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아버지- 숨겨진 표정
아내의 아버지 - 숨겨진 표정
장인어른을 처음 뵌 건 아내를 쫓아다닌 지 사 년이 넘어서였다. 어느 날 아내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 한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그렇겠지만 어떤 말들은 나를 비켜 스쳐 지나가고, 어떤 말들은 나의 귀에 정확히 꽂히는 말들이 있다. 그 말은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마치 대화 도중 잘못 뱉어진 말처럼, 순간에 툭 던져져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를"
"응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다고 하니까 데려 와 보라고 하셔"
난 짐짓 쿵쾅 거리는 심장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가슴을 움츠렸다. 째깍거리던 초침이 민트껌처럼 끈적하게 늘어나는 그 순간, 나는 침착하게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말만 꺼냈을 뿐인데도 난 그때부터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 분위기와 예법에 맞는 말들을 고르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비교적 계획적이지 않은 내가 이렇게 까지 사전 계획을 세운다는 건 이 일이 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난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날에 아내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이상한 일이지만 난 처음부터 아버님이 좋았다. 이게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사람들은 상대방이 느끼는 호의를 아주 사소한 눈빛이나 손짓 그리고 감정을 통해 알게 된다.
처음 인사 드리는 장인어른이, 무작정 좋았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도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난 아내의 아버지가 좋았다.
아내가 좋아서 아버님이 좋아졌을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아버님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그 첫인상은 지내 오면서 더 진하게 숙성되어 갔다. 마치 익을수록 맛있는 프랑스산 와인처럼,
그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도 아니었고, 또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말도 아니었다.
인사를 드리러 가던 날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무작정 고른 선물이 장모님께 드릴 빨간색 장미꽃 한 다발과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과일 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박달동 금호아파트로 향했다. 차려입고 갈 마땅한 옷도 없어서 일주일 전에 아내가 골라주는 옷으로 사 입었다. 그렇게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장인어른 집으로 찾아갔다.
아내는 인사드리러 가기 전에도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아내는 엄마보다는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고 했다. 아빠는 대화하는 걸 좋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에도 관심을 가져준다고 했다. 엄마는 말수가 별로 없지만 생활력이 강하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와 성격이 너무 다르다 보니 주로 집안 대소사는 아빠가 결정한다고 했다. 엄마에게 다정다감하지 않는 아빠가 가끔 싫어질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와이프한테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남편이 좋다고 했다. 아빠는 자식들의 인생진로를 결정할 때 꼼꼼하고 세심하게 간섭을 한다고 했다. 그런 아빠가 좋을 때도 있었고 싫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아내는 주로 아빠 이야기를 많이 했고 자기 성격은 아빠와 똑같아서 어떨 땐 자주 부딪친다고 했다. 며칠씩 말도 안 하고 눈길도 피하고 늦게 들어가면 어느 날 아빠가 먼저 말을 건다고 했다. 아빠엄마는 농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농장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렸다. 아빠엄마가 농사짓는 게 학생 때는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했다.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난 우리 부모님도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언제부터 인가 아내는 조금씩 서로의 닮은 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조금씩 눈빛이 따뜻해져 갔다. 아마도 사 년의 시간이 짧지만은 않은 듯했다.
지금도 그렇치만 아내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다. 그때까지 나에게 아빠라는 호칭은 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난 그 아빠라는 말이 신선하게 들리기도 했고 또 그 아빠라는 단어에서 어느 정도 선입관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아버지와는 상당히 다른 어감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빠가 친숙함으로 들렸다면, 아버지는 엄숙함으로 들렸다. 왠지 같은 잘못을 해도 아빠는 웃으며 용서해 줄 것 같았고, 아버지는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혼날 것만 같았다.
아내는 지금도 장인어른을 아빠라고 부른다.
이제 장인어른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혈기왕성한 젊은 아빠였던 장인어른은 어쩌면 마지막 일 수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아내를 따라 장인어른을 뵈러 갔다. 다행히 시술한 담즙배액관이 황달수치를 내려 주었다. 염증수치도 낮아져서 항암을 다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장인어른의 황달 검사결과가 기준치가 넘는다고 했을 때, 그래서 항암을 받을 수 없다고 했을 때, 아내는 두려웠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항암치료 밖에 없는데 그것마저 못한다고 할까 봐 무섭고 두려웠다.
담당의사를 보고 온 큰 처남댁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서야 아내는 웃을 수 있었다.
이제 혼자 힘으로 걸을 수도 없는 백발이 성성한 장인어른을 휠체어에 태워 일층 이비인후과로 내려갔다. 영양제와 항암제와 진통제가 동시에 혈관으로 연결되어 한 방울씩 들어가고 있었다.
난 휠체어를 밀면서 그 뒷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눈가가 붉어졌다. 오래전 처음 인사드렸을 때 젊었던 아내의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오래 봐온 사람들에게서 알 수 있는 표정들이 있다. 그런 표정들은 짐짓 숨겨놓은 보물 같아서 이야기할 때나 웃을 때나 자기도 모르고 배어 나오는 표정들을 볼 때면 난 한 없이 행복해진다. 그런 숨겨진 표정들은 보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준다. 그날도 장인어른은 손을 잡는 사위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눈꺼풀이 우산모양으로 먼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얼굴에 붙인 밴드를 보며 이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작은 것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 아파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 건 쉽사리 변하지 않는 그 사람의 성품이다. 유머감각은 장인어른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 참 아름다운 표정이구나"
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그 표정이 너무 좋아 오랫동안 기억 속에 숨겨 두고 싶었다.
장인어른은 몸이 아프신데도 나름의 단정함을 잃지 않았다. 딸이 오기 전 이미 덥수룩한 수염이 보여주기 싫었던지 깔끔하게 면도를 하였다. 아내는 아빠의 얼굴이 보기 좋다며 안아주었다. 아내의 손길이 턱수염이 있던 자리를 만져주었다.
장모님이 지난주 처음 병원에 왔었던 이야기를 장인어른과 이야기했다.
아버님 집에서 십분 거리인 광명중앙대 병원은 개원한 지 이년도 안된 대학병원이라 깨끗하고 널찍했다. 장모님은 병원을 들러보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두 분은 병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손을 잡았다. 이미 병실을 들어오기 전부터 장모님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혼자 누워 있는 병실로 들어서기가 무섭고 두려웠다. 더 살이 빠졌을까 더 심각해지지는 않았을까 밀려드는 걱정에 목서리가 떨려왔다. 아내는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라며 커튼을 쳐주었다.
"오랜만에 손 잡으니 당신 손이 따뜻해졌네"
장모님은 장인어른의 손을 잡고 놓을 수가 없었다. 수척하게 말라가는 남편의 모습이 안쓰러워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눈물이 방울져 흐르지 않을까 장모님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랑해요. "
장모님은 병상에 누워있는 장인어른을 안아주며 사랑한다 속삭였다.
"아프니 호강이네. 자식들도 사랑한다 말해주고 처음으로 당신한테 사랑한단 말을 받으니 "
장인어른의 눈꺼풀이 슬며시 아무도 모르게 우산모양으로 웃고 있었다.
입보다 먼저 웃고 있는 눈꺼풀이 아름답게 보였다.
빙그레 미소 짓는 장인어른의 얼굴에 항암의 통증은 숨겨져 있었다.
장인어른의 눈동자는 허공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