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이 되자 드디어 베일에 가려져 있던 통일헌법의 시안이 공개됐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예상대로 ‘대통합 코리아연방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연방에 참여하는 주정부의 단위를 놀랍게도 기존의 남북한 정부가 아닌 열두 개의 광역권 지방 주정부로 규정되었다.
전국을 모두 열두 개의 지역단위로 나누어서 그 지역의 주정부가 연방에 참여하는 형태가 골자였다.
현실적인 관건은 서울경기의 수도권 중심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달려있었다.
삼일특공대는 그 해답을 인근의 지자체들이 연합하여 규모를 키우는 메가시티에서 찾았다.
그러면서도 남과 북 할 것 없이 각 지방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고려하여 출발당시에는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하고자 했다.
장차는 세계적인 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일천만 명 규모의 메가시티를 지향하면서도 당장은 인구수의 최소 하한선을 300만 명 이상으로 지정하는 타협안이었다.
남쪽은 이미 메가시티 구성을 위한 각 지방정부들 간 논의와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북쪽의 사정은 달랐다.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경험이 전무한 북쪽으로서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구상에 들어가야 했다.
통일국가의 골격을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던 남북국회의 십 인 위원회가 지구촌사람들이 궁금해하던 코리아연방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가급적이면 남쪽과 북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여러 지혜들을 모아봤지만 현실적인 인구수의 편차 때문에 자치주의 숫자를 동일하게 배분할 수는 없었다.
남쪽은 여섯 개, 북쪽은 다섯 개의 자치주로 최종 결정되었다.
하지만 분단시절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라져있었던 강원도는 하나의 자치주로 통합되는 보상을 받게 되면서 통일자치주라는 특별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의외의 자치주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것은 뜨거운 관심사였던 코리아연방의 새로운 신행정수도가 들어설 비무장지대였다.
서울도 평양도 아닌 오랜 세월 남북분단의 상징과도 같았던 비무장지대가 신행정수도로 전격 합의되었다.
이것은 남과 북의 어느 일방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한반도 통일의 평등정신을 고려한 역사적인 결정이었다.
이 역시 삼일특공대의 아이디어를 십 인 위원회가 받아들이면서 결정된 파격적인 조치였다.
신행정수도의 이름을 여론조사의 형태로 공모한 결과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광개토대왕 특별시로 결정되었다.
대통합 코리아연방의 신행정수도가 들어서는 비무장지대는 이억칠천삼백여 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면적이다.
한국전쟁의 오랜 상처가 남아있던 비무장지대의 개발청사진을 국제공모로 결정하기로 하자 세계는 또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남쪽이 여섯 개, 북쪽이 다섯 개, 그 한가운데 위치한 광개토대왕 자치주를 합하여 모두 열두 개의 자치주로 연방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첫 삽도 뜨지 못한 광개토대왕 특별시의 상주인구 300만 명 시대는 요원한 일이어서 현실적으로는 열한 개의 자치주 시대가 상당기간 지속될 예정이었다.
이렇듯 각 자치주 정부의 단위를 광역지방권의 단위로 나누었던 제1차적인 목적은 내실 있는 지방자치의 실현에 있었지만 또 다른 속사정도 있었다.
일 년 전, 얼떨결에 시작된 남과 북의 통일논의는 다분히 형식적인 위상의 연방정부로 출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느슨한 구조로는 남북정부의 사소한 갈등에도 언제라도 또다시 깨어질 위험성이 있어 특단의 대안마련이 필요했다.
통일헌법의 초안 작업에 참여했던 십 인 위원회는 오랜 세월 분단되었던 두 체제의 장벽을 효율적으로 허물려는 삼일특공대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남북한 정부의 권한을 분산시켜서 두 번 다시는 깨어지지 않을 굳건한 통일을 다지는 것!
이 시급한 과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삼일특공대는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실현을 제안했다.
그러나 과거 독일의 방식처럼 일방이 일방을 흡수하는 형태가 아니라 쌍방이 동등한 입장에서 합치되는 방식은 요소요소에 악마가 숨어 있었다.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듯이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았다면 통일헌법의 시안을 이렇듯 속전속결로 완성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북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인구수는 절반 가까이나 적었지만 어쨌든 남북한 동률이 아닌 남쪽보다도 하나가 부족한 주차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북쪽에는 정 위원장이라는 압도적 파워의 의사 결정권자가 있었다.
현실적인 인구수의 편차를 고려할 때 이러한 결정의 불가피성을 자신의 인민들에게 차근히 설득했다.
이번에도 그는 통일과정에서 나타난 사소한 디테일의 싹들을 자신의 카리스마로 정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남쪽도 마찬가지였다. 북쪽보다도 배 가까이나 인구가 많았지만 강원도를 떼어주고서도 인구수의 최하한을 삼백만 명으로 설정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통일을 갈망하는 다수의 남쪽 사람들은 이 모두를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통일 이후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였지만 말이다.
독도전쟁을 겪었고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을 겪은 터였다.
한반도에서 축약적으로 일어났던 여러 특별한 상황들은 팔천만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소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우리 민족 중심의 집단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렇다고 대통합 코리아연방의 출범과 함께 곧바로 남북한의 기존 정부를 해산할 수는 없었다.
85년간 분단된 두 체제가 어느 날 갑자기 물리적 화학적으로 통합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남북한의 정부기능을 십 년이라는 경과기간을 가지면서 점진적으로 연방정부로 이양시키는 완충작용이 필요했다.
이로써 기존의 남북한 정부는 헌법의 부칙에 경과규정을 삽입함으로써 향후 십 년의 생명줄을 더 연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피했을지라도 대단히 위험한 동거로 평가받았다.
여전히 국가의 중요 권력은 남북한의 기존정부에 집중된 상황에서 새롭게 출범하는 연방정부와 주자치정부가 함께 공존하는 입장이었다.
자칫 상다리의 균형이 맞지 않아 애써 차린 소중한 밥상을 엎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한반도의 팔천만 구성원들이 어떻게 균형감각을 발휘하면서 대통합 코리아연방을 안착시켜 나갈지 세계인들의 귀추가 주목되었다.
