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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Aug 06. 2023

원근법 주의

잊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의 얼굴도 시간이 지나면 가끔 흐릿해진다. 그럴  퍽 슬퍼지곤 하는데, 이것이 그 애틋하던 마음도 결국은 다 허물어 것 같아서 드는 슬픔인지, 기억해내고 싶은데 잘 기억이 안 나서 발을 동동거리게 되는 마음과 같은 슬픔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사랑했던 것을 떠올릴 만한 게 꼭 얼굴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같이 걷던 한강이나, 흥얼거리던 노래나, 그이가 조그만 입으로 말하던 문장 같은 것들을 돌이키다 보면 금세 당신이 다시 내 옆에 서있곤 한다. 물론 당신이 온다고 이 슬픔이 그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이별한 것들은 너무 흐려져도 슬프고 너무 선명해도 슬프다. 예전에 멋모르던 시절에는 제 마음 하나못 가누며 비틀거리고 사는 사람들을 비웃곤 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제일 그렇게 산다.

술도 잘 못하던 내가 이제는 기껍게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그러면 어떤 것들은 선명하게 보이다가도 흐릿해지고, 어떤 것들은 뿌옇게 보이다가도 또렷해다. 가로등 따라 밤 따라 걷기도 쉽고, 버스 창문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기도 쉽다. 꿈을 꾸는 것도 쉽다.


또 당신의 꿈을 꿨다.
잘 웃는 내가 당신을 만나면 그렇게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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