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지거다.
아희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고나.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허리요.
젊음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나이듦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노래한
조선 중기 문인 선우협의 시조다.
아이들과 시조 수업을 하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무수히 많은
꽃잎들이 때마침 지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잡담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지만
아이들에게 한 마디 하고 말았다.
시조와는 다르다고
나이듦은 예쁘지 않다고
열여덟의 젊은 너희들이 예쁘다고.
평소엔 무섭기만 한 선생이
이상한 소릴 한다고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자 다시 수업!"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거 봐, 예쁘지. 그 웃음도
웃을 때 탱탱해지는
복숭아꽃 같은 볼도
반달이 되는 그 눈도,
어떤 꽃으로 필 지 아직 모르는
그 불안마저, 다 예쁘다.
어릴 때도 늘 계절보다 마음이 앞서갔다.
그 버릇이 여직 남아 있는 건가?
이제는 나이를 앞서가서 먹고
늙은이 흉내를 낸다.
거울을 보며 괜히 실룩 웃어 본다.
너도 젊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