독도가 선명하게 표기된 하늘색 한반도기를 통일 연방의 국기로,
한민족의 애환이 서린 아리랑을 통일 연방의 애국가로,
서로 다정하게 마주 선 무궁화와 목란이 통일연방의 국화로 무난하게 합의되었다.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가 채택되었다.
연방의회에서 과반수 의원의 지지를 받은 총리후보자를 연방대통령이 임명하면 연방총리는 내각을 구성하여 실질적으로 정부를 통치할 권한이 주어졌다.
단 한차례의 중임만 허용된 연방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로서의 역할만 행사할 뿐 대부분의 실질적인 권한들은 모두 연방총리의 몫이었다.
초대 연방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는 대통합코리아 연방의 UN가입 문제였다.
대내외적인 통일의 상징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였지만 남북한의 통일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주변국들의 동의 여부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늦어도 4월 말까지는 기존의 남북한 의회에서 통일헌법의 시안을 의결하기로 합의되었다.
하지만 4월 중순에 접어들도록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논란거리가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국호의 문제였다.
남북 양쪽 모두에서 코리아라는 외래어를 정식의 국호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들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당초 십 인 위원회에서도 외래어 국호에 대한 거부반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삼일특공대가 제안했던 ‘대통합 코리아연방 민주공화국’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사실은 남북한 모두에서 수용할 수 있는 국호 찾기가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느 일방의 흡수통일이 아닌 상호합의에 의한 평화적인 통일이었기에 발생한 문제였다.
대한, 조선, 민국, 한국과 같은 기존의 명칭은 배제되어야 했고 어느 쪽의 거부반응도 없는 양쪽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국호가 필요했다.
그래도 코리아라는 이름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남북한의 단일 체육팀이 구성될 때마다 사용하던 익숙한 이름으로서 외국에서도 남북한 모두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었다.
일각에서는 한반도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반도라는 지리적 형태를 국호로 내세우기에는 마땅치 않다는 여론이 비등하여 고심 끝에 코리아로 낙점이 되는 듯했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맞추어서 중국정부의 외교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먼저 북한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지난 연말을 거치면서 북중관계는 완전히 파탄난 상태였다.
북한당국에 의해서 당시 평양주재 중국대사관과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이 모두 폐쇄되어 지금까지 복원되지 않은 상태였다.
중국은 정 위원장이 백두산에서 보여준 결기 넘치는 반중국 퍼포먼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통일한반도를 적대국으로 돌리는 대신 차라리 동북공정을 불가역적으로 포기하는 결단을 선택했다.
지금 중국정부는 이러한 외교적 결단을 실천하려는 행보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북한의 반응이 문제였다.
춘절연휴를 전후하여 지속적으로 시도된 북한과의 외교관계 복원 노력도 정 위원장의 격노가 좀처럼 풀리지 않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중국 외교부장의 청와대 예방이 내일로 예정된 가운데 민 대통령이 모처럼만에 윤 비서관과 티타임을 가졌다.
“대통령님! 정 위원장에게 제대로 한방을 얻어맞은 중국이 조급하게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코리아연방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교통정리를 시도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통일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교통정리를 시도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시급한 의제라면 통일한반도와의 외교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문제가 될 텐데요”
“그렇습니다! 미중 간의 치열한 경쟁 모드에서 통일한반도를 저들의 우군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그 어떤 의제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될 테니까요”
“그러자면 우리에게 먼저 당근을 제시해야 될 것인데 그 당근이 궁금해지는군요?
우리를 만족시킬만한 당근이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대통령님! 삼일팀에서는 동북공정의 완전한 폐기를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정 위원장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저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동북공정의 완전한 폐기 말고도 선물 보따리를 하나 더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예상해 보았단 말이지요?”
“아마도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해 주는 정도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정 위원장의 마음을 되돌리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음 그럴듯하군요, 그 정도면 우리로서도 고려해 볼 만한 수준은 될 것 같군요”
다음날 저녁, 중국 외교부장의 예방을 받은 대통령은 외교부장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어제 오후 윤 비서관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희 주석께서는 통일 한반도의 앞날을 축하한다고 하시면서 미래에도 양국이 선린우호의 형제 관계로서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외교부장이 전한 시 주석의 인사말에 대통령이 여유롭게 대꾸했다.
“형제의 관계요? 당연히 형님은 귀국이 되겠군요?
아직도 우리나라를 아우의 나라로 생각하신다면 그런 형태의 형제관계는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아우의 작은 집까지 탐하는 탐욕스러운 형보다는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공정한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랜 세월 대국의 외교수장으로 군림해 온 사람답게 제법 여유를 부리며 시작하던 외교부장의 표정이 일순간 경직되면서 일그러졌다.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공격적인 발언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자세를 가다듬으며 마음을 추스렸다.
“저희 주석께서는 2002년 이후 전개된 우리나라의 동북공정으로 인하여 귀국의 역사를 잘못 해석한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시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 국경 안에서 전개되었던 고구려를 비롯한 귀국의 모든 역사를 2002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국의 외교수장이 동북공정의 완전한 폐기를 언급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은 전혀 놀라지 않는 표정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던 대통령이 외교부장에게 다시 되물었다.
“그 말은 앞으로는 동북공정을 영원히 포기한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외교부장이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네, 동북공정은 이제 불가역적으로 폐기되었습니다!”
대통령의 반응은 오히려 이번 기회에 관련 사항들을 더욱 단단히 해두겠다는 태도로 돌변했다.
“이 문제는 중국정부의 명시적인 선언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아울러서 중국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왜곡된 역사교과서도 이번 기회에 사실에 근거하여 바로잡아야 합니다.
또한 중국 동북지역에 남아있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 조작 행위도 2002년 이전으로 복원되어야 할 것입니다!”
