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안 드는 집에서 식물을 키운다는 건
역마살이 낀 인생 초반에는 감히 식물을 키울 생각을 못했다.
지금, 엄마는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어서 고추도 키우고 오이도 키운다. 아기자기한 화분에 담긴 귀여운 다육식물들이 한 테이블 가득 놓여있다. 젊었던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가난은 햇빛도 귀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린 시절 내내 빛이 잘 들지 않는 집들을 전전했고, 그래서 집 안에는 식물이 별로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항상 식물에 진심이었다. 셋방살이로 반지하에 살 때도 현관 앞 담장 위에 몇몇 화분이 놓여있었다. 보랏빛 잎사귀의 작은 사랑초를 사 와서, "이게 사랑초야. 잎이 하트 모양처럼 생겼지?"라고 내게 알려주던 엄마의 밝은 얼굴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가게를 하기 시작하면서 집안 살림이 조금씩 나아졌고, 우리는 드디어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엄마가 가게 일로 너무 바빠, 집에 식물을 들여 돌볼 여유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집의 기억이 흐릿하다. 잠만 자러 집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미국을 오가며 살게 되었다. 미국에서 나는 가난한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또 빛이 잘 들지 않는 싼 아파트들을 전전하며 살았다. 한국에서는 단칸방에서 자취를 했다.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리의 첫 집을 살 때, 집을 고르는 기준은 예산과 학군이 일 순위였다. 빛이 잘 들어오는 집을 골라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특히 이 점을 강조하셨고, 나도 빛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집을 구입할 때, 나는 쉽게 이 부분을 놓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심으로 빛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빛이 없는 삶이 익숙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첫 집은 빛이 잘 들지 않는 랜치하우스가 되었다.
이사 후 첫 2년은 어린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말로만 정원을 가꾸고 식물들을 키울 거라고 떠들어댔다. 그런 며느리가 안쓰러우셨는지, 일 년에 두세 번씩 놀러 오시던 시부모님이 정원에 꽃을 심어주고, 텃밭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 날뛰었다.
일상에 여유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식물들에게 관심이 갔다. 정원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하고, 실내 식물을 하나 둘 들였다. 정원은 손댈 엄두가 나지 않았고, 하나 둘 들인 식물들이 죽어나갔다. 대부분 물을 너무 많이 주거나 빛을 받지 못해서였다. 서서히 식물에 대한 갈망이 깊어졌다. 그러면서 빛에 갈증이 났다. 나무들의 잎이 무성해져 빛을 가리는 여름보다 낮은 햇살이 창문 틈새로 들어와 반짝이는 겨울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 죽이기 어렵다는 산세베리아까지 죽이고 나서,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진정한 식집사가 되겠다! 꽃을 피우지 못하고 힘겹게 초록 잎사귀들을 계속 키워내는 스파티필룸을 의지로 살려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놀러 오신 시아버지가 문득, 나무를 사러 가자고 하셨다. "쟤(스파티필룸)를 저렇게 키워내고 있는 걸 보면 얘(나)는 진짜 식물을 키우고 싶은 거야. 그럼 사야지. 더 사야지." 아무도 보지 못했던 나의 결핍을 한눈에 알아보고 가든 센터로 나를 이끄는 아버님의 마음이 뭉클했다. 그날 우리는 고무 떡갈나무와 작은 피토니아를 사가져 왔다.
어머님은 우리 집에 빛이 안 들고 바람도 안 통해서 아마도 곧 죽을 거라고 하셨다. 그래도 마음 쓰지 말고 다음에는 여름에 어울리는 (그러니까 어머니는 고무 떡갈나무를 6개월 시한부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나무를 골라서 사 오자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두 달이 지나고 나니 잎사귀들이 마르기 시작했다. 초보 실수로 또 물을 너무 많이 준 데다, 빛을 받지 못해서였다. 오기가 생겼다. 코스트코에서 돈나무와 네안테 벨라 야자를 사 왔다. 이 나무들도 빛이 중요한데, 열정이 앞서 일단 사놓고 본 것이다.
고무 떡갈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고, 네안테 벨라 야자는 잎이 쳐지면서 색이 바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식물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초보이니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식물앱 Planta를 구독했다. 내 식물들을 모두 등록하고, 사진을 찍어 진단을 받았다. 역시 빛을 못 받고 물을 너무 많이 준 것이 원인이다.
Light Meter를 이용해 빛을 측량해서 식물들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주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집이라 크게 영향은 없었지만.
스케줄에 맞춰 알람이 와 훨씬 수월하게 식물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기분 탓인지 식물들도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빛을 받지 못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앱의 조언에 맞춰 글로우 라이트를 구입했다. 제발 제발 죽지 말고 살았으면.
앞으로는 우리 집 환경에 맞는 식물들을 구입할 예정이다. 앱은 벌써 몇 개의 식물들을 추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