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보영 Mar 15. 2024

흑역사에도 맥락이 있다

과거의 나 수용하기




항상 시작은 좋다. 의욕도 넘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일을 반복하게 되면 의욕이 현저히 꺾이다가 이 일을 매일 되풀이하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계획은 흐지부지 되고 내가 뭘 하려고 했었는지는 기억 너머로 사라져 버린다. 이를 테면 출판사 제안 없이 내 힘으로 장편 동화를 완성해 공모전에 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하자. (실제로 매년 하는 결심이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시놉시스를 쓰는 단계까지는 그렇게 신명 날 수가 없다. 내가 봐도 너무 재밌다며 남편에게도 자랑한다. 공모전에 떨어져도 투고하겠다 의지를 불태우며 불꽃처럼 1화를 쓴다. 창작이 이렇게 즐겁다니! 기분이 좋으니 나에게 휴식을 선물한다. 그러다 다른 이슈가 생기고 남편은 언제 2화를 쓸 것인지 묻는다. 그때부터는 훨씬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 써야지, 써야지 생각하다 아예 잊어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다시 눈을 반짝인다. 


지금까지 필명으로 작업한 것들까지 포함하여 열 권 정도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 중 내가 자발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원고 노동자로서의 나는 출판사에서 의뢰를 해야 책임감를 부스터로 장착하여 완주할 수 있었다. 등단에 큰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등단 15년 차인 창작자 개인으로서는 1화뿐인 미완성만 줄줄이 갖고 있으니 솔직히 무척이나 부끄럽다. 

이 질문을 평생 해온 것 같다. 똑같은 일을 반복할 때마다 불행을 느끼고 꼭 해야 할 일일수록 도망치고 싶어 하는 내가 제대로 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의욕이 팍 꺾이고 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는 소변을 참았다. 요의가 급해서 생각 없이 화장실로 달려갈 때도 많았지만 ‘지금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에 거부감을 느껴 그야말로 ‘터질 때까지’ 버텼다. 의무를 어기면 죄책감과 자유의 쾌감을 동시에 느낀다. 아무래도 내 안에 자유에 미쳐버린 자아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린이의 신분으로 부모님과 선생님의 규율에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게다가 나에겐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원하는 두 언니들까지 있었다. 하루 종일 ‘넌 이걸 해야 해’의 메시지에 억압 돼 억지로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고, 지적을 들을 때마다 수치를 느끼면서 타의를 배반할 틈을 노렸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타의에 대항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요의를 억누른 것이다. 소변이 마려우면 지금 더 놀고 싶어도 화장실에 가야 할 의무가 생기니까 그걸 무시하려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낸 것이다. (지금은 제때 잘 간다)


좀 더 커서는 거실에서 잠드는 버릇이 생겼다. 졸리면 씻고 옷 갈아입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서 누우면 되는데 그 의무에서 도망치려고 잠을 자지 않고 버텼다.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차갑고 딱딱한 거실 바닥에서 씻지도 않고 잠들곤 했다. 처음에는 언니가 깨워주기도 했으나 내 습관이 고쳐지지 않자 그냥 내버려 두었다. 춥고 불편하면 알아서 들어오겠지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히 춥고 불편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어긴다는 쾌감이 있었다. 글로 풀어 설명하고 나니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그때는 그랬다.




위의 이야기는 ‘충동’을 길게 설명한 것이다. 왜 충동을 느끼는가, 왜 충동을 억압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 본능적으로 틀을 거부하기 때문이고, 비정상적인 방식이라 해도 내 마음대로 하려는 몸부림이 곧 충동으로 나타난 셈이다. 예전에는 내가 왜 이렇게 의무를 힘들어하는지 잘 몰랐다. 나 자신을 그저 게으르고 만사 귀찮아하는 사람으로 여겼고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스스로를 몹시도 미워했다.


자주 혼나며 자란 아이는 의무와 규율을 다 깨 부시고픈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소심해서 도덕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윤리관이 보수적인 편이라 오히려 다행이었다. 게임에 큰 관심이 없지만 누가 권해서 한 번 시작하면 현실이고 뭐고 내던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몇 번 그랬다) 애초에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다. 알코올이나 카페인에도 체질적으로 약해서 중독될 일이 없었다. 