생각보다도 강경한 대통령의 태도에 외교부장이 또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랜 관록의 노련한 외교관이었지만 의도적으로 경직된 표정을 푸는 것조차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중국 영토 안에서 전개되었던 과거 한민족의 모든 역사는 한 치의 왜곡도 없이 다시 정직하게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북지역의 역사적 현장들을 사실에 근거하여 원형의 상태로 복원되는 여러 조치들도 함께 병행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장백산정계비에 대한 입장입니다,
주석께서는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의 최상류 물줄기를 오인한 오라총관 목극등의 실수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셨습니다,
물론 양국 간의 국경문제는 1964년 체결된 중조변계조약에 의해서 완전히 종결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통일 한반도가 현재의 국경을 존중한다면 중국도 통일 한반도를 지지하고 돕는 여러 조치들을 병행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이 대목에서는 외교부장의 표정과 목소리의 톤이 상기되었다. 다분히 의도된 행위로 보였다.
“추호라도 다시금 양국 간의 국경분쟁을 야기하겠다면 단호하게 대응하시겠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음으로써 더 이상의 시빗거리를 남기지 않겠다는 중국의 태도는 나름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경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더 이상의 시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저들의 단호한 의지를 전하고자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대통령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던지 몇 마디를 더 보태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이제 와서 두만강과 토문강이 다른 강임을 인정하시겠다고요?
백두산정계비가 설치되고 삼백 년이 지나고서야 담당 관리의 실수였다고 말씀하시니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그리고 조중변계조약은 그동안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조약이었습니다,
비밀스럽게 체결된 조약에 대해서는 국제법상으로도 대통합코리아연방이 그 조약을 승계할 의무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던가요?”
외교부장이 또다시 반박을 하려고 했지만 대통령이 오른손을 들어 제지시키며 하던 말을 중단하지 않았다.
“논쟁으로 밤을 지새울 수는 없으니 이 문제는 이 정도로 종결짓고 부장님이 동의하신다면 다음 의제로 넘어갔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어차피 외교부장도 다음의 중요 의제를 미루어 두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문제는 이 정도에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좀 손해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지 억지스러운 미소까지 띠면서 대통령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 무진 애쓰고 있었다.
“우리 남북한은 평화적인 통일에 합의했고 곧 대통합 코리아연방의 출범을 앞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개별적인 UN가입 상태를 철회하고 대통합 코리아연방이라는 단일 국호로 UN 재가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귀국의 협조를 바랍니다!”
드디어 한국대통령이 아쉬운 소리를 한다고 판단한 외교부장이 어느새 여유로운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오른손의 검지를 천장을 향해서 반듯하게 세우면서 말했다.
“그 안건과 함께 다루어야 할 중요 의제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외교부장이 무슨 대단한 이야기라도 하겠다는 듯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안건은 대단히 예민한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우리 중국은 통일한반도의 출범에 즈음하여서 또 한 가지의 통 큰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통일 한반도의 핵무기보유국 지위도 함께 인정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자리를 함께한 외교장관과 안보실장조차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놀라고 있었지만 대통령은 다음 말을 기다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바짝 기세가 오른 외교부장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오른손가락 두 개를 턱까지 들어 올렸다.
“다만 두 가지의 조건이 있습니다!”
대통령도 심하게 갈증을 느꼈던지 탁자 위에 놓여있던 물 컵을 반쯤이나 비우고서야 갈증을 해소했다.
외교부장이 오른손 검지를 다시 들어 올리며 마치 명령하듯이 말했다.
“하나는! 통일 한반도의 국호로 거론되는 대통합코리아에서 큰 대자를 삭제하는 것이고”
대통령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지만 외교부장은 멈추지 않았다.
오른손가락의 중지까지 합세하여 손가락 두 개를 자신의 얼굴 앞으로 치켜세웠다.
“둘째는! 이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조선이라는 적대세력이 사라졌으니 한반도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합니다!”
바짝 기세가 오른 외교부장은 마치 약소국의 대통령에게 훈계라도 하듯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미국은 군사안보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적성국입니다!
만일 통일 한반도가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지속하겠다면 우리 중국은 통일 한반도를 미국과 같은 적성국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대통령의 얼굴에선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자리를 함께한 참모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이윽고 대통령이 외교부장을 향해서 말문을 열었을 때는 한층 여유로우면서도 정색한 표정이었다.
“우리나라의 국호에서 큰 대자를 삭제하라는 요구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주권국에 대한 무례한 요구로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요구사항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대통령의 말에 외교부장이 크게 당황했다.
명색이 대국의 면전에서 그것도 핵무기보유국의 지위까지 덤으로 얹어 주겠다 하였음에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는 태도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 옛날 망설임 하나 없이 중국에 대어 들던 고구려의 모습까지 오버랩되면서 외교부장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은 지금 중국의 눈치나 보던 분단시절의 작은 나라 대통령이 아니었다.
결코 중국에 주눅 들 필요가 없는 대통합코리아연방의 대표 자격으로 말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반격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주권국인 우리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로서 귀국이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또 대통합코리아연방의 UN가입을 귀국이 도울지 말지는 귀국이 알아서 판단하면 될 일!
더 이상은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핵무기보유국으로서의 지위 또한 그렇습니다,
귀국이 인정을 해주든 말든 이미 우린 독도전쟁 이후 세계로부터 명시적인 묵인을 받고 있습니다,
최첨단의 수소핵무기 보유국으로서 당당하게 그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날 외교부장의 청와대 예방으로 중국은 새삼 자신들의 초라한 처지를 확인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 모두가 무리한 동북공정의 추진으로 빚어진 결과로써 꿩도 잃고 매도 잃었다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호시탐탐 우리의 영토를 탐하다가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대응하니 강력해진 통일한반도의 기세에 눌려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는 옹색한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날 저녁 평양의 노동당 1호 청사에서는 정 위원장의 호방한 웃음소리가 문밖까지 새어 나왔다.
“고거 시원하게 말씀 한번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중국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기심에서부터 밀리면 안 된단 말입니다,
자기들한테 주도권이 있다고 생각하면 상투부터 잡으려는 못된 습성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님처럼 세차게 몰아붙여야 합니다!
그런데 국호문제는 남쪽에서도 시끄럽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 쪽에서도 꼭 그렇게 외래어를 사용해야 하느냐며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인민들이 많단 말입니다,
북남의 팔천만 인민들 모두가 옳거니 바로 저것이구나! 할 만한 멋들어진 국호가 어디 없겠습니까?”
