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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Jun 06. 2022

 s.라는 문장

여행 산문. 여행 에세이

"수첩  면에 s라고 쓰고  하나를 찍어 두었다문득 s라는 알파벳이 그때부터 무척 근사하게 보였던 것이다."




s.

그날 나는 알파벳 s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분무기로 물을 뿌리듯 안개비가 내리는 오후였다. 나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아무런 목적 없이 걷고 있었다. 언덕을 돌다가 아베스 역으로 내려가는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을 때 골목 끝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번 지나다닌 골목이기 때문에 나는 저 모퉁이에 피아노 바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구석에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있는 그 바는 파리의 음악가들이 와서 파트타임으로 연주를 하는 곳 같았다. 대부분은 무명 연주자일 것 같았지만 나는 가끔은 손님으로 온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즉석에서 연주하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 피아노의 건반을 이제까지 몇 명이 만졌고 그중에는 어떤 이름들이 있을까.


우산이 없었던 나는 어느새 재킷이 꽤 젖어버렸지만 바 앞의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며 흘러나오는 연주를 들었다. 몽마르트르는 대표적인 관광 스폿이기 때문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에서는 대부분 파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뻔한 재즈를 틀어놓거나 라이브 연주하는 사람들도 특별한 에너지 없이 늘 같은 레퍼토리를 같은 스타일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날의 연주는 달랐다. 누군가 '아이 러브스 유, 포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건반 터치가 남다르게 들렸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가 분명히 있는 연주자의 연주를 듣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나는 그 곡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그리고 난 s를 생각했다. 곡을 쓴 사람은 왜 'I loves you, Porgy'의 love에 s를 붙인 걸까. 분명히 문법이 틀리는데도 loves라고 표현한 사실이 나는 마치 예술가가 숨겨 놓은 대단한 이유 같아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s라는 그 알파벳 하나가 정말 많은 뉘앙스를 전달해준다고 느꼈다. 소리 내서 읽으면 love와 loves는 발음부터 다르다. 사람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섬세해서 그 "스"라는 발음 하나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특별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마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다른 모든 사랑과는 다른 유일한 의미이기 때문에 그렇게 발음한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스..." 하며 입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발음이 당신을 잡고 싶어 하는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은 나의 상상일 뿐 제목을 지은 사람 외에는 그 s를 왜 붙였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제목을 지은 사람조차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사용하던 단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쓴 것일 수도 있다.


오페라 '포기와 베스'는 조지 거슈윈이 작곡하고 아이라 거슈윈과 듀보스 헤이워드가 작사에 참여했다. 원작은 헤이워드의 소설로 등장인물이 거의 빈민가의 흑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이워드는 이러한 등장인물들이 사용했을 말버릇을 재현하기 위해 'loves'라고 표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유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I loves you, Porgy'라는 문장에는 loves라는 단어 말고도 다른 논란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이 짧은 문장 안에 논란이 되는 부분이 두 개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또 하나의 논란은 바로 쉼표다. loves 다음에 쉼표를 넣는지 안 넣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주장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쉼표를 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보통의 대중이라면 대부분 제목을 보고 "포기, 당신을 사랑해요." 정도로 해석할 것이다. s가 왜 붙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고, 쉼표가 빠지면 다른 의미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때나 읽을 때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행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쉼표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게 최선의 선택일지, 읽었을 때 리듬감은 어떤지 등 나도 모르게 항상 신경 쓰는 부분이 많다. 서사를 중요시하는 사람 중에는 스토리 외에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어나 문장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나의 관점에서는 완성된 집의 모양만 중요하고 그 집을 무엇으로 어떻게 지었는지 자재와 공법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소설도 문장이 미문인 소설을 좋아한다. 아주 긴 시 한 편을 읽은 것 같은 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에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걸 느낀다.


그날 몽마르트르에서 시작한 s라는 알파벳에 대한 내 생각은 늦은 밤 잠들 때까지 계속됐다. 나는 그렇게 미세하고 섬세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벌레를 찾는 것보다 벌레의 발자국에서 커다란 이야기를 발견하는 걸 즐기는 것이다. 하루 종일 키스 자렛, 빌 에반스, 니나 시몬,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버전으로 'I loves you, Porgy'를 들었다. 분명히 같은 곡이지만 누가 불렀는지 누가 어떤 악기로 연주했는지에 따라서 다른 감동을 느낀다.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다른 글자를 모두 지우고 s만 남기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내가 s.라는 알파벳 하나만 쓴 편지를 보낸다면 당신은 그 편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편지지를 잘 못 넣어 보낸 걸로 생각할까, 아니면 s라는 알파벳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골똘히 생각할까. 작가가 문장에 가끔 말줄임표를 사용하는 건 그만큼 독자가 작가처럼 그 부분을 상상해주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고 결과를 모르는 모호함을 제공해서 독자가 그 여백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s라는 알파벳 하나만 쓴 문장은 더 많은 여백을 품고 있으니 독자는 더 많은 상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상상이 쓰지 않은 내가 하려던 말과 같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엉뚱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글을 읽는 당신과 s를 보낸 나 사이에 흐르는 뉘앙스는 아름답지 않을까.


나는 최근 하나의 짧은 단편을 써서 잡지에 게재한 적이 있다. 본문 중에는 남자 주인공이 창문 넘어 있는 여자 주인공을 보며 속으로 하는 혼잣말과 그 여자 주인공이 전화로 다른 대상과 통화하는 말이 마치 주인공끼리의 대화처럼 이어지는 장면이 있다. 난 그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의 말은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므로 작은따옴표를 사용했고, 여자 주인공의 말은 통화를 하는 것이므로 큰 따옴표를 사용했다. 그리고 편집자에게 송고하면서 그 부분이 잘 표현되기를 속으로 바랬다. 시간이 지나 출간된 책을 보니 내가 쓴 대로 정확하게 따옴표가 구분되어 있었다. 나는 섬세한 부분을 알아보고 제대로 편집해 준 편집자에게 감사했다. 편집자는 어쩌면 이런 건 그다지 감동할 일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편집자라면 당연히 따옴표 정도는 구분해서 편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내 의도대로 인쇄된 글을 보면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따옴표의 구분이 그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잡지가 나오자마자 그 부분을 먼저 찾아보고 제대로 인쇄된 걸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편집자에게 그에 대해서 따로 감사 인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나의 감사하는 마음을 받아주기 바란다.  


다시 s.

알파벳 s 다음날 아침까지도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계속 "아이 러브스 , 포기."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수첩  면에 s라고 쓰고  하나를 찍어 두었다. 문득 s라는 알파벳이 그때부터 무척 근사하게 보였던 것이다.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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