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철학자가 모든 대화는 독백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들어주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상담실에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때때로 여러 말보다 잘 듣는 것이 도움 되기도 하는데 상담자가 듣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듣지 않고서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 ‘얘기한다고 달라질까요?’ 하시는 분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얘기한들 달라져본 경험이 별로 없으셔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얘기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얘기했을 때 무언가 불편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이 치부만 드러내는 것 같고, 상담자는 듣거나 질문만 하는 것 같으니 평가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 친절하게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예의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다소 무례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말하면서 수치심이 드는 분들은 그 마음 감추기 위해 상담자를 공격하듯 표현하기도 합니다.
3. 다른 이유들도 있는데 그동안 감당하기 어려워 묻어 두었던 얘기들을 하다 보니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나 생각이 엄습할 수도 있고, 살아오면서 얘기한들 달라진 경험이 별로 없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얘기했음에도 상대가 자신의 얘기에 별 반응이 없었을 수도 있고, 오히려 얘기할수록 비난을 받았거나 얘기를 들어줄만한 대상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얘기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문제 해결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모호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각기 이유들은 다르게 보이기도 하지만 살아오면서 주위에 도움을 청했지만, 청하고 싶었지만 도움 받을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뭐가 달라지겠어' 하시는 것 같아 참 외로우셨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4. 불편함을 감내하기 어려워 상담자에게 투척(?) 하듯 얘기하시게 되면 상담자 입장에서는 뭔가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잘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무력감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무력감은 내담자가 살아오면서 주로 느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해결책 없는 것 같은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상담자에게 '투척'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무력감을 상담자가 공감하지 못하고 설명해 대거나 해결책을 있는 대로 제시하면 어떨까요? 제 말 한마디에 그분들의 고민이 해결될까요? 타인의 말 한마디에 쉽게 바뀐다는 것은 삶의 기반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건 한순간처럼 보이지만, 바뀌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제 말 한마디로 그분들의 고통의 과정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 ‘얘기한다고 달라질까요?’라는 말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의미들을 이해해 나가다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 ‘달라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얘기를 듣다 ‘뭐가 달라지고 싶으세요?’ 여쭤보면 저에게 ‘투척’했는데 제가 다시 돌려 드리니 난감해하는 표정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6. 얘기해도 이해받기 어려운 세상에서 표현하지 않고 이해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 감내하면서 사는 게 어떤 면에서 익숙하고 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용기 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내 얘기 들어주겠어, 얘기한들 달라지는 게 있겠어'하며 지레 마음을 닫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마음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7. 지금까지 충분히 외로우셨을 텐데 더 이상은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얘기한 들 달라지겠어' 하시며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는 것은 피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피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만 기대가 없는 삶은 너무 서글픈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누군가 있을 테지만 결국 해결해 나가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조금 용기 내어 조금씩 주위 분들에게 내 얘기를 들을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야 나에게도 ‘얘기해도 나쁘진 않구나, 괜찮구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