 없갔지!”


대부분의 주지사들은 의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정 위원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평양특별시 주지사의 생각은 달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벅찬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당초 이 자금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인민들은 단연코 아무도 없었습니다,

솔직히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면 자금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백이면 백 아무도 몰랐을 게 분명 하단 말입니다,

감히 어느 누가 위원장님의 통치자금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절반도 아니고 몽땅 거리 다 내어 주신다면 앞으로 위원장님 내외분은 또 얼마나 곤란을 겪으시겠습니까?

인민들에게 발표하시기에 앞서 저희들과 좀 더 협의를 진행하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 위원장이 오른손을 가로저으며 단호한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그 문제는 그냥 내 뜻대로 하는 걸로 하지!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톡 까놓고 말하갔는데 우리 조선중앙은행의 은행원 일꾼들이 그동안 이자놀이 사업을 제법 잘했더구먼!

생각지도 않은 이자수입이란 게 좀 생기지 않았갔어!

우린 고것만 가지고도 충분하니까 우리 걱정은 안 해도 돼!

지난 시기 나와 인연을 맺었던 우리 인민들에게 내가 정말로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당신들이 뒤처리를 잘 좀 부탁하오!

그래서 우리 인민들의 생활향상에 다문 얼마라도 도움이 된다면 난 것으로 족하니까…”

말의 끝 부분에서는 정 위원장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검정색 뿔테 안경 속에 가린 정 위원장의 눈가에서도 촉촉한 물기가 묻어났다.


자리를 함께한 일행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손수건을 꺼내 들고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기에 바빴다.

평양특별시 주지사의 말처럼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오십억 달러의 행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 정 위원장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 돈이 여태 남아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정 위원장은 지금 출국에 앞서 그가 가진 마지막 보따리까지 풀어헤쳐서 아낌없이 내어 놓았다.

옆 자리에 앉은 그의 부인이 해맑은 표정으로 정 위원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 우리 위원장님, 최고로 멋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나의 자랑스러운 남편이 되어주셔서”   


며칠 후 이제는 정말로 홀가분한 심정으로 정 위원장 내외가 평양순안국제공항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관사까지 마중 나온 대고려연방 주재 쿠바대사와 함께 연방대통령의 전용기에 터벅터벅 올랐다.

정 위원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일체의 사실을 극비에 부친 채 조용히 대고려연방을 떠나고 있었다.

비행기의 트랩을 다 올라선 정 위원장 부부가 차마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것이 안정된 대고려연방의 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모든 것들을 쾌히 다 내려놓음으로써 조국의 통일은 성사되었지만 그것으로는 여전히 부족했다.

대고려연방의 안정을 위해서 또다시 더 내려놓아야 했고 그래서 선택한 길이 조국을 떠나는 길이다.

정 위원장인들 왜 가슴속에 남겨진 회한이 없었을까 마는 부부의 가슴에 고이 안겨진 항아리를 어루만지면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했다.


비록 몸은 쿠바의 어느 섬에 있을지라도 두 항아리 속에 담아 가는 백두산의 장군봉과 천지의 기운을 느끼면서 마음만은 늘 백두산과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중이다.

적당하게 불어오는 상쾌한 봄바람이 정 위원장 내외의 머리칼을 알맞게 날렸다.

딱히 환송 나온 많은 인파는 없었지만 정숙과 네 명의 국정자문위원들 그리고 곽 사령관과 진숙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2035년 7월 실시된 제2회 연방의회의원 총선거의 결과는 놀라웠다.

2년 전 진보당과 합당한 이후 차근차근 자유정치 시스템에 적응해 오던 고려노동당이 제1당으로 약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 위원장이 쿠바로 떠난 후 북쪽의 자치주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남쪽의 다른 자치주에서도 정 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탓이다.

특히 이삼십 대의 청년세대를 집중 공략한 선거 전략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남북합작의 신생정당은 일약 제1당으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다.

돌풍을 일으켰던 일등공신은 단연 청치신인들을 과감하게 공천했던 당대표 정숙이었다.

정 위원장의 여동생이라는 꼬리표는 이번 선거에서는 결코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북쪽에서도 정 위원장이라는 뒷배가 홀연히 사라진 정숙으로서는 오롯이 그녀 스스로 자립할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조선노동당은 명맥이나 유지하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정숙을 당수로 추대했지만 정숙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비록 정 위원장이라는 막강한 배경 덕분이었지만 십 수년간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된 중견 정치인이었다.


정숙이 뚝심으로 밀어붙인 과제는 민 대통령이 제안했던 남쪽 진보당과의 합당작업이었다.

물론 당시의 노동당 원로들은 거세게 저항했고 결국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주었다.

늙은 수구 꼰대들이 기존의 노동당 간판을 끌어안아준 덕분에 정숙은 젊은 당원들을 이끌고 새로운 당을 창당할 수 있었다.

이때 합류한 남쪽의 진보당에는 실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 틈새에 경은도 끼어있었다.


고려노동당이 제1당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제2당인 통합국민당보다 단 한 석이 많았을 뿐이고 민 대통령이 소속된 우리고려당과는 겨우 세 석이 앞섰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고려노동당 못지않은 이변의 주인공은 단연 연방대통령이 이끌었던 무소속연대였다.

대부분 무소속이던 제1대 연방의원들이 연방대통령을 중심으로 기존의 주류정당에 대응하는 자구책을 마련했는데 그것이 바로 ‘위대한 대고려 정치연대’라는 무소속연대였다.

지난 삼일절의 미친개 퇴치작전 이후 치솟은 연방대통령의 인기를 자산으로 뭉친 정치결사체로서 이번 총선에서 34석을 얻는 예상 밖의 선전을 기록했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연정에 쏠렸다.

의원내각제하에서 단독으로 과반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었으니 타당과의 정책연합으로 공동정부를 구성해야 했다.

이때 윤 소장이 또다시 성북동의 민 대통령 자택을 찾았고 삼일특공대가 작성한 마지막 보고서라면서 삼 페이지 분량의 초간단 보고서를 내어 밀었다.

“대통령님! 이번 연정이야말로 우리 연방의 미래를 위해서 정말로 중요합니다!

북쪽의 인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뒤는 말 안 해도 다 알아듣겠어요,

그런데 전에도 마지막 보고서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럴 리가요, 이번이 진짜로 마지막 보고서입니다!”

“허허허허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 모두가 우리 대고려연방이 잘되고자 하는 일인걸요,

다음번에도 마지막 보고서를 또 들고 오세요!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쿠바 코히마르 인근의 어느 조용한 외딴섬에서 정 위원장이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훨씬 건강한 모습으로 제법 익숙한 삽질을 하고 있다.

목에 걸친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을 때 부인이 마실 물과 스마트폰을 들고 왔다.

“위원장님 이것 보세요! 우리 정숙아가씨 기사가 났어요!”

기사를 읽던 정 위원장이 아무 말 없이 부인이 건네주는 물 컵을 벌컥벌컥 깨끗이 비웠다.

물 컵을 부인에게 다시 건네주면서 정 위원장이 하는 말이다.  

“통일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아요!

서로 먼저 양보하고 타협하고 내려놓고 합의할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법이거든!”


스마트폰의 화면에 뜬 기사의 제목은

‘연립정부의 차기 총리로 선출된 정숙 고려노동당 대표’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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