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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Aug 21. 2024

제2의 직업 찾기

얼마 전, 일본의 평범한 직장인이 조기은퇴를 꿈꾸며 1억 엔을 모은 사연이 알려졌다. 밥과 국, 계란말이 반찬으로 된 식사를 SNS에 올리며, 절약과 저축을 통해 45세의 나이에 1억 엔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엔저 현상과 물가 때문에 조기퇴직은 물 건너갔다는 후회를 하며 통탄했다는 사연이다. 



안타깝기도 하고 '끌끌'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분은 제2의 직업을 잘 찾아낸 셈이다. 


그는 SNS에 꾸준히 자신의 검약한 생활을 올려 화제를 모았으며, 구독자들의 힘을 바탕으로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게다가 SNS사연으로 한국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렸으니 영리한 마케팅을 한 셈이다. 뒤이어 펼칠 다양한 강연, 저술, 사업 기회도 열려있는데, 덧붙여 우리 돈으로 9억 가까운 금융 자산도 있으니 제2의 직업을 찾기에 성공한, 꽤나 현명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그의 실패 같은 성공담에서 주목할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사례는 은퇴 자금에 대해 현실적 시각을 제공해 준다. 


90년대 미국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파이어족이 유행한 적이 있다. 파이어족의 관심사는 당연히 '얼마나 모으면 될까?'였다. 그럴듯한 계산법이 나오기도 했다. 즉 조기 은퇴자금 = 일 년 생활비 X 25년분이란 계산법이다. 1인 가구 일 년 생활비로 4,000만 원을 잡는다면 총 10억 정도가 필요하다. 책 제목이며 유튜브에 온통 10억이란 숫자가 유행한 건 그런 배경이 있다. 



23년 우리나라 가구 기준 10억 이상 순자산을 갖는 비율은 상위 10%에 해당한다. 줄을 세웠을 때 딱 중간인 중위값은 2억 3천만 원 정도이다. 1인 가구가 많으니 개인 기준으로도 살펴보면, 성인 1인당 중위값은 1.2억 원 수준이다. 10억 만들기가 녹록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찌어찌 열심히 모아 10억을 만들었다 치자. 이 금액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일단 10억을 투자해서 4-5%의 꾸준한 수익률을 올리고, 그렇게 얻은 연 4천만 원 정도의 수익을 생활비로 사용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이것도 어렵다. 4-5%의 꾸준한 수익창출도 어렵지만 인플레이션, 통화가치 하락이 더 큰 문제다. 미국을 따라 모든 나라가 돈을 찍어내는 상황에선 일본 직장인의 한탄처럼 충분한 은퇴자금은 몇 년만 지나도 가치가 반토막 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80년대 주택복권 1억이면 평생 살 수 있다던 믿음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까. 



이렇게 따지다 보면 100억 이상 자산가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의 선택은 뻔하다. 노후에 받는 연금도 수입이라며 매달 나가는 건강보험료까지 따지는 지경에 이르다 보면 더 그렇다. 


우린 늘 현직이어야 한다. 


다만 버티는 현직이 아니라 즐기는 현직이 되어야 한다. 즐기는 현직은 현재 직업 혹은 직장보다 내 취향과 적성에 잘 맞는 제2의 직업을 뜻한다. 지금의 직업이 만족스러운 사람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엔 누구나 제2의 직업으로 즐기는 현직이 되어야 한다. 


노트를 펼치고 당장 내년 연도부터 가장 이상적인 현직을 90세까지 써 본 적 있다. 나만 보면 되는 노트니까 누구 눈치 볼 필요도, 현실성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이런 직업을 갖고 살면 재밌을 것 같다란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 내려갔다. 쓰면서 몇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째,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았단 사실이었다. 마흔이 넘고 오십이 넘은 직장인은 쉽게 본인의 직업적 커리어가 이제 끝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평균 기대수명을 90세로만 놓고 적어봐도 겨우 중반부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된다. 혹 60이 된 사람이더라도 앞으로 매년 연도 옆에 채워나갈 제2의 직업, 즐기는 현직은 30개에 가깝다. 


둘째, 내가 진정 원하는, 즐기는 현직이 되어줄 제2의 직업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3-40개 가까이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직업인을 쓰다 보니 어떤 공통점이 보였다. 거기에 내 능력과 경험을 활용하여 도전할 수 있는 현실적 직업들을 추려낼 수 있었다. 그렇게 찾은 현실적인 제2의 직업을 손에 넣을 방법을 연도별로 재작성할 수 있었다. 


셋째,  제2의 직업은 현직일 때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누구나 막연히 퇴직하면 일단 쉬면서 찾아서 도전해야지 생각한다. 퇴직 후엔 건물주를 하면서 쉬엄쉬엄 돈 벌어야지 생각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퇴직 후 실패는 경제적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막상 퇴직하면 투자를 감히 실행할 수 없게 된다. 투자자가 되고 싶다면 현직일 때 작은 투자라도 시작하며 경험하고 준비해둬야 한다. 제2의 직업이 될 분야도 마찬가지다. 현직일 때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경험해 놓아야 한다. 



지긋지긋한 일을 그만두고 연금 생활자로 풍족하게 사는 인생이 최고다. 하지만 그렇게 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하기 마련이다. 정원을 가꾸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낚시처럼 말이다. 


즐기는 현직이란 죽을 때까지 일하자는 선언이라기보다는 돈이 최우선이었던 직업관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최우선 순위로 올려놓는 작업이다. 일에 대한 관점 옮기기 작업이다. 남은 삶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고 훈련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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