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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d Aug 10. 2024

01. 두 친구

빈센트 반고흐 The yellow house('The Street')



01. 두 친구





길모퉁이의 노란 집은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짙은 녹색 창문 안쪽은 낮이고 밤이고 언제나 새카맸는데, 속을 들여다보아도 항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노란 집 위를 뒤덮은 하늘은 낮도 밤도 아닌 하늘의 색을 띠며 노란 집의 기묘함을 도드라지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천사들은 그 집의 아름다운 노란색에서 신의 황금빛을 보았고, 악마들은 지옥의 타오르는 불 속의 영롱한 노란 불꽃을 보았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천국에도 지옥에도 속하지 못한 길 잃은 영혼들은 노란 집 옆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했다. 지상에서 영혼을 거두는 일을 하는 하급 악마들과 하급 천사들은 노란 집에 들어가 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지상으로 내려갈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어느 날부터 노란 집 안에 들어오지 않고 바깥을 서성이는 천사가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함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지 않겠는가.” 하고 몇몇 동료 천사가 권했으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노란 집의 벽을 손으로 쓸며 걸었고 지상으로 내려갈 차례가 될 때까지 집 주변을 수십 번 수백 번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하급 악마 벨제붑은 2층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옆에서는 동료 악마들이 카드놀이로 내기를 하고 있었지만, 몇 번 이기고 나니 재미가 없진 벨제붑은 카드놀이 대신 바깥 바라보기를 선택했다. 최근 이상한 천사 하나가 벨제붑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간혹 저렇게 미쳐버리는 천사들이 있지.” 동료 악마 멜베스가 벨제붑이 보는 것을 흘끗 보고는 말했다. 벨제붑은 궁금한 것을 참는 성질의 악마는 아니었다. 설명이 좀 더 필요했다. 




“이보게. 이름이 뭔가?”




노란 집의 뒷골목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던 벨제붑이 자신의 앞을 지나가던 천사를 툭 치며 물었다. 천사는 짧고 밝은 갈색 머리를 하고, 누가 봐도 커 보이는 하얀 셔츠, 그리고 헐렁한 팬츠를 입고 있었다. 깊고 큰 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이름을 묻는 악마를 처음 봤을 천사는 잠시 멈춰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가브리엘.”




“아, 혹시 그 대천사…?”




“이름만 따온 거요. 당신은?”




“난 벨제붑. 나 역시 이름만 따왔지.” 




벨제붑은 담배를 하나 빼서 가브리엘에게 내밀었다. 가브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왜 돌고 있는 거요?”




“… 견딜 수가 없어서 돌고 있었소”




“뭘 견딜 수가 없는데?”




“하급 악마들은 영원히 악한 인간의 영혼을 수확해 옵니까?”




“아니. 일정량을 채우면 상급악마가 되어 지옥불 속에서 영원히 편하게 놀고먹지.”




“영원히?”




“영원히”




“당신은 그걸 견딜 수 있소?”




가브리엘의 질문에 벨제붑은 입을 꾹 다문 채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 뒤로도 벨제붑은 매일 노란 집 밖에 나가 가브리엘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 벨제붑은 노란 집 안에서 매일 같은 카드게임 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막연하게 바라왔던 영원의 시간도 예전처럼 기쁘게 다가오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자신의 일을 하러 지상으로 내려간 뒤, 벨제붑은 가브리엘처럼 노란 집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차례가 아닌데도 지상으로 내려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벨제붑이 발을 질질 끌며 걸어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그는 기차를 타고 가다 자신이 내려야 하는 마을에 일찍 내렸다. 벨제붑은 자신이 데려와야 하는 영혼의 집을 찾아갔다. 흙길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꽃이나 나무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된 너른 잔디밭이 보였다. 그 뒤로는 붉은 벽돌을 빈틈없이 채워 넣은 커다란 집이 있었다. 벨제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높은 계단을 지나니 최신식 티비가 놓인 응접실이 나왔다. 벨제붑은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집의 복도에서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복도 벽에는 한때 그 집에 살았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복도 끝은 서재였다. 벨제붑은 서재 문을 열었다. 새하얀 머리의 노인이 훌륭해 보이는 의자에 몸을 푹 기대고 전화로 호통을 치고 있었다. 벨제붑이 24시간 후 데려가야 할 사람이었다. 그는 벨제붑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자신 앞의 의자를 가리키며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는 계속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벨제붑에게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따라주었다. 잠시 후 노인은 전화를 끊었다. 얼굴에 무섭게 패인 상흔과 주름이 그의 한평생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인간에게 질문하기는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벨제붑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상급악마가 되는 것은 이제 벨제붑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 




