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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30. 2024

대고려 동해라인 선포

26회

다시 해가 바뀌어 통일 이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2032년의 삼일절이다.

최준현 열사의 3주기를 맞이하여 우리 땅 독도연구회 연합동아리가 독도에서 뜻깊은 행사를 주최했다.

이 날의 행사는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합세하여 독도를 향해서 달려가는 고속 페리호의 정원을 가득 채웠다.

동아리 후배들의 틈새에 끼여 있던 규태와 경은도 떨리는 마음으로 동도선착장에 내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독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과시하려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입도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실효적으로 이 땅을 점유하고 있는 국가만이 누리는 일종의 특권 의식으로서 독도경비대의 역할을 무적의 해병대원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 열 횡대로 줄지어 선 대고려연방의 늠름한 해병대원들이 엄청난 함성을 내어 지르며 거수경례를 했다.

규태는 3년 전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기 시작했다.

갓 해병대를 전역한 준현이 독도경비대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건들건들 걷던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그런데 당시의 상념을 떠올린 건 규태만이 아니었다.

최근에 전역한 떡대가 3년 전 준현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참혹했던 한일 간의 전쟁을 몸소 겪은 독도의 모습은 확실히 전쟁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두 번 다시는 일본 따위가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대고려연방의 의지가 독도의 요소요소에 서려 있었다.

흑군파의 기습에 힘없이 함락당했던 3년 전의 사건은 우리 민족사에서 그야말로 뼈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이제 독도는 당시의 기억을 떨쳐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대고려연방의 최전방 군사기지로 변해 있었다.

부대의 이름도 독도경비대에서 ‘독도수호 철통 해병부대’로 바뀌어 있었고 눈을 돌려서 쓱 한번 살펴본 것만으로도 예전의 한가롭던 관광지 분위기가 아니었다.

훨씬 넓어진 헬기장은 백두산 호랑이라고 명명된 국산 수직이착륙 전투기들이 수시로 뜨고 내리면서 독도의 상공을 책임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암석처럼 위장하고 있었지만 동도와 서도 할 것 없이 요소요소에 수십 개의 갱도 진지를 구축하여 해병대의 막강 화력을 은닉시켜 놓았다.

적의 포격에 대비하여 완벽하게 요새화된 부대의 시설들이며 공중과 바다를 향해서 촘촘하게 설치된 대공포들의 위용이며 대일본 최전방 전진기지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제 독도는 한반도의 연약한 어린 섬이 아니라 대고려연방의 동쪽바다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으로 변신했다.


이렇듯 독도가 하나의 거대한 군사기지로 변모해 버리자 그동안 제집 앞마당인 양 맘껏 활보하던 일본의 해상자위대도 감히 얼씬거리지 못했다.

독도의 막강화력 앞에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인데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위상까지 보태어지자 일본정부의 독도 영유권주장도 쏙 들어가 버렸다.


같은 시각, 대고려연방의 삼일절기념식이 연방의 행정수도인 광개토대왕시 통일광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오늘 처음으로 일반에 선보인 통일광장의 위용은 한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히 압도적이었다.

천안문광장보다도 정확히 구백 평이 더 큰 십삼만 사천 평 규모로서 단연 세계 최고의 광장이었다.

거대한 면적의 비무장지대를 개발하는 공사는 모두 3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었고 이번에 그 중심부에 해당하는 제1구간이 완공되었다.

통일광장의 맞은편으로 곧 완공을 앞두고 있던 연방정부청사와 연방의회 건물이 한 폭의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다.

무엇보다 광장의 정면에 설치된 광개토대왕의 동상이 압권이었다.

달리는 말위에서 칼을 빼어든 채 포효하는 모습은 대고려연방의 신행정수도 광개토대왕시의 역동적인 정체성을 잘 표현했다.


연방대통령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민족사관에 바탕한 삼일운동의 세계사적 의미가 특유의 우렁찬 톤으로 낭독되었다.

민 대통령과 정 위원장은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십 년의 유예기간을 가지면서 조심스럽게 진행하려던 통일화폐와 남북군대의 통합문제도 모두 마무리된 상황이다.

따라서 더 이상은 유예기간의 존속이 의미가 없게 되었다.

다가오는 7월 1일 연방정부 출범 2주년을 앞두고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던 남북한 정부를 청산하기로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다.