나의 충동은 나를 서서히 망가뜨리는 행동으로 나왔다. 청소년기에는 일부러 밤에 씻지 않고, 용변을 참고, 수면을 미루고, 차가운 거실 바닥에서 잠들고,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벼락치기 말고는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혼날 것이 빤한 일들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농담과 실언의 구분 없이 떠든다. 얌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스로를 쉬이 붙들 수가 없어 그냥 내버려 둔다. 이것 때문에 지적받고 혼나면 수치감을 느끼면서도 이런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도 의무감으로 작용하므로 계획을 세워놓고도 거기에서 도망친다. 학교와 사회에서 남들이 하라고 하는 걸 꾸역꾸역 해내느라 에너지를 다 써서 건전한 자의로 성실히 살아갈 힘이 없기도 했다. 혼자 바람직한 일들을 계획하고 시작할 수는 있어도 내 힘으로 그걸 꾸준히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모순적이게도 멀쩡한 인간이 되려면 의무감이 꼭 필요했다. 그것만이 내 등을 떠밀어 앞으로 가게 했다. 일평생 의무감에서 도망쳐 왔는데 그 의무감이 아니면 나는 스스로 열고 맺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의무와 규칙에 ‘거부할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며 그것을 이행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내 인생 최대 딜레마를 이제 증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쓰레기로 여겨온 과거의 나에게 미안할 정도로.


대학교 졸업인증제를 빤히 알면서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수료로 끝맺었던 내가 (나중에 제도가 바뀌며 자동 졸업 됐다)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하니 미래의 그 회사 사장님께 벌써 죄송했다. 게다가 매일 출퇴근하며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을 생각만으로도 불행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 일을 선택했다. 나한테는 그게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그쪽에도 무시무시한 세계가 있다는 걸 모르고.




나보다 먼저 사회로 나간 대학 선배들이 주로 일을 주었다. 두 달에 한 번 잡지 두 군데에 글을 보내고, 사보에 실릴 에세이를 쓰고, 출판사에서 기획을 받아 원고를 쓰기도 했다. 버스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수업도 했다. 교정 일도 들어왔다. 재출간되는 고전 소설이나 200쪽이 넘는 모 대기업 CEO 보고서를 교정한 적도 있다.

이렇게 나열하니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는 매번 불을 통과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한 번도 규모 있게 살아본 적 없어서 기한이 정해진 일,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일이 들어올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일을 해야 돈을 버니까 일단은 기쁘다. 그런데 너무 하기 싫다. 이러다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이번 일을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다. 그냥 하면 되는데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탓하고 맹렬히 비난하고 싶다.


‘밤에 양치질 안 하면 이가 썩으니까 반드시 해야 해’ 정도의 의무감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이 일을 해내지 않으면 상대 회사에게 피해를 주고 앞으로의 관계 또한 지속하지 못하게 되며 나를 소개해준 선배도 난처해지고 나는 돈을 못 받게 되고 이런 무책임함으로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며 소문이 나면 일이 끊길지도 모르니까 반드시 해야 해.’

이건 지금까지 겪어온 의무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강력한 타의가 등을 떠미는 거부감을 이겨내며 끝까지 마무리하는 일이 나에겐 지독하게 힘들었다. 양해를 구해 마감을 미루면 가만히 숨만 쉬어도, 밥을 먹어도, 누군가와 웃으며 대화를 나눠도 내내 불안했다. 숨 막히는 죄책감과 스스로에게 벌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대단한 걸 어기고 있다’는 아주 약간의 정신 나간 쾌감. 이런 것들이 심장을 방망이질하며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더는 물러설 수 없을 때 2000%의 집중력이 폭발한다. 그때 모든 걸 마무리한 뒤 전송하고 나면 마치 만화 속 로봇이 착 착 착 3단 변신해서 슈퍼 파워를 발사하는 것 같은 짜릿한 성취감이 든다. 그리고 뒤이어 밀물처럼 밀려드는 수치와 자괴감에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 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드백이 괜찮았고 작업은 어떻게든 계속 이어졌다. 머리를 쥐어뜯던 그 시간에도 성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대체 왜 이 모양일까. 수없이 묻던 부끄러운 날들을 이제 한 줄로 엮을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서 30대부터는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어 갔다(고 믿고 싶다). 







*갓 마흔이 된 지금은 의뢰 받은 원고를 제때 잘 씁니다. 오해 없으시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