비록 통화 중이었지만 부담 없이 편하게 사용하는 정 위원장의 평양말투는 민 대통령을 대하는 솔직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독도전쟁 이후 민 대통령과 함께 민족사의 운명을 건 격동의 시간을 헤쳐 나오면서 이미 두 사람은 일체의 꾸밈과 가식이 필요 없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위원장님!
우리 정책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 내었는데 위원장님의 의견을 구하고자 전화드렸습니다”
“옳거니 그렇지요! 윤 비서관의 그 팀이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갔지요, 그 팀의 이름이?”
“네, 우리들 간에는 삼일특공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만”
“기렇치요 삼일특공대!
이름부터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진취적이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의 특공대 팀이라면 신통한 모범답안을 준비했을 것 같은데 어서 말씀해 보시라요!”
“예 그게 말입니다, 대고려연방입니다!”
“대고려라고요? 대고려연방…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이라?
오호! 고거 입에 착착 감기는 게 내 맘에 쏙 듭니다, 됐습니다! 됐어요!
코리아는 고려에서 유래된 외래어가 분명하니까 코리아의 본시 우리말은 고려가 맞지요!
거기다 큰 대자를 집어넣어서 대고려연방이라고 하면 땟놈들이야 펄쩍 뛰겠지만 말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제 오천 년 민족사에서 긍지를 가져도 될 만한 훌륭한 국호를 가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동안 지루하게 전개되던 통일 새나라의 국호 논란은 남과 북 정상 간의 의기투합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대체적으로 팔천만 남북국민들의 여론도 호의적이어서 통일한반도의 국호문제는 일단락되었다.
5월로 접어들자 전국은 통일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동시 총선거의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가오는 6월 17일은 역사적인 대고려연방의 출범을 최종적으로 추인하는 팔천만 남북한 국민들의 총투표가 예정되었다.
삼일특공대는 처음부터 통일헌법 제정 국민총투표와 초대 연방의회선거를 동시에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남북한의 국민들이 처음으로 실시하는 총선거인 만큼 가급적이면 압축적으로 실시하여 국민들의 피로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조심스럽게 출발하려는 연방의 시작 지점에서부터 각종 선거로 인한 혼란상들이 난무한다면 자칫 출발도 하기 전에 좌초될 위험성이 있었다.
장차는 지방자치선거까지 모든 선출직의 선거를 매 5년마다 한꺼번에 치르는 총선거의 개념을 구상했다.
이 제안은 통일 새나라의 골격을 설계하던 십 인 위원회에 의해서 큰 논란 없이 채택되어 동시 총선거가 확정되었다.
통일 새나라의 출범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한껏 분위기가 고조된 시점을 골라서 눈치 없는 뉴프레지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의 인상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가 늘 의기양양하게 노래를 불렀던 의제였지만 이번만큼은 그 타이밍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뉴프레지는 성탄절 폭죽놀이가 무위로 돌아간 후 실추된 자존감을 회복할 방편이 필요했고 이럴 때 선택한 것이 주한미군의 주둔비 인상 문제였다.
뉴프레지의 의도는 단순했다.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판단한 이 의제를 다소 거칠게 몰아붙여서 자신의 의지대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국을 골탕 먹일 좋은 소재가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는 듯 무례한 말투로 허풍스럽게 말했다.
“한국에겐 대단히 불행한 소식이지만 난 우리 협상 팀에게 지금보다도 두 배 이상으로 인상된 합의안이 아니라면 서명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협상의 최종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번 달 안에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한국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을 모조리 빼낼 수밖에 없어요,
나는 빈말을 하지 않습니다, 두고 보세요? 내 말이 허풍인지!”
뉴프레지의 이 같은 엄포성 발언에도 한국정부로부터는 그 어떤 반응도 전달받지 못했다.
한미방위비분담금의 한국 측 협상대표가 협상장인 워싱턴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워싱턴포스트 한국특파원의 질문을 받았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미군철수까지 거론하면서 한국에 최후통첩을 보냈는데요, 이에 대한 한국 측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이 같은 심각한 질문에도 한국대표는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입장이란 것이 있습니다, 내일 협상장에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은 한국 측의 분위기가 예년과 다르다는 것을 간파했다.
한국정부의 외교안보팀 관료들을 중심으로 밀착 취재에 들어간 다음날 아침 인터넷 판에 올린 기사의 제목은 ‘한국, 10% 이상의 방위비 인상은 불가!’였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사의 내용을 보고받은 뉴프레지 대통령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되면 최소 50%는 인상할 수 있겠는걸!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골탕을 좀 더 먹인 뒤에 합의를 해주어야겠어!
한국 때문에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선물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
워싱턴 협상장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초긴장 상태였다.
두 배로 인상하라? 10% 이상은 인상이 어렵다, 뭐 이런 정도의 말들이 오고 갈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측 협상대표의 표정에선 처음부터 표정 없는 찬 기운만 흘렀다.
예상했던 대로 미국 측 협상대표가 100%의 인상안을 들고 나오자 대뜸 그는 일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늘어놓았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이라는 안보상의 적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미군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북한과 통일을 앞두고 있어 미군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주한 미군의 주둔 목적은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확장을 저지하고자 하는 미국 측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객이 전도된 현실을 받아들여서 이제부터는 회담에 임하는 귀측의 협상태도도 수정되어야 합니다!”
저자세로 사정하던 이전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한국 측의 태도에 미국 협상단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한국 측 협상대표의 다음 말은 미국 협상단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고 말았다.
“사정이 이렇게 바뀌었다면 오히려 우리가 귀측으로부터 임대료를 받아야겠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 같은 말에 미국 측 협상위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양손과 어깨를 동시에 들썩이는 서양식 어처구니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우리가 귀국에 지불했던 만큼의 주한미군 주둔비를 지불해 주던지! 아니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든지 양단간에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은 즉각 백악관으로 보고되었다.
백악관에서 긴급 소집된 국가안보회의에서 새로 임명된 국방부장관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면 중국군과의 대치전선을 일본으로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이 지역에서 팽팽하게 유지 돼오던 미중 간 전력의 균형이 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합니다,
안정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유지를 위해서도 결단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현 수준에서의 주한 미군 기지는 반드시 사수되어야 합니다!”
