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가 성공하기 어려웠던 이유
이번 글은 2022년 12월에 출간된 영어논문[1]의 도입부를 재구성하였음을 밝혀드립니다.
첫 메타버스 용어 등장 후, 30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서는 너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2023년 가을 다소 한풀 꺾인 감은 있다.)
이 같은 과열된 메타버스의 밝은 면의 반대편에는 그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깊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자. 실체가 분명치 않은 메타버스에 무작정 편승하여 자칫 오도 가도 못하는 덫(Trap)에 빠질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글에서는 실질적인 메타버스 구현에 있어 창작의 본질과 기술적 고려를 간과한 채 과도한 기대감으로 현혹된 교착상태를 ‘메타버스 트랩’으로 명한다. 이 글은 ‘메타버스 트랩’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의 발로에서 비롯되었다.
2020년 하반기,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며 선언한 젠슨 황은 GPU기업 엔비디아의 대표이다. 젠슨 황은 자사의 주요 수익원인 GPU 판매를 위해서 '메타버스'는 고마운 키워드였을 것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선, VR, XR의 고퀄리티 그래픽 탑재한 메타버스의 구현에 자사의 그래픽 처리 칩셋이 필요하기에, 메타버스의 붐을 선도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사명을 ‘메타’로 바꾼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역시 자사의 위기를 돌파할 대체제로써 '메타버스'는 더없이 반가웠을 것이다. 메타는 2020년부터 '청소년 윤리' 이슈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수한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는 청소년들의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유럽과 미국의 이용자가 급감하고 있다.
이어지는 경영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키워드 '메타버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빅테크 기업들이 상당수다. 2022년 메타(페이스북)를 위시한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연쇄적으로 폭락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점을 보면, ‘메타버스 트랩’을 감지한 주식시황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메타버스의 선두기업을 자처한 메타는 100억 달러(10 Billion Dollars, 약 150조 원)를 투입하고도 비참한 실패를 겪고 있는 만큼, 새롭게 급부상한 버즈워드 ‘메타버스’의 절망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초기 메타버스 옹호론자들은 몰입형 HMD를 메타환경의 필수요소로 꼽기도 했다. 스노크래쉬 소설 원전에 따르면서, 오큘러스 퀘스트 2의 판매호조를 그 근거로 들어 2021년 말 ~ 2022년 상반기 중에 '메타버스 특이점'이 올 거라는 강한 믿음을 설파하기도 했다. 실제, VR HMD 및 XR글래스를 전면에 내세운 '가상환경' 옹호론자들은 디바이스를 맹신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위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디바이스 의존 메타버스 추종론은 아직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형국으로, 특이점이 언제 올지조차 미지수다.
XR글래스를 탑재한 메타버스에 대한 도전은 물론 언제든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선구자였던 매직리프(Magic Leap)는 수조 원의 투자금을 날리고 엄청난 적자의 수렁에 빠진 바 있다. 그 여파로 매직리프는 시장 전망이 불투명한 B2C 부문의 직원을 대량 해고하면서, 헬스케어, 제조, 교육 등 B2B로 대대적인 구조조정[18]에 들어갔다.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세상에 버즈워드로 급부상한 직접적인 주요 원인이었던 XR글래스 제작사들의 실패는 실로 재앙에 가까웠다. 해외에서는 이미 2021년 초부터 메타버스 사업에 빨간 불이 켜졌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2021년 봄부터 ‘메타버스’ 열풍이 몰아쳤다. 메타버스 열풍은 광기에 가까웠다. 몇 년간 정말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였다. 이러한 광기에 가까운 메타버스 열풍에 대해 엔비디아, 메탑(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홍보마케팅에 놀아나는 격이라는 비판적 분석은 외면당했다.
이제 메타버스는 국내외적으로 총제적인 늪에 빠진 상황이다. 이제라도 메타버스 트랩에 더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늪에 빠진 상황에서도, 이상한 나라의 메타버스 옹호론자들은 하드웨어의 성능과 VR/AR/3D 등 그래픽 시각화에 치중한 채, 가상세계 내의 콘텐츠 경험 디자인 즉, 플레이어 경험 디자인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물며 가상세계 구현을 위한 콘텐츠 창작에 필요한 연출이론과 제작 기술 과정은 간과한 채 ‘시각적인 결과물’에 대해서만 비평하는 등 메타버스 트랩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일반인들 역시 메타버스 트랩에 빠져들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외부 하드웨어의 연계(HMD, XR Glass 등) 및 VR chat 같은 앱에서의 '아바타' 변환을 갓 체험한 나머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설익은’ 메타버스 추종자들이 이들이 전면에 나서 여론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디지털 게임 환경에 조금이라도 노출되었던 게이머들에게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을 텐데, 가상세계 플레이에 갓 입문한 추종자들에게는 ‘신세계’ 일 것이다. 그 신세계의 외피는 메타버스 트랩을 더 강화시키고 있다.
