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이제 행위가 아닌 태도가 된다

여정을 마치며

by 김종환

지금까지 우리는 기나긴 여정을 함께 걸어왔다. 명상이 왜 필요한지, 우리 내면의 시스템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시스템을 다스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뇌의 설계도를 펼쳐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과, 마침내 찾아오는 고요의 순간들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의 끝에서, 명상은 결국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는가?



‘명상’을 넘어 ‘명상적인 삶’으로


나는 이제 ‘명상한다’는 말보다 ‘명상적이다’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쓴다. 이 미묘한 차이 안에, 내가 발견한 모든 것의 결론이 담겨있다. ‘명상한다’는 것은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행하는 하나의 ‘행위(act)’를 의미한다. 하지만 ‘명상적이다’라는 것은, 나의 존재 전체가 특정 ‘성질(attitude)’을 띠게 됨을 의미한다.


‘명상적이다’라는 말은, ‘지금 여기의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잡고, 무엇이든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로운 상태’를 표현한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어떤 정보와 자극이 밀려오더라도, 그것에 반사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안정적인 중립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어떤 행위의 형태를 띠든 다분히 명상적이다. 설거지를 하며 물의 감촉에 집중하는 것도, 타인과 대화하며 내 안의 감정을 지켜보는 것도, 길을 걸으며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는 것도 모두 위대한 명상이 된다. 명상은 더 이상 하루에 몇 분, 길게는 몇 시간 동안 어딘가에서 자리를 깔고 해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고’, ‘통찰력을 유지하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그 상태가 삶의 전반에 스며들어 정착할 때, 우리의 삶 자체가 명상이 된다.



사고방식의 변화를 넘어, 사고구조의 재건축으로


‘어떤 시도’나 ‘노력’에서 시작한 명상은, 우리의 ‘취미’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이 된다. 그리고 라이프스타일로 굳어진 명상은, 단순히 우리의 ‘인식’을 전환해 줄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사고의 구조’ 그 자체를 바꾸는 경이로운 계기가 된다.


사고구조가 바뀐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생각이 든 후에, 그 생각을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후적 대처가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같은 것을 보아도, 이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근본적인 변화다.


과거에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실패의 기억은, 이제 ‘값진 오답노트’로 느껴진다.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던 저급한 쾌락은, 더 이상 달콤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허무하게’ 느껴진다. 나를 쫓던 것, 내가 쫓아가던 것, 내가 무서워하는 것, 내가 달콤해하는 모든 것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재구조화된다.



가장 ‘나’다워지는 길


하지만 이 과정이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주입된 가치,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두려움, 과거의 상처가 남긴 온갖 불필요한 노이즈를 걷어내고, 마침내 ‘가장 나다운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에 가깝다.


우리는 이 길 위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 때 가장 자연스럽고 평화로운지를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잠깐 해봤더니 좋다는 식의 일시적인 경험이 아니다. 3일짜리 워크숍에 참여했더니 조금 달라지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도 아니다. 이것은 꾸준한 등장과 반복을 통해, 마침내 나의 신경망에 새로운 길을 내고, 나의 삶에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난하고도 위대한 과정이어야만 한다.




마치며: 유일한 답, 그리고 당신에게 건네는 희망


돌이켜보면, 나에게 ‘명상’은 어쩌면 유일한 답이었다. 다른 모든 방법들은 낡은 시스템 위에서 증상을 완화시키려는 시도였지만, 명상만이 유일하게 시스템 자체를 재부팅하고 재설계하는 길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위로나 쓸데없는 소리는 안했다. 비현실적인 묘사를 한다거나, 증명되지 않은 현상을 들이대며 유사과학을 차용하거나, 온갖 비유와 미사여구로만 설명해야하는 신비로운 용어를 사용하거나 억지를 부리지도 않으려고 노력했다.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이다.


그냥 나는 불행하고싶지 않았고, 다만 행복하고싶었을 뿐이다.


이 길고 긴 분투의 기록이, 나와 같이 고통받던 누군가에게 그저 흥미로운 정보나 아이디어를 넘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은 씨앗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여기까지 나와 함께한 당신이, 이제 당신의 첫 호흡을 알아차리기를. 그리고 그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딛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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