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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 한 사람을 향한 고백

단 한 장의 앨범, 불멸의 시작

by 꿈동아빠 구재학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가 내게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잔잔히 흐르는 피아노 선율 위로, 섬세하고 서정적인 목소리가 얹혔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마음을 파고드는 듯했고, 나는 곧 그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친구가 덧붙인 말은 충격이었다.
“근데, 이 노래 부른 가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오랜만에 접한 감동적인 노래가, 이미 고인이 된 가수의 유고작이었다는 사실.
그때부터 ‘사랑하기 때문에’는 내게 단순한 명곡이 아니라, 더 애절하고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유재하’라는 이름


1962년 여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유재하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가까웠다.

장난처럼 두드리던 피아노 건반은 그의 내면에 깊이 새겨졌고, 결국 한양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마음속엔 늘 다른 음악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교과서 속 화성과 대위법을 익히면서도, 강의실 밖에서는 대중가요의 세계가 손짓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조용히 건반 앞에 앉아, 자신이 흥얼거리던 멜로디를 악보에 옮기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 대중음악계는 여전히 트로트와 발라드, 그룹사운드가 주류였다. 그러나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젊은 뮤지션들이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며 변화를 만들어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유재하는 그 속에서 조용필의 무대에서 키보디스트로 연주했고, 김현식과 함께하며 무대 뒤에서 음악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남의 음악을 연주하는 데 머무를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자신만의 선율과 화성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언젠가는 그것을 세상에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결심한다.
“나만의 앨범을 만들어야겠다.”



단 한 장의 앨범, 긴 여운


1987년 8월, 마침내 그의 결심은 현실이 되었다.
첫 정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 앨범은 단순한 노래 모음이 아니었다. 사랑의 시작과 설레임, 망설임과 갈등, 그리고 이별과 좌절까지 — 한 남자의 감정 여정을 따라가듯 구성된 음악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훗날 이 앨범을 한 편의 서정적인 소설 같다고 불렀다.


작사와 작곡은 물론, 편곡과 연주까지 대부분 그가 직접 해냈다.
현악기를 과감히 배치하고, 클래식에서 배운 화성과 전조를 접목하는 등 당시 대중가요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실험을 시도했다. 피아노 선율은 단정했지만, 그 안에는 섬세한 떨림과 아련한 긴장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발매 당시의 반응은 차가웠다.
익숙한 문법에서 벗어난 편곡은 낯설게 다가왔고, 절제된 감정은 화려한 무대와 자극적인 히트곡에 익숙한 대중의 귀를 사로잡지 못했다. 음반 판매량도 기대에 못 미쳤고, 그의 이름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모든 것이 바뀌었다.
11월, 스물다섯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의 죽음은 짧은 생애를 마감했지만, 동시에 그가 남긴 음악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엔 낯설게만 들리던 노래들이, 그의 부재와 함께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앨범은 재평가되었고,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명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후 라디오와 TV에서, 추모 방송과 후배 가수들의 무대에서 ‘사랑하기 때문에’는 끊임없이 불려졌다. 단 한 장의 앨범이었지만, 그 앨범은 마치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담아낸 듯,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 음악의 출발점에는, 무엇보다도 단 한 사람을 향한 고백이 있었다.



한 사람을 향한 고백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음악으로 엮은 고백이었다.


단아한 외모를 지닌 그녀는 클래식 음악가를 여럿 배출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녀 자신도 음악을 전공하던 음악인이었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이었고, 세월이 흘러 대학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초라한 청년 유재하는 그녀와 뚜렷이 대비되는 존재였다.