새로 교체된 신임 국방부장관마저 자신의 정책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오자 심기가 불편해진 뉴프레지 대통령이 대뜸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그 말은 한국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기라도 하잔 말입니까!”
이때 벽 쪽의 보조의자에 앉은 채 콧수염을 어루만지던 튼볼 보좌관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사에 돈으로만 미국의 손익을 평가하던 뉴프레지의 장사꾼 기질을 튼볼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통일된 한반도는 이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싫든 좋든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제 일본정도는 우습게 여길 정도로 강력한 국방력을 자랑할 텐데 문제는 이들이 일본과는 대단히 감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또 그들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등거리 외교노선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 국가의 이익에 따라서 여차하면 미한일 삼각 방위동맹을 깨뜨리고 중국과 안보동맹을 체결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 말을 들었다면 중국이 쾌재를 부르겠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가정이 현실화된다면 일본의 방위조차도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싫든 좋든 통일된 한반도를 우리의 안보 동맹으로 계속 묶어두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한미군의 현재 위치는 고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선을 넘어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핵을 보유한 채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을 막지 못한 우리의 잘못인데 지금 우리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습니다!”
양손을 부르르 떨면서 힘겹게 화를 참고 있던 뉴프레지 대통령이 인내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튼볼 보좌관을 쏘아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때 크리스마스 폭죽놀이를 끝까지 하자고 그랬던 것이야! 튼볼!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야! 우리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말이야!
우리더러 임대료를 내기 싫으면 철수하라고 하잖아!
저들은 한 푼도 내지 않을 테니 우리더러 임대료를 대신 내어 놓으라고?
그런 미친 소리를 듣고서도 우리 군대를 그대로 놔두자고!
하긴 한국에서 못 받은 만큼 일본에서 몇 배로 더 받아내면 되겠지만 말이야!”
뜬금없이 내어밷은 뉴프레지의 진담 반 농담 반 같은 말에 심각하던 회의장에서 갑자기 폭소가 터져 나왔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종종 심각한 회의 중에도 폭소를 유도하는 남다른 제주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랬다.
한바탕의 폭소 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부통령이 나섰다.
평소 뉴프레지 대통령이 격정적으로 떠들 때는 자신의 말을 자제하면서 신중하게 처신하던 부통령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핵무기를 고리로 저들과 타협을 시도하는 건 어떨까요?”
부통령의 말을 뉴프레지는 신통치 않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지만 다른 참모들은 해답을 찾았다는 표정으로 귀를 솔깃했다.
“사실상 한반도의 핵무기보유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저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들의 핵무기보유를 우리가 인정해 주는 조건으로 임대료의 지불 없이 주한미군의 주둔비 협상을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통령의 제안에 대해서 뉴프레지 대통령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양손을 어깨까지 쓱 올리는 어처구니 몸짓으로 면박을 준 뒤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뭐가 됩니까?
부통령의 말은 서로 주지도, 받지도 말고 한반도를 그냥 핵무기보유국으로 인정해 주자는 것인데 그런 멍청한 협상에는 난 결단코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이날 뉴프레지 대통령은 부통령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동맹국의 외교를 하찮은 장사치들의 셈법정도로 치부하는 뉴프레지의 지도력은 이제 백악관 내에서도 그 바닥을 드러냈다.
반면에 정통 엘리트 정치인 출신으로서 합리적인 성품을 지녔던 부통령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물론 시샘 많은 뉴프레지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부통령을 당연히 두고만 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제 백악관은 뉴프레지 대통령 단 한 사람과 부통령을 비롯한 그 외의 이들로 나뉘어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소리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밑천이 드러나 버린 뉴프레지는 대통령의 권능으로서도 한번 기울어진 대세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뉴프레지 대통령은 결국 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백악관의 무개중심은 완전히 기울어 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날 저녁 워싱턴에 파견된 우리 협상단으로부터 미국의 수정제안서를 보고받은 청와대는 긴급 NSC회의를 개최하여 논의 끝에 수정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북쪽의 반응이었다.
밤 아홉 시를 넘긴 시각, 민 대통령과 정 위원장은 청와대 신청사와 노동당 1호 청사 간 새롭게 구축된 통신망으로 화상회의를 가졌다.
청와대 신청사의 지하벙크에 설치된 영상화면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NSC위원들의 표정은 긴장 반 기대 반의 모습이었다.
“코쟁이들이 급하기는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입니다,
핵무기보유국의 지위까지도 인정해 줄 테니까 주한미군기지를 계속 사용하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는 말이지요!
흐흐흐 거참 왜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갔습니다”
“저도 위원장님과 같은 심정입니다,
통일의 힘이 이렇게도 크고 위대할진대 그동안 우리 남과 북은 너무나도 오랜 세월을 둘러서 왔습니다”
“암요! 통일의 힘은 위대한 것이지요,
이제 중국으로부터도 우리 민족의 고구려를 온전하게 돌려받았다면서요?
생각해 보십시오! 저 광활한 만주 벌판이 모두 우리 민족의 땅이었습니다,
중국과 어깨를 견줄 만큼 강대한 고구려가 지배했던 우리 땅이었다 이 말입니다!
제깟 놈들이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고구려를 이제 되돌려 받았으니 위대한 광개토대왕의 대고구려를 우리가 다시금 일으켜 세워야 갔지요!
일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코쟁이 놈들보다도 우리 민족은 오히려 땟놈들을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도 코쟁이 놈들은 우리 땅에는 관심이 없지만 땟놈들은 다르단 말입니다,
옛날부터 우리 땅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려 왔던 사실을 우린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위원장님!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세들 간 전력의 균형을 위해서도 우리가 미국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오래전 우리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구한말 우리가 미국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일제의 먹잇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땅에 관심이 많은 중국을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미국을 활용할 필요가 있갔지요!”
“위원장님께서 동의해 주신다면 미국 측의 수정안을 받아들여서 5년 단위의 다년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 5년은 너무 길지 않갔습니까?
한 3년 정도가 적당할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저들의 식민지도 아닌데 딱 3년만 공짜로 사용하도록 하고 그다음부터는 다문 얼마라도 임대료를 받아내는 것이 합당하지 않갔습니까?