일부 메타버스 열성 주창론자들은 어쩌면 ‘디지털 게임’이라는 ‘플레잉콘텐츠’를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의도적으로 터부시) 해왔던 이들일 수 있다. 이들은 '게임=공부의 방해물'의 등식을 강하게 신봉해 오던 이들일 수도 있으리라. 게임중독과 게임셧다운에 앞장서던 이들도 있으리라. 오큘러스 퀘스트 2를 착용해보지 않았다면 '메타버스'를 논하지 말라는 신봉자들도 있었다. 강권에 못 이겨, 연구자들도 구매해 봤으나, 2번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
메타버스의 트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구현 기술들은 등한히 한채 채, 이상한 나라의 일부 메타버스 전문가들의 맹목적 메타버스 추종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메타버스 트랩에서 빠져나올 경험연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07년에 메타버스 로드맵이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 재단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게이미피케이션 언급량이 늘어나던 시기와 겹친다. 바로 스마트폰 시장 개척기였다.
메타버스 로드맵은 미국을 비롯하여 한국의 디지털콘텐츠 연구자들 사이에서 ‘메타버스’ 연구를 촉발시켜 다수의 연구논문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이 메타버스 로드맵에서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연결”을 메타버스로 정의하였다.
보다 세부적으로, 메타버스는
1) 가상으로 강화된 물리적 현실과
2) 물리적으로 영구적인 가상공간의 융합이며,
3) 사용자는 둘 중 하나를 경
험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둘의 융합
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디지털 가상으로 향상’된 현실공간과 ‘물리적으로 지속가능’한 가상공간의 ‘컨버전스(융합)’를 메타버스로 정의되어 있다. 또한, 이 융합된 두 환경 또는 각각의 공간에서의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국내의 메타버스 옹호론자들은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은 간과한 채, 메타버스에 탑승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 떨며 선언적 미사여구로 버블을 키워가고 있다.
ASF의 메타버스 정의에서 언급된 사용자 경험 증진은 '게이미피케이션의 핵심 원리'이다.
게이미피케이션 연구에서는 ‘사용자’보다는 ‘플레이어’에 집중한다. 사용자에서 진화한 ‘플레이어’의 경험 즉, Player eXperience 은 게이미피케이션의 핵심 개념이다. 반갑게도 세계 최대의 이스포츠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 (LoL)의 제작사 라이엇게임즈의 사훈이 ‘Player Experience first ’ 이기도 하다.
이 플레이어 경험(PX)의 증진은 늪에 빠진 메타버스를 꺼내줄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논문 [1] 참조)
미국의 저명한 메타버스 연구자 존 라도프는 국내에서 메타버스 열풍이 한창이었던 2021년 여름 미디엄에서
‘메타버스는 진짜 게이미피케이션(Metaverse is a real gamification)’
라고 했다 [2]. 유카이 초우 역시 ‘메타버스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수많은 예시 중 하나다’라고 강조했다.
갈수록 메타버스가 게이미피케이션의 ‘일부’ 또는 ‘상당히 비슷’하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메타버스 지지자들은 게임 또는 게임화와 선을 긋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으로, 게임사들의 경영진들조차도 메타버스를 게임과는 다르다고 언급하기까지 하는 형국이다.
특히, 게임에 대한 규제가 심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국내에서 어떤 새로운 플레이 서비스 앱이 메타버스로 분류될 경우 합법이지만, 그와 거의 유사하더라도 ‘게임’ 카테고리에 속하는 순간 각종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타버스의 성공모델로 항상 언급되는 ‘로블록스’의 개발사는 회사명에까지 엄연히 “게임”이 들어간 ‘로블록스게임즈’이다. 가입자 수억 명을 자랑하고 있는 제페토의 경우에도 도처에 ‘게임요소’가 산재하며, 점차 게임콘텐츠의 양을 늘려가고 있으니 ‘게이미피케이션 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메타버스는 게이미피케이션과 불가분의 관계임에 틀림없다.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의 사용자 경험에 대한 열쇠는 게임화(Gamification) 원리로 해결가능하다.
지난 수년간 버즈워드 ‘메타버스’ 주변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었고, 앞으로 더 짙은 그늘이 짙어질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제라도 메타버스 트랩에 휩쓸리지 않도록. 메타버스 환상의 확산은 지양해야만 한다.
존 라도프의 말대로, '메타버스는 진짜 게이미피케이션'이며, 위카이 초우의 말대로 메타버스는 '게이미피케이션 현상의 하나'로 보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방향을 잃은 메타버스의 항로를 게이미피케이션에서 찾으면 된다.
[2] https://medium.com/building-the-metaverse/the-m etaverse-is-real-gamification-bc215fb4250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