마침 민 대통령의 임기가 5월 9일 자로 종료되기 때문에 이 시점을 기해서 자연스럽게 남과 북의 두 정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우리는 독도전쟁에서 일본과 미국을 상대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독도대첩의 여세를 몰아서 기어이 대고려연방을 탄생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제치하에서 신음하던 암울한 식민지도 아니고 동족 간에 서로 대치하던 분단국가도 아닙니다!

세계최고의 광장에서 당당하게 삼일절기념식을 거행하는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입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통일광장을 설계할 때 제가 부득부득 고집을 부려서 치수를 좀 키웠습니다,

그래서 천안문광장보다도 딱 논 한 구역이 더 큰 세계최고의 광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잘한 것이 맞지요!”  

때때로 연방대통령은 길들여지지 않은 벼락치기 정치인으로서의 면모가 부지불식간에 드러나곤 했는데 지금도 그랬다.

감정이 최고조로 몰입될 때 원고에도 없던 일탈을 감행함으로써 엄숙하던 국경일 기념식장을 폭소의 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연방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는 이번에도 팔천만 연방국민들의 심장소리를 쿵쾅거리게 했지만 정작 주목받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기념식장을 일어서는 정 위원장의 주변으로 방송카메라와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느닷없는 질문세례가 쏟아졌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독도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철회한 사실이 없습니다,

위원장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돌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정 위원장이 자세를 바로 잡고 있었을 때 정 위원장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가 방송카메라 화면에 꽉 들어찼다.

능수능란한 세계적인 정치인답게 왼손은 바지주머니에 집어넣고 가위표시를 한 오른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난 일본을 용서한 적이 없어요!

우리 민족이 당한 36년의 치욕이 아직도 생생한데 용서라는 말은 가당치가 않습니다,

난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당했던 딱 고 만큼의 응어리를 되갚아 주어야만 과거가 청산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과정들을 몽땅 거리 생략해 버리고 용서니 화해니 하는 말들은 말입니다,

고거이 다 힘없는 자들의 넋두리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일본이 아직도 독도영유권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고요?

아마도 일본은 제2의 독도전쟁을 구상하는 모양인데 좋습니다!

이참에 아주 확실하게 매듭짓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방금 하신 말씀은 일본이 독도영유권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양국 간에 제2의 독도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일본에 선전포고라도 하시는 것입니까?”

“이번에도 핵무기를 사용하실 겁니까?”


흥분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정 위원장이 이번에는 웃음기 하나 없는 정색한 표정으로 돌변하여 방송카메라의 정중앙을 주시했다.

“암요! 전쟁이 필요하다면 결단코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 그 선택은 일본이 하갔지만 말입니다”

정 위원장이 뱉어낸 방금 이 말은 긴급속보 형식으로 또다시 전 세계의 메인뉴스를 점령하고 말았다.

당사자격인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했고 일부 인터넷방송에서는 대고려연방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삼 년 전 미 항공모함까지 출동한 상황에서도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무후무한 위력의 NK차르봄바를 발사했고 딱 그 한방으로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제 그들은 통일까지 이루었고 미국과 중국조차도 눈치를 봐야 할 정도의 신흥강국이 되어 노골적으로 일본을 위협했다.

이날 정 위원장의 작심발언으로 일본열도는 그야말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국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당황한 백악관은 미국대사를 통해서 대고려연방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연방외교부장관을 만나고 나온 미국대사가 본국에 급히 보고한 내용은 이 시점에서 독도문제의 완전한 해결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달리 말하면 일본정부가 독도영유권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양국 간의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보고였다.

상황이 묘하게 전개되자 백악관의 처지가 곤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지역에서 중국과의 대치가 심화되고 있는 마당에서 삼 년 전처럼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들어줄 수도, 그렇다고 최후의 보루인 일본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일본과의 소통에 주력하면서 발 빠르게 움직이던 미국은 백악관출입기자들의 끈질긴 입장표명 요구에도 대고려연방을 자극할만한 어떤 브리핑도 하지 않았다.

앵무새처럼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이 지역의 신흥 강자인 대고려연방을 의식했다.

지금 미국은 대고려연방을 억누를 수 있는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일본을 설득해야 했지만 일본이 저항한다면 딱히 방법이 없었다.

전쟁이냐? 평화냐? 이제 그 선택은 오롯이 일본의 몫이 되어갔다.


삼일절 기념식장에서 정 위원장이 무의식적으로 터트린 것처럼 보인 문제의 이 폭탄발언은 사실은 치밀하게 조율되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연방최고회의 때 정 위원장이 먼저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 간의 국제적인 이미지로 볼 때 악역은 두 분보다는 제가 더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까?