“3년이라… 생각해 보니 위원장님의 말씀이 타당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지를 남의 나라에 임대해 주면서 장기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한다는 것은 주권국으로서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가 맞겠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하시죠!
무상사용은 딱 1년만 허용해 주기로 하고 매 3년 단위로 계약의 내용을 수정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옳으신 생각이십니다!
대통령님의 강단 있는 결단으로 백 년 묵은 체증이 속 시원히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이렇듯 남과 북의 두 정상은 대고려연방의 출범을 앞두고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합이 척척 잘도 맞았다.
곧 출범하게 될 통일 연방의 초석을 다지고자 하는 두 정상의 의지는 확고하기만 했는데 이 모든 것이 독도전쟁 이후 형성된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급박하게 전개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 간의 진심은 통했고 서로를 굳건하게 신뢰했다.
이 신뢰가 층층이 쌓여가면서 하나 된 통일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었다.
정 위원장과의 통화를 마친 민 대통령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청와대 신청사의 지하벙크에 머물고 있던 NSC위원들도 제각기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통일 새 나라의 대장정을 위한 전열을 불태웠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달래면서 서서히 합체되는 민족의 엄청난 에너지를 목격한 윤 비서관은 감격에 겨웠던지 눈시울까지 붉혔다.
정부 내에서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은둔 팀을 이끌면서 대고려연방의 밑그림을 그린 기안자가 바로 윤 비서관이다.
중국에 이어서 이제 미국까지도 대고려연방을 정당한 주권국으로 대접하기까지 나라의 존망을 걸어야 했을 정도의 여러 위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위대한 대고구려의 후예들은 끊임없이 몰려오는 위기들을 하나하나 슬기롭게 헤쳐 나왔고 이제 대장정의 중간쯤에 도달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삼일특공대를 이끄는 윤 비서관에겐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 협상장의 분위기는 극도의 긴장감속에서 진행됐다.
어제저녁 미국이 제시한 수정제안은 사실 예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핵무기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 줄 테니 그 대신 기존에 사용하던 주한미군기지를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 달라는 대단히 굴욕적인 제안이었다.
어젯밤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본국의 결정사항을 전달받은 한국 측 협상대표가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면서 발언할 준비를 했다.
이때 초조한 기색의 미국 측 협상단과는 달리 제법 여유가 넘쳤다.
이미 협상의 주도권이 한국으로 넘어왔음을 알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통일 한반도의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귀국의 수정제안을 우리 정부는 조건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건부로 받아들이겠다는 한국 측 대표의 발언이 있자 미국 측 협상대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힘줄이 드러날 정도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국 대표가 그 조건이 적힌 서류를 읽기 시작하자 협상장 안은 산소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우선 우리 정부는 본 협상의 성격을 전환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이미 폐기된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새삼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본 협상의 성격을 제1차 주한미군 주둔지의 임대료 협상으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도발적 발언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 협상단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이었다.
갑자기 뒤바뀌어버린 갑을관계의 비애를 맛보고 있었던 것인데 딱히 마땅한 대안이 있을 리 없었으므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측 협상대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지의 임대료를 무상으로 결정하자는 귀측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단!”
맞은편 미국 협상단의 반응이 모처럼만에 안도의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단'이라는 단서가 붙자 이내 불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번 협상결과의 효력은 딱 1년의 기한으로 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최종 입장입니다”
딱 일 년의 초단기 협상임을 말하는 우리 측의 고압적인 태도에 미국 협상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판을 엎을 생각까지는 없었던지 미국 대표가 사정하듯 읍소하기 시작했다.
“기한을 딱 1년으로 정한다면 내년에 또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번잡스럽게 그러지 말고 관례대로 5년 다년계약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랜 세월 각별했던 양국의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이 문제만큼은 그렇게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대한 공손하게 미국대표가 요청했지만 한국대표는 작심이라도 한 듯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각별했던 양국관계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일 년 전이었습니다! 일본이 우리의 국토를 불법적으로 점령했을 때 귀국이 취했던 조치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귀국의 항공모함은 우리 군대의 독도진입을 저지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날 귀국이 보여주었던 특별했던 양국관계를 지금 우리 국민들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국에서 대고려연방의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준다고요?
귀국이 인정하든 말든 우린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세계최고 수준의 수소핵무기 보유국입니다!
우리의 자력으로 성취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마치 귀측에서 부여한 것처럼 생색을 내시니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처음 일 년 동안은 무상사용을 양해하겠습니다만 내년부터는 합리적인 임대료를 지불하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초강대국이 한때 그들의 보호를 받았던 국가에게 이토록 참혹한 수모를 당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미국인은 없었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아닌 겨우 한반도의 절반인 한국에게 연거푸 케이오 펀치를 얻어맞고 있었으니 한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미국은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곧 통일이 예정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던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미국과 중국의 균형추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대고려연방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문제였다.
일본을 끝까지 보호하고 적성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대고려연방의 심기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미국대표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말했다.
“도대체 얼마를 원하는 겁니까?”
한국대표의 표정에선 주도권을 쥔 자로서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전체 주한미군기지 공시지가의 5%가 양보할 수 없는 최저선입니다!
차후로는 매 삼 년 단위로 임대차 협상을 재개하여 새로운 약정을 체결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측의 최종 입장임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
드디어 팔천만 국민들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2030년 6월 17일의 태양이 밝았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 85년 만에 남과 북의 국민들에 의해서 통일을 추인하는 상징적인 조치가 이루어졌다.
대고려연방의 헌법제정 국민투표와 초대 연방의회의원 총선거가 89%라는 높은 투표율 속에서 동시 진행됐다.
90%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역사적인 대고려연방의 통일헌법이 탄생했고, 열한 개 주에서 삼십 명씩 모두 삼백삼십 명의 연방의원이 선출되었다.
처음부터 남북한의 주요 정당들은 초대연방의회를 구성하는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기로 신사협정이 맺어진 상태였다.
제1회 선거부터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지역별로 정파별로 선거가 과열된다면 자칫 통일을 향한 대장정에 심각한 파열음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의 신생정당들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명망가들은 무소속 출마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연방의 첫출발을 위한 신사협정에 동참했다.