그녀는 동창이자 음악을 함께하는 동료로서 그와 어울리기도 했지만, 그의 고백 앞에서는 선뜻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같이 집 앞을 찾아와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불러주었고, 가족들은 그런 그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진심은 결국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 년이 넘는 긴 구애 끝에,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녀는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랑이 막 시작되려던 순간, 유재하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랜 고민 끝에 이제 막 마음을 열어준 한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허탈함과 상실감을 견디지 못했고, 은둔생활을 하며 슬퍼하다가 결국 부모님의 권유로 먼 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내가 그 여인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직장생활을 하면서 뜻밖의 인연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직장 동료의 사촌언니가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 동료의 가족들에게 유재하라는 이름과 그의 노래는 아픔으로 남았고, 라디오에서 그의 이름과 노래가 흘러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명곡이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견딜 수 없는 아픔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의 앨범은 이렇게 한 여인을 향한 절절한 고백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모두의 사랑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단 한 사람을 향한 진심이었으나, 지금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과 그리움의 서사가 된 것이다.



오래 기억되는 이유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가수.
그러나 유재하의 이름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치밀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전곡을 직접 쓰고 연주하며 만들어낸 앨범은 마치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새겨진 일기장 같았다.


그의 노래에는 꾸밈없는 진정성이 배어 있었다.

단 한 사람을 향한 고백이었지만, 듣는 이는 누구나 자신의 지난 사랑을 겹쳐 보게 된다. 담담한 목소리와 솔직한 가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울림을 남겼다.


그의 시도는 시대를 앞서갔다.

클래식 화성과 현악 편곡, 대중가요에선 낯설었던 실험들이 뒤늦게 재조명되며, 한국 발라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음악은 후배들의 출발점이 되었다.

1989년 시작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김동률, 유희열, 조규찬 같은 뮤지션들을 세상에 소개했고, 그들은 각자의 무대에서 또 다른 유재하의 흔적을 이어갔다.


그래서일까. 라디오와 TV, 추모 무대와 리메이크 공연에서 그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귀 기울인다. 단 한 장의 앨범이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과 실험, 그리고 계승의 힘이 세월을 건너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짧은 생애는 끝났어도, 앨범 속 노래들은 여전히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해 주고 있었다.



노래로 남은 유재하, 불멸의 시작


그의 짧은 생애는 끝났지만, 앨범 속 노래들은 여전히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로 남아있다.
첫 곡에서 마지막 곡까지, 그것은 오롯이 한 여인을 향한 긴 고백이었다.


〈우리들의 사랑〉은 초등학교 동창에서 여인으로 다시 만난 순간의 설레임을 담고,

〈그대 내 품에〉는 함께 있고 싶다는 순수한 바람을 전한다.

〈텅빈 오늘밤〉과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는 불안과 외로움이,

〈가리워진 길〉에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방황이 묻어난다.

〈지난 날〉은 추억을 돌아보며 달래 보려 하지만,

〈우울한 편지〉에서는 끝내 전하지 못한 고백이 남는다.

마지막 곡 〈사랑하기 때문에〉는 사랑했기에 말하지 못했고, 사랑했기에 떠날 수밖에 없는 역설 같은 마음을 담았다.


그의 앨범은 설레임에서 시작해, 망설이고, 고백하고, 좌절로 이어지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였다.

그것은 단 한 여인을 향한 연서였지만, 듣는 이마다 자신의 기억 속 사랑과 겹쳐졌다.




유재하는 살아 있을 때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의 죽음 이후 이 앨범은 추모 속에서 재조명되며 세대를 넘어 울려 퍼졌다. 단 한 장의 앨범, 단 한 사람을 향한 고백이었지만, 그 노래들은 이제 모두의 것이 되었고, 불멸의 시작으로 남아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다음 회차에서는 록의 전설이자,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빛났던 뮤지션,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퀸(Queen)의 리더로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그의 삶과 음악, 그리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울려 퍼지는 노래들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 유재하 - 내마음에 비친 내모습 Live >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지막 라이브 무대


참고자료

나무위키 - 유재하

위키백과 –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네이버 지식백과 –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소울매트 블로그 –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전곡 가사

KBS 다큐멘터리 – 가수 유재하 30주기 특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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