삼일절을 맞이해서 아직까지도 뜨뜻미지근하게 봉합돼 있는 독도문제를 이참에 확실하게 마무리지어야 갔습니다,

두 분 대통령님들은 옆에서 측면사격만 해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하여 정 위원장이 총대를 메고 먼저 포문을 열게 되면 두 대통령이 엄호사격을 하기로 사전에 약속되었다.

물론 처음의 시작은 거침없이 밀어붙이되 독도문제 해결의 목표지점을 분명하게 설정해 둠으로써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차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듯 정 위원장의 타이밍 포착 능력은 탁월했다.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은 확실히 우리 편을 들어주겠지만 아직도 독도전쟁의 악몽이 남아있던 미국은 대고려와 일본 사이에서 허둥댈 가능성이 높았다.

바로 그 타이밍이 일본의 목을 바짝 조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정 위원장이 포착했고 두 대통령이 동조하고 나섰다.


정 위원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삼일절 이벤트였지만 민 대통령도 정 위원장 못지않게 저돌적이었다.

두 지도자에 의해서 쾌히 받아들여진 민 대통령의 이 놀라운 제안으로 독도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대형이벤트가 준비되었다.

그것은 십 년 전부터 야심 차게 추진되고 있었던 삼만 톤급 경 항공모함의 조기 전력화였다.

당초의 계획은 내년까지 건조를 끝내고 전력화할 예정이었지만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조선기술은 이미 모든 건조를 끝내고 출항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대고려항공우주산업에서 본격적으로 양산체제에 들어간 국산 수직이착륙 전투기의 성능은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미국과 유럽의 기술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졌던 공식적인 시험비행에서 오랫동안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해 온 F35B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연방대통령이 직접 명명한 국산 수직이착륙 전투기의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백두산 호랑이’로 정해졌다.


삼일절 기념식이 열리던 바로 그 시각,

대고려연방의 동서해를 철통 경호하게 될 여섯 척의 경항모전단이 공식적인 진수식에 앞서 시험운항에 나섰다.

엊그제 저녁 긴급 하달된 연방대통령의 출항명령으로 동해바다의 거센 물살을 헤치면서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목적지는 동해의 최전방 독도였다.

길게 열을 지어서 빠르게 나아가는 경항모전단의 앞과 뒤를 백두산호랑이 열두 개 편대가 철통 호위했다.

그 모습은 그들의 이름처럼 용맹스럽게 포효하는 백두산호랑이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그런데 가장 앞서 날아가던 백두산호랑이 편대가 갑자기 고도를 높이면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날아온 목적지는 지금 이 시각 팔천만 국민들의 눈과 귀가 집중된 통일광장이었다.

백두산호랑이가 사뿐히 착지하고 있었을 때 저만치서부터 대고려연방을 대표하는 3인의 최고 수뇌부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게 걸어오고 있다.

그러자 백두산호랑이를 몰고 온 전투기 조종사들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내외신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대고려연방의 최고 수뇌부가 제각기 백두산호랑이에 올랐다.

대고려연방 국기가 선명하게 새겨진 헬멧을 반듯하게 착용한 세 명의 최고위원들이 만면의 미소를 머금은 채 각자 오른손을 흔들었다.

지금 이 장면만으로도 대고려연방국민들의 뇌리에는 충분히 감동적인 장면으로 다가왔지만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정오가 다가오자 동도 선착장에 마련된 최준현 열사 추모 3주기 행사장의 분위기도 뜨겁게 고조되었다.

평소 준현이 심취했던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 땅 독도연구회 재학생들은 물론이고 졸업생과 일반인들까지 합세하여 덩실덩실 한바탕의 전통 춤 잔치가 흥겹게 벌어졌다.

이때였다. 갑자기 동도의 여기저기서부터 해병대원들이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하더니 엄중한 경호가 시작됐다.

영문을 알 리 없던 입도객들이 어리둥절해하던 사이 곧 그들 앞에서 펼쳐진 광경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마흔네 대 백두산호랑이의 호위를 받으면서 거대한 경항모전단이 위풍도 당당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삼만 톤급 규모의 경항모전단이 동도선착장을 바라보며 나란히 섰을 때 정지 자세 그대로 하늘에 떠있던 백두산호랑이의 위용까지 보태어져 그 광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저 멀리서 백두산호랑이 편대가 날아와 동도의 맨 위 헬기장으로 가뿐히 착지했다.