초대연방의원들은 통일의 첫 단추를 신중하게 잘 끼워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기존의 정파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갓 태어난 신생 통일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대고려연방 국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반영된 결과였지만 또 다른 사정도 있었다.
십 년이라는 유예기간 동안 기존의 남북한 정부와 국회가 그대로 존속되는 과도기적 상황이다.
이 특별한 상황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연방의회와 연방정부는 다분히 상징적인 모습을 뛸 수밖에 없었다.
당초 십 인 위원회에서 연방의회의 위상을 논의할 때부터 남북국회 예산의 오분의 일 수준으로 잡았을 정도로 시범적인 성격이 강했다.
연방의원들에게는 자동차도 배정되지 않았고 각 상임위원회에 배치된 공동 보좌진 외에는 비서진의 조력도 받을 수 없었다.
생활비에 충당할 수 있는 급료도 없었고, 공돈 비슷한 회의 수당 같은 것도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만은 예외였다.
의정활동에 필요한 교통비라던가 실비의 지출만큼은 분기별 삼천만 원의 한도 내에서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연방의원들에게 제공되는 신용카드로만 지출할 수 있었는데 지출내역은 연방국회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투명하게 공개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방의회는 자연히 능력은 있지만 그동안 정계를 멀리하던 참신한 인물들의 등용처가 되었다.
이 또한 삼일특공대의 제안을 십 인 위원회가 받아들인 결과였다.
삼일특공대는 통일 후의 정치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비대한 살집을 과감하게 도려냄으로써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실용적인 전문가 집단을 구상했다.
국민들로부터 그 역량을 인정받으며 모범적으로 자리 잡은 스웨덴 정도의 의회상을 출발지점으로 삼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의도는 달랐겠지만 십 인 위원회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다.
십 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는 동안 연방의회의 위상을 자신들보다 한 단계 아래로 설정하고자 했다.
그것은 유예기간이 끝났을 때 보다 손쉽게 연방의회를 장악하려는 꼼수가 숨어있었다.
어찌 되었던 연방 국민들은 완전히 새로워진 형태의 의회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기존의 정치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2030 젊은 세대의 강력한 응원 속에서 정계에 입문한 신출내기 연방의원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의정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연방의회의 첫 과제인 연방정부 구성을 위한 상임이사회를 선출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선출된 열한 명의 상임이사들은 한결같이 정치색이 무색무취한 남북한의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사회원로출신들이었다.
지역적인 안배차원에서 각 주에서 한 명씩 선출되었는데 전혀 의외의 인물이 이사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오랫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을 이끌면서 남북 양쪽으로부터 민족주의 사학자로서 신망이 두터웠던 양 이사장이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2030년 7월 1일, 감격적인 그날은 기어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대고려연방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또다시 지구촌사람들은 광개토대왕 특별시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말이 행정수도이지 팔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의 손길을 애써 외면했던 볼품없는 비무장지대 그대로의 상태다.
하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대고려연방 신행정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대대적인 개발이 예정되었다.
국제공모로 결정된 개발의 방향은 코리아평화공원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신행정수도로 정해지면서 세계인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성지로서 거듭나게 될 광개토대왕 시는 대고려연방의 역동적인 미래상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게 될 것이다.
주어진 개발기간은 3년으로서 한국의 세계적인 토목 역량이 총망라된 대역사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비록 최대 십 년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서울과 평양은 앞으로도 남과 북의 수도로서 그 기능이 그대로 유지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고려연방의 행정기능들을 서울과 평양중 어느 한 곳에 둘 수도 없었고 분산하여 배치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자칫 이제 갓 출발하는 연방의 위상이 기존의 남북한 정부보다도 낮게 비추어질 경우 향후 연방으로의 권력 이동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었다.
이 부분을 처음부터 날카롭게 꿰뚫어 본 삼일특공대의 혜안을 십 인 위원회가 받아들임으로써 그야말로 판문점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연방의 수도 기능은 광개토대왕 시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그렇다 보니 광개토대왕 시의 첫 풍경은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주변으로 샌드위치판넬조의 가건물들이 꽉 들어차는 진풍경이 만들어졌다.
연방의회와 연방정부가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으로 입주를 시작하자 휑하던 광개토대왕 시도 제법 연방수도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어 나갔다.
대고려연방의 출범식이 거행되던 평화의 집 앞마당에는 47개국의 현직 정상들이 축하사절단으로 참석했고 전직들까지 합치면 일백 명이 넘는 초호화 사절단이 귀빈석의 앞자리를 꽉 채웠다.
83억 명의 지구촌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 위원장과 민 대통령이 환한 표정으로 단상에 올랐다.
독도가 선명하게 표시된 하늘색 한반도기가 두 정상에게 전해지자 함께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가볍게 바람까지 불어주자 대고려연방기가 힘차게 펄럭이면서 팔천만 대고려연방 국민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다음 순서는 더욱 감동적인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정 위원장이 연방대통령을 맞이하러 잰걸음으로 다가가자 민 대통령도 함께 다가가 연방대통령의 좌우에 섰다.
팔순을 훌쩍 넘긴 연로한 연방대통령이 좌우의 남북 지도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단상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세 사람이 단상에 올라섰을 때 연방대통령의 구령에 따라서 우렁찬 목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그 구호는 ‘대고려연방 만세’였다.
이 감동적인 장면을 TV로 시청하던 팔천만 국민들도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삼창을 따라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가 되고 말았다.
만세삼창이 끝났을 때 정 위원장과 민 대통령은 각자 한 발작씩 좌우로 물러나며 연방대통령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팔천만의 인구와 세계 5위로 도약한 경제규모, 미국과 러시아조차도 우려하는 수백 기로 추정되는 NK차르봄바급의 핵무기,
기술적으로도 완전체에 도달한 화성 21형 탄도미사일과 SLBM까지 의심의 여지없는 세계 4대 군사강국이었다.
동북아 지역은 이미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전개되던 G2간의 긴장감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게 된다면 그 첫 번째 교전지역으로 당연시되던 세계 최고의 화약고다.
