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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Oct 01. 2023

가을은 소리로 다가오네요

소소한 행복 이야기

가을은 소리로 다가오네요


풀숲을 가득 채운 귀뚜라미 소리가 정겹습니다.


 지난밤 밤새 내린 가을비로 산향기는 더욱 진해 졌습니다. 낙엽은 나무 밑동으로 소복이 쌓여갑니다. 들녘은 노랗게 익어갑니다. 굶게 영근 낱알들은 바람결에 철썩철썩거립니다. 밤바다 파도소리 들리듯 조용한 리듬으로 정박자의 빠르기로 편안한 화음을 만들어 냅니다.


산책로 자갈길은 걷기에 참 좋습니다. 걷기에 알맞은 경사로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걷다 보면 사박사박 발자국소리를 듣게 됩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조그만 자갈들이 바스락 거립니다.  귀에 닿는 발자국소리는 산책을 의미 있게 만들어줍니다. 영혼을 맑게 해 줍니다.


산속으로 더 들어가다 보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저 산 위 어디쯤 에선가 만들어지겠지요 쉬지 않고 흐르는 계곡물은 가던 길을 멈춰 세웁니다. 때마침 휘르륵 나뭇가지들이 흔들립니다.

목덜미를 식혀주는 바람 한 줌 불어옵니다.

따가운 가을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계곡물소리 기분이 좋아지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행복은 복잡하지 않아요. 볕 좋은 날 운동화 싣고 가벼운 차림으로 가족과 같이 걸으면 조용히 행복은 찾아옵니다.


산책로 중간쯤에 밤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이때쯤 수리산 도토리나무와 밤나무는 진갈색의 열매를 땅 위로 떨어 뜨립니다. 툭 툭 낙엽 위로 떨어지는 도토리들 때문인지 청설모와 다람쥐들이 부쩍 바빠집니다.

등산객들도 청설모만큼이나 바빠집니다. 밤나무 주변은 이미 성개가시처럼 밤알만 쏙 빼간 빈 밤껍데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아이들과 밤을 따기 시작합니다. 적당한 작은 나무를 던져 밤송이를 떨어뜨립니다. 아빠 힘내라며 아이들은 합창을 합니다. 한 발로 부여잡고 나무 끝으로 밤가시를 밀어냅니다. 진하게 잘 익은 통통한 밤알들이 빼곡하게 들어있는 모습에 감동합니다. 아내는 방금 깐 연한 밤들을 손톱으로 꼅실을 벗겨내어 아이들에게 먹여 줍니다.

달고 맛있습니다. 가을이 만들어주는 선물입니다. 주머니 한가득 밤알들을 가득 채우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마치 다람쥐 두 볼에 도토리를 가득 물고 가듯이  우리는 가을밤을 까먹으며 걸어갑니다.


푸른 하늘 위로 까마귀 몇 마리가 울어댑니다. 아이들도 까마귀 소리에 답장을 보내듯 깍 깍 흉내를 냅니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아이들을 보며 방긋 웃어줍니다.


가을 속에 들어와 가을이 만들어 주는 소리를 듣다 보면 이내 행복해집니다.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준비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가을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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