놀랍게도 전투기에는 대고려연방의 최고 지도자 3인이 타고 있었고 양쪽으로 도열한 해병대원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내렸다.

그런데 맨 마지막으로 착지한 백두산호랑이에는 조선중앙방송의 카메라기자가 탑승하여 통일광장에서부터 비행의 전 과정을 촬영하는 중이다.

이렇게 촬영된 화면은 지금 온 지구촌으로 전송되어 또다시 세계인들의 이목을 동해 앞바다 독도로 집중시켰다.


압도적인 자태로 나란히 줄지어선 경항모전단을 내려다보면서 정 위원장이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두 대통령에게 말했다.

그는 영리하게도 카메라의 정중앙을 의식하고 있었고 일본에 보내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다시 한번 매운맛을 보여줄 수밖에 없지 않갔습니까!

조만간 독도에 대한 일본정부의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다면 선전포고로 간주해야 합니다!”


이때 연방대통령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거들고 나섰다.  

“암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끝내 독도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않겠다면 매운맛을 보여주어야지요!

저 아래를 한번 보십시오! 저것은 우리 연방이 가진 무력의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우리 연방이 보유한 마지막 수단까지는 꺼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응징할 수 있습니다!"


민 대통령도 저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면서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이번만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분쟁을 불가역적으로 종결시켜야 합니다!

독도가 우리나라의 최동단 섬이 확실하다면 기존의 굴욕적인 영해 설정은 파기되어야 마땅합니다!”


대고려연방의 최고 지도자들이 독도 문제를 거침없이 논의하고 있었을 때 규태는 저 위 헬기장 쪽을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상념에 사로잡혔다.

‘우리 준현이가 정말로 대단한 일을 해냈구나,

삼일특공대 최준현! 장하다! 정말 장하다!’

“규태선배! 저기 하늘을 좀 보세요,

저 하얀색 뭉게구름이 우릴 보면서 미소 짓는 것 같지 않아요?

꼭 준현선배가 우리한테 손짓하는 것 같은데 선배도 그렇게 보이죠?”

경은이 가리키는 뭉게구름 한 조각이 정말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미소 짓는 것 같았다.


이때 규태가 저만치 떨어져 있던 떡대를 큰소리로 불렀다.

헐레벌떡 떡대가 달려오자 하늘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삼일특공대 차렷! 일동 경롓!”

지상의 두 특공대원이 뭉게구름을 향해서 거수경례 동작을 취하자 아래를 내려다보던 뭉게구름 한 조각이 건들건들한 폼새로 답례하는 듯했다.


얼마 후 연방국회는 대단히 중요한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영해 및 접속수역법’의 제1조에 거추장스럽게 달려있던 단서조항을 삭제하는 법안이었다.

연방의 영해를 12해리의 수역으로 정한다고 하면서 굳이 대한해협에서는 별도의 단서조항을 달아 놓았다.

이 굴욕적인 법안은 독도를 양국의 공동관리수역으로 포함시키려는 1999년 신한일 어업협정의 결과물로 탄생했다.

이 법률은 배타적 경제 수역인 EEZ의 우리 측 기점을 독도가 아닌 울릉도로 정하는 법률적 근거가 되었다.


새로운 법안이 만들어지자 연방정부는 1999년의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독도를 기점으로 새롭게 설정한 일명 ‘대고려 동해라인’을 발표했다.

이 조치로 말미암아 독도의 주권이 온전하게 회복되었다.

독도는 이제 허망한 바다 위에서 단순히 하나의 좌표로만 표시되던 암초의 신분에서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당당한 영토가 되었다.

우리 땅 독도를 기점으로 12해리에 이르는 바다 영토가 대고려연방의 영해가 되면서 독도를 기점으로 하는 배타적 경제 수역이 다시 설정되었다.

양국 간 겹치는 200해리의 EEZ구간인 중간수역의 위치가 기존보다도 훨씬 일본 쪽으로 치우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일본의 대응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정 위원장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가 있던 일본은 또다시 그가 핵을 언급하면서 도발적인 발언들을 이어가자 일본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럴 때 믿었던 미국마저도 양국 오래된 갈등문제를 이번 참에 종식하라며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는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대고려연방이 독도를 기점으로 영해와 EEZ를 정한다는 ‘대고려 동해라인’이 공포된 지도 두 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이었다.

아직까지도 독도영유권을 철회한다는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없었지만 이후 일본사회 전체가 하나의 불문율처럼 다케시마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거센 압력에 굴복한 시마네 현에서는 지방의회가 소집되어 만장일치로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폐지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렇게 되자 해상자위대의 순찰범위도 대고려 동해라인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문부과학성의 발표를 통해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드러났다.