“후회가 되네.”




“무엇이?”




“이 집에 나 홀로 남아 있게 만든 모든 것이. 그리고…”




“그리고?”




“그립네”




“당신 같이 살아온 사람에게도 그리움이 허락되는가?”




“감정은 허락되는 것이 아닐세. 그것은 그냥 내 안에 있는 것일세. 내가 느끼는 것을 막을 수도 억지로 끄집어낼 수도 없는 것일세.”




벨제붑은 놀라웠다. 노인은 사채업자로 간절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로 돈을 벌었으며, 돈을 갚지 못할 때에는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까지 저질렀던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에게도 저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벨제붑은 노인이 따라주는 위스키를 마시고 시가를 피우며 노인에게 그가 느껴온 감정들을 하나씩 읊어보라 말했다. 벨제붑은 자신이 그 감정들을 거의 겪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놀라움을 느껴본 것조차 이번이 처음이었다. 24시간이 지난 뒤, 벨제붑은 노인과 함께 기차를 탔다. 지옥으로 가는 칸에 그를 태우고 벨제붑은 노란 집이 있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에는 가브리엘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과 등은 피투성이였지만, 눈만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이 꼴이 다 무엇이오. 날개라도 뜯겼소?” 




“이제 필요 없는 것이니 신께 돌려드렸소.” 




벨제붑은 기차를 타려는 가브리엘의 팔을 붙들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벨제붑은 모자를 벗어 가브리엘에게 주고는 노란 집으로 달려갔다. 집 앞에는 검은 프록코트를 입고 창백한 얼굴을 한 악마 셋이 서성이며 서 있었다. 그들은 벨제붑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을 막고 그의 팔을 양쪽에서 잡은 채 노란 집의 뒷골목으로 연행하듯 끌고 왔다. 벨제붑은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영혼을 다시 연행하든지 인간이 되는 걸 선택하라는 말에 인간을 선택했고, 상급악마 셋은 그날 처음으로 놀라움을 느껴보았다. 그들은 벨제붑을 엎드리게 만들고 강제로 등을 밟아 악마의 검은 날개가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날개를 등에서 뜯어버렸다. 타는 듯한 고통에 벨제붑은 손을 벌벌 떨며 신음했다. 




“무한의 영광을 포기하고 유한하고 비천한 삶을 택하다니. 어리석은 놈” 




세 악마는 뜯긴 벨제붑의 날개를 들고 사라졌다. 벨제붑은 일어나서 걸었다. 그는 기차역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노란 집을 보기 위해 뒤 돌지 않았다. 




벨제붑이 기차역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가브리엘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벤치에 앉아 다음 기차를 기다렸다. 등에 불이 붙은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으나, 그것은 몹시 새로운 감각이었다. 




“받게.”




그의 눈앞으로 누군가 모자를 불쑥 들이밀었다. 벨제붑은 모자를 받아썼다. 가브리엘이었다. 가브리엘은 더는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소년이 되어 있었다. 




“자네도 곧 어려지기 시작할 걸세.” 




벨제붑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앞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인간 세상으로 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벨제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던 벨제붑은 이제 청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벨제붑은 가브리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꽉 쥔 채 악수를 했다.




“천사는 악마도 구원하는군.”




“자네가 자네를 구원한 걸세.”




가브리엘의 말에 벨제붑은 미소를 지었다. 




생의 첫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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