통일이전의 한반도라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생존을 위한 구차한 줄 서기를 강요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대고려연방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향후 대고려연방의 향방에 따라서는 팽팽하던 미중 간 전력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는 통일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혀 뜻밖의 현상이었다.
이렇듯 크게 달라진 위상의 변화로 인하여 미국과 중국이 대고려연방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자 통일 한반도의 주가는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연방대통령은 청년시절 단재 신채호의 사상에 매료되어 우리 민족의 북방영토에 눈을 떴다.
이후 평생을 올곧은 민족주의 사학자로 강단에 섰던 학자로서 정치와는 일면식도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초대 연방의회에 민족세력이 참여해야 된다는 학계의 여론이 비등함에 따라 얼떨결에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남북양쪽으로부터 단지 무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야말로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연방대통령으로 지명되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수교하자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동북 3성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인들의 관광지는 자연스레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 주변과 조선족 자치주가 있던 연변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그곳에 거주하던 조선족들과 빈번하게 교류하고 때마침 사학자들 사이에서 간도의 영유권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자 중국당국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당국이 중국사회과학원을 내세워서 동북공정이라는 희대의 역사 사기극을 기획하게 된다.
오늘날의 중국 동북지역에서 전개되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모든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며 왜곡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했다.
과거 동북쪽 접경지역에서 활약했던 거란 여진족 같은 소수민족들이 모두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으로 녹아들었듯이 이들과 똑같은 도매금으로 용광로 속으로 집어던져버렸다.
이천 년대 초, 중국이 범정부적으로 동북공정을 노골화시키자 우리 정부도 이에 맞서는 차원에서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들어 대응했다.
이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보다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고구려연구재단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확대 개편하게 된다.
이때 재단이사장의 소임을 맡게 된 양 이사장은 이제 연방대통령으로서의 시대적 소명을 다하기 위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전쟁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켜 버리더니 고구려의 구토인 평양조차도 그들의 땅이라는 깡패 같은 내부논리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하여 동북공정의 최종목적지는 고구려의 잔여구토를 중국 속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려는 영토문제로 확대되었다.
작년 말 평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던 크리스마스 폭죽놀이에 즈음하여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적대국이 세기의 비밀협정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두 강대국 간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영토를 중국의 동북 제4성으로 편입시켜 버리겠다던 계략을 진작부터 꿰뚫어 본 사람은 바로 양 이사장이었다.
이사장의 도움으로 윤 비서관은 자신이 이끌던 연구 2실 제3팀을 정부 내의 은둔 팀인 삼일특공대로 활용하게 되었다.
금년 초 동북공정을 불가역적으로 좌초시켰던 백두산정계비 남북대학생 탐험행사도 사실은 양 이사장과 윤 비서관의 작품이었다.
그랬던 양 이사장이 학계의 강력한 권고를 물리치지 못하고 초대 연방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만 해도 통일나라의 기틀을 잡는 일에 민족주의 사학자 한 명쯤은 필요하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져버렸다.
헌법의 부칙에 삽입된 최대 십 년의 유예기간은 달리 생각해 보면 남과 북의 온전한 통일을 십 년 동안 유예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실권은 기존의 남북한 정부가 그대로 쥐고 있으면서 통일된 그 외피의 상징성만을 가지는 것이 연방정부의 솔직한 모습이었다.
그런 이유로 단지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양 이사장이 남북 양쪽으로부터 무난하게 추대를 받는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비록 얼떨결에 연방대통령이 되었지만 연단에 선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훌쩍 넘겨버린 팔순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누군가 우리 한민족을 짧게 정의해보라고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천육백여 년 전 광개토대왕 이래 가장 강력한 국력을 지닌 통일나라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열강들에 의하여 강제로 나라가 분단된 지 85년 만에 오직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하나 된 나라를 알고 계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위대한 통일 나라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입니다!”
연방대통령이 멋들어지게 오른손을 치켜들자 정 위원장이 제일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것을 신호로 착석해 있던 삼만의 내외빈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와’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지축이 흔들릴 것만 같은 이 거대한 함성소리에 불편한 기색으로 앉아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부통령과 함께 나란히 맨 앞자리 귀빈석에 앉아있던 일본총리와 시 주석이었다.
이들은 미국부통령마저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앉은 자세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어 물었다.
이제 연방대통령의 연설은 절정으로 내달렸다.
“고려라는 국호는 광대한 북방영토를 지배하던 고구려의 최전성기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부르기 시작한 고구려의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이름을 세계인들은 ‘코리아’라고 불렀습니다!
반만년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광개토대왕의 고구려는 이제 ‘대고려’라는 이름으로 21세기 한반도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땅덩이가 두 동강이 나고, 중국에 의해서 고구려사를 통째 중국사로 왜곡당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제 그동안의 모든 치욕과 오욕을 물리치고 동북아시아의 신흥강자로서 우뚝 올라섰습니다!”
이번에는 민 대통령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정 위원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따라 일어났다.
동시에 모든 내외빈들이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갈 듯한 우렁찬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평화의 집 앞마당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본총리와 시 주석만큼은 끝끝내 자리를 깔고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함께 일어나서 환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던 미국부통령과 대비되는 이 같은 모습으로 취재카메라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자 두 사람의 얼굴색이 점차 흑색으로 변해갔다.
“우리 대고려연방은 그 어떤 열강의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는 당당한 자주국으로서 중립외교를 표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또다시 우리나라를 핍박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과거와는 달라진 새로운 강대국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연방대통령의 연설은 주변의 열강들이 한반도에 가해왔던 핍박을 파노라마처럼 되새기면서 다시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통일나라의 다짐이 서려있었다.
이제 열강들의 눈치나 살피던 분단된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신흥강자로서 그 옛날 광개토대왕이 가졌을법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초췌한 표정으로 미국 부통령의 옆자리만 지키던 일본총리의 모습과는 절묘하게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이미 핵무기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해 버린 대고려와의 무력분쟁은 이제 언감생심 생각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반면에 시 주석은 연방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꽉 지어진 두 손을 무르팍 위에서 파르르 떨었다.
대고려연방의 차고 넘치는 무례에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미국과 일전이라도 치러야 하는 비상한 상황에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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