당장 다가오는 새 학기의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부터 다케시마 관련 영유권주장을 통째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해방 이후 지속된 한일 간의 독도영유권 분쟁은 불가역적으로 종식되었다.


대고려연방이 동북아시아의 신흥 강자로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감에 따라 분단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문화현상들이 속속 나타났다.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다던가, 꼭 필요하지 않은 외래어 대신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용하려는 움직임들이 확산됐다.

대고려연방에 대한 드높은 자긍심으로 전통적인 우리의 것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역동적으로 개선된 결과였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미 영화는 물론이고 K팝 조선팝 등 한류가 전 세계 젊은이들의 주류문화로 정착된 이후의 시점이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연방정부탄생 2주년을 앞두고 남북한의 양 정부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세계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권력의 속성상 쉽게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

사실 대부분의 지구촌 사람들은 기존의 남북한 정부가 예정된 일정에 맞추어서 해산할 수 있을지 미심쩍은 시선으로 지켜봤던 것이 사실이다.

대개는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들을 늘어놓으면서 수평적인 신구권력의 이양에 실패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대고려연방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단시절보다도 훨씬 강대해진 통일 새나라의 진면목을 이미 목격해 버린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다.

또 한 가지는 통일의 주역이 바로 남북의 두 권력 주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족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자신들의 현재권력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임시적인 통치기구였던 연방최고회의가 해산되었다는 것은 대고려연방이 이제 연방의 법률에 따라서 운영되는 정상국가가 되었다는 의미다.


오직 통일의 완성을 위해서 스스로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던 남북의 두 정상은 연방정부의 국정자문위원회를 이끄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추대됨으로써 국정의 전면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민 대통령은 스스로 수석부위원장을 자임하면서 정 위원장을 국정자문위원장으로 추대하고자 했다.

이것은 구 북한지역 다섯 개 주 국민들의 상실감을 배려하는 대단히 세심하면서도 따듯한 조치였다.

구 남한지역과는 달리 북쪽에서 차지하는 정 위원장의 위상은 일반적인 한 명의 정치인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의 정신적 수령이 하루아침에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자신들과 똑같은 평범한 국민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때 민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통일 이후의 사회적 안정까지도 고려한 통일의 주역다운 배려였다.


2032년 7월 1일, 대고려연방의 통일 2주년 기념식이 신축공사가 완료된 연방정부청사 대강당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가장 앞줄에서 민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앉아있던 정 위원장은 연방대통령의 열정적인 연설에 간간히 박수를 치면서 만감이 교차한 표정이다.

2년 전의 통일은 구 권력의 둥지 속에서 신 권력이 위태롭게 동거하는 그야말로 무늬만 통일된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을 불과 2년 만에 조기 종료시키고 드디어 온전한 통일정부만 남게 되는 진정한 통일이 달성되었다.

족히 십 년은 예상되었던 유예기간을 단 2년 만에 조기 종료시킨 원동력은 미래가 보장된 연방정부에 우리 국민들이 미래를 배팅했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민 대통령의 제안에 군말 없이 응해준 정 위원장의 결단이 한몫을 거들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정 위원장의 허전한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부인이었다.

민 대통령의 영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포시 정 위원장의 오른손을 포개어 잡으며 미소 지었다.

민 대통령은 왼편의 통유리 창을 통해서 저 멀리 압도적인 장면으로 우뚝 서있는 광개토대왕의 동상을 바라봤다.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북방영토를 개척했던 대왕답게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광장인 통일광장의 전면에 위풍도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보았던 통일 조국의 실제 모습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자 민 대통령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고려연방 통일 2주년 기념식에 맞추어서 광개토대왕 특별시가 신행정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전체 3개 구간의 개발공사 가운데 제1,2구간의 공사를 일정보다도 6개월이나 앞당겨서 마무리 지었다.

이제 제3구간의 기반시설 공사마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조만간 거대한 코리아평화공원이 세계인들 앞에 그 모습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이미 상주인구 일백만 명 시대를 훌쩍 넘어선 광개토대왕 특별시는 곧 제3차 제4차 제5차 신도시의 완공도 앞두고 있어 머지않아서 주자치의 인구 하한선을 충족시키는 상주인구 삼백만 시대를 앞두고 있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삼일특공대 소회의실,

9월 정책토론회의 발제자인 장 팀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었다.

