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뒤 상주에 내려왔습니다.
상주는 서울에서 찾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많은 곳입니다. 푸르른 나무, 맑은 하늘, 따스한 햇살.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출퇴근길 차 유리창을 통해 보던 자연을, 이제는 발밑에서, 머리 위에서 더 입체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이제야 봄이 완연하게 왔다는 걸 실감합니다.
일과도 단순해졌습니다. 사람을 상대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머리는 이제 오늘 한 끼에 필요한 재료를 떠올리는 데 쓰이고, 시설을 돌아다니던 에너지는 집안일로 흘러갑니다. 하루의 가장 큰 고민이 민원 처리 방법에서 '밥을 먹을지, 면을 먹을지'로 바뀐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쉼'에 가장 가까운 환경이겠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그만큼 편해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기분이 자꾸 따라붙습니다. 몸은 멈췄는데, 긴장은 풀리지 않습니다.
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분명 몸과 마음은 쉼을 갈망했지만, 생산성 있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 1인분의 삶을 살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또 다른 상실처럼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쉼이라고 부르기 어려워 보입니다.
가끔은 제가 지금 '잘 쉬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쉬고 있으면서도 쉴 자격을 증명해야 하고, 만약 자격이 있다면 '잘 쉬어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뭘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자신을 견디기 힘든 그런 모순 속에서 맴돕니다.
그러니, 이런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쉼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 상태이기보다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해왔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가지는 것조차 뒤처지는 삶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쉬는 법도, 나를 이해하는 법도 언젠가는 시간을 들여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이 그런 것들을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