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으려면...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상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받기도 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받기도 한다.
결국은 한 사람의 연약한 부분이 상처가 되어 마음에 남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것을 어쩌면, 평생 동안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믿고, 신뢰한다.'는 감정이 처음 무너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즈음에 처음으로
'정확히' 인지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의 기억을 회상해 보면...
그 당시에도 반에서는 여전히 무리 지어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고, 나는 그 무리에 은근슬쩍 묻혀서 함께 지내는 아이중 한 명이었다. 깊이 마음을 주는 관계의 친구들이라는 느낌보다는 외로움 대신 함께 속하는 것을 택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몸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지만 깊은 속마음을 터놓고 '통한다!'라는 느낌을 주고받는 친구는 없었다. 그저, 무리에 속한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친구'라는 개념은 확실했다.
이 무리의 친구들은 모두 '나랑 같은 반 친구. 나와 함께 다니는 친구'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생각에 대해서도 무너지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험담을 우연히 듣게 된 때부터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화장실에 문이 달려있지 않았다. 남녀 화장실 모두. 화장실 안에는 칸막이며, 화장실이 있었지만 안과 밖을 구분 짓는 문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화장실을 지나가다가 무리 중에 주도하는 친구들 몇몇이 화장실 안에서 거울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문이 없었던 터라 지나가는 잠깐에도 그들의 목소리는 복도에 들렸기에. 대화를 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나, 누가 들은들 상관없다는 마음이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거다.
어쨌든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무리에서 같이 어울리는 다른 친구 OO 이에 대한 욕이었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아이들이 나눈 말은 친구 OO 이에 대한 험담였다.
내가 놀란 것은 험담 그 자체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친구 OO 이와 죽고 못 살 것 같은 친구들처럼 웃고 대화를 나누던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그들끼리 모여, 친구 OO 이에 대해 신랄한 뒷 이야기를 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내 이야기가 아님에도 아이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본 것이 내게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나는 어린아이였기에 "어,,, 어떻게 친하게 지내는 친구 욕을 저렇게 할 수 있지? 조금 전까지 분명히 잘 어울려 놀았는데. OO이가 알면 엄청 속상할 텐데..." 등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그리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무서운 존재인 것 같아. 차라리, 혼자인 것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아.'라고.
그리고, 이후 학창 시절의 몇 번의 크고 작은 경험으로 인해 이 생각은 점점 더 굳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바뀌었다.
"사람은 결국 혼자서 잘 살 수 없는 존재야. 지지고 볶든 결국은 함께할 때 행복한 거야."라고.
나이가 든다는 것 중에서 좋은 것은
경험과 생각이 쌓이면서,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나는 평생 좋은 쪽으로 바뀌며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