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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a May 13. 2021

[기프고 슬쁘다] "도대체 생일은 어떻게 챙겨야 해?"

나의 소중한 감정 이야기-11

어릴 때는 생일이 참 행복했다.

가족들이 선물을 챙겨주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작은 케이크 하나 촛불 켜고 축하해 주었다. 가끔씩 선물이 같이 들어오면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어른이 되면서 케이크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일을 축하할 때도 케이크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일에 대한 개념에 큰 장점과 단점이 되었다. 나는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어서 좋은데, 남은 서운해하는 상황이 생긴다. 


데이트할 때는 참 편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참 가난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쉬지 않고 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그리고 검소했다. 보석이나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더욱이 데이트할 때부터 내가 돈을 쓰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결혼반지 외에는 반지나 목걸이 같은 선물을 해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밸런타인데이가 되어 초콜릿을 한 바구니 들고 갔다가 혼이 났다. 그 비싼 것을 왜 샀냐고 혼이 났다. 내가 학교 기숙사를 나와 갈 곳이 없을 때 적금을 깨어 단칸방을 구해 주었다. 보일러가 고장 나 난방이 안되면 전기장판을 사 왔다. 목감기가 걸렸을 때는 가습기를 사 왔다. 그렇게 나를 키우다시피 만났다. 장모님이 나에게 도둑놈이라고 하셨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정말 사랑 하나로 결혼했다.  알고 보니 아내도 생일에 대한 추억이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케이크 하나에 마음을 담아 챙겼다. 그러다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는 동안 마음보다는 케이크만 남았다. 아내는 결혼기념일도, 생일도, 어떤 날에도 과도한 소비를 하지 않았다. 그저 케이크 하나로 충분하다고 했다. 오히려 아이들을 챙겼다. 우리 둘의 기념일보다는 아이들의 생일을 더 챙기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미안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좀 더 챙기자고 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꽃을 주었다. 나중에는 실용적으로 화분을 사다 주었다. 매년은 아니지만 가족들과 외식도 했다. 나중에는 쇼핑도 하며 원하는 것을 사주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케익이 커져갔다.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했고 한없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노력하는 모습 보이는 중이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작년 아내의 생일이었다. 그 날 우리는 심하게 다투었다. 


말 한마디 마음에 담는 것도 잊어버린 시간들.

나는 케익과 화분을 샀다. 막내는 편지를 썼다. 첫째와 둘째는 좀 컸다고 용돈을 드리려고 했는데 받지 않았다. 나는 외식도 하고 싶었다. 선물도 사고 싶었는데 아내는 이미 사고 싶은거 샀다며 거절했다. 그래 평소에 사고 싶은거 사면 되니까 의미 있는 선물을 주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일을 축하하고 밤이 되면 진심으로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계획을 했다. 외식은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배달 음식을 먹기로 했다. 뜨거운 국물이 있는 샤부 샤부였다. 즐겁게 먹다가 문제가 생겼다. 아내의 실수로 둘째의 허벅지에 뜨거운 국물이 쏟아졌다. 한순간 생일의 축하는 사라졌고 우리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는 빨리 응급실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그래도 괜찮을 거야 병원 안 가도 되겠네'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화가 났다. 이 상처를 보고도 괜찮다니... 순간 아내에게 분노의 레이저 눈빛을 발사했다. 아내는 당황했다. 나는 둘째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이 보더니 빨리 오길 잘했단다. 치료 안 받으면 큰 흉이 졌을 거란다. 더 화가 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둘은 말이 없었다. 생일은 그렇게 망쳤다. 내가 준비한 망음을 담은 말 한마디는 오히려 분노의 눈빛이 되어 돌아갔다. 


그래도 사랑은 우리를 이어주더라.

며칠 우리는 사이가 나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아이들이 잠든 밤에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늘 그렇게 다투고 늘 그렇게 화해했다. 대화의 끝에는 언제나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막상 확인하면 마음이 다 풀어지고 서로를 또 사랑하게 된다. 부부란 그런 거다. 20년 살며 좀 식은 거 같아도, 싸워서 지칠 때가 되어도 막상 대화하고 서로 마음을 확인하면 또 풀리고 또 사랑하게 된다. 그때는 케이크도 선물도 필요가 없다. 그냥 대화를 나누면 된다. 부부 생활 20년에 깨달은 진리다. 부부는 보이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기보다 보이지 않지만 서로 대화하며 마음을 확인하는 관계다. 그래서 대화가 없는 부부는 가장 위험하다. 그렇게 우리는 생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다시 정리했다. 다음부터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할 것이다. 설령 케이크가 없어도 아내와 대화할 것이다. 


"나의 일상은 기쁨 하나에 슬픔 하나 넣은 커피 한잔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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