주제는 ‘대고려연방의 안정을 위한 새로운 정치지형’이다.

삼 년 전의 초대 연방의회선거는 통일헌법 제정을 위한 제헌선거와 함께 실시되어 다분히 과도기적인 선거였다.

기존의 유력 정당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던 탓에 정치경험이 전무한 신인들이 대거 당선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새로운 정치의 지평을 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2년 후 실시될 예정인 제2회 연방의회선거부터는 사정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통일 후 한시적으로 존속되던 남북의 두 의회가 작년 연방정부탄생 2주년을 앞두고 남북의 두 정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십 년의 유예기간 동안 존속될 예정이던 남북한의 의회가 채 2년 만에 종료되자 연방의 연착륙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진행하려던 정치일정들이 대폭 앞당겨졌다.

이렇게 되자 정치신인들이 주도하던 연방의회의 신선한 정치실험들이 위기에 봉착했다.

남북의회가 사라진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제2회 연방의회 선거부터는 당연히 기존의 프로 정치인들이 모두 뛰어들 텐데 그야말로 엄혹한 선거 전쟁이 예상되었다.


4년 전 삼일특공대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팀의 실무를 관장한 사람은 바로 장 팀장이다.

그는 이제 대고려연방의 탄탄한 정치지형을 안착시키는 것이 삼일특공대에 주어진 마지막 소임으로 생각하며 그가 가진 모든 열정을 불태웠다.  

“2년 뒤로 다가온 연방의회 선거를 대비해서 조선노동당의 경쟁력 강화가 절실합니다,

노동당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경쟁을 치러내야 하는데 상황이 결코 녹녹지가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북쪽 다섯 개 주에서조차 안정적인 의석 확보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자칫 북쪽지역의 연방국민들에게 크나큰 상실감으로 다가와 정국의 불안정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같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하여 통합국민당과 우리고려당에 맞설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조선노동당의 경직된 내부 분위기로 볼 때 자체적인 역량으로는 당의 체질 변화가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우리 팀원들이 다 함께 중지를 모아서 대책을 만들어봅시다!”


장 팀장의 주제발표가 끝나자 언제나처럼 팀원들 간에는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내부의 체질 개선이 불가능하다면 조선노동당은 어차피 생명을 다했다는 것인데 차라리 당을 해산하고 새롭게 창당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조선노동당은 스스로 해산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설사 해산하여 재창당을 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당을 이끌만한 충분한 인재풀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럽습니다”


드디어 오매불망의 심정으로 이 시간만을 기다려왔던 규태 차례가 되었다.

규태는 정책토론의 주제가 예고되었던 2주 전부터 이미 치밀한 사전준비를 해왔는데 만큼 오늘의 정책토론을 잔뜩 벼르고 있었다.           

“자생적인 내부변화가 어렵다면 외부적 충격요법을 동원해서라도 당의 체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어차피 조선노동당의 경쟁 상대는 통합국민당과 우리고려당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런 노련한 정당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경쟁하는 법을 잘 아는 남쪽의 소수 정당과 합당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남쪽에는 두 거대정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자력 생존에 성공한 진보정당이 있습니다,

진보대연합 차원에서 정치적 칼라가 엇비슷한 조선노동당과 진보당이 합당을 추진하는 방법입니다.

가령 고려노동당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연방의 정치지형은 양강이 아닌 삼강체제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보수의 통합국민당과 중도의 우리고려당 그리고 진보진영의 고려노동당이 삼강체제를 형성하여 특정 정당의 과반확보는 어렵게 됩니다,

이럴 때 중도를 표방하는 우리고려당은 좌우의 어느 정당과도 연정의 대상이 될 수가 있어 대고려연방의 이념 양극화를 방지하는 완충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정당의 삼강체제는 연방 내부의 극심한 정치적 갈등상을 방지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치지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규태가 준비했던 발표를 마무리하자 더 이상의 추가발표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경청하던 윤 소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자 다른 연구원들도 동의의 박수를 보내면서 규태가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던 정책대안은 최종안으로 채택되었다.

삼일특공대에 합류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자신의 제안서가 최종 보고서 작성에 포함되자 규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규태가 발표했던 이 정책대안의 원 기안자는 사실 경은이었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경은의 석사학위 논문 제목이 ‘대고려연방의 안정적 정치지형을 담보하는 진보정당의 변신’이었고 논문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여 규태가 발표하게 되었다.

이렇듯 경은은 대고려연방의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려는 다부진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기획력은 규태를 통하여 조용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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