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호태누각을 찾는 이는 변함없이 많았고, 일꾼들은 늘 변함없이 그들을 친절히 대했다. 항상 변함없이 벽란도에서 가장 높이 불을 밝히는 호태누각은 벽란도에서 가장 유명한 원이 되었다. 하물며 원나라에서 오는 사신조차도 이곳에 머물고자 사람을 먼저 보내곤 하였다. 벽란원과 벽란정이 있어서 머물지는 못했으나, 사신의 일정이 끝나고 개인의 자격으로 이곳 누각에서 하루라도 묵어가는 이들이 많았다.
잠시 개경에 가서 공씨 어르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여럿원들의 호객꾼들과 인사를 나누며 누각으로 오는 길은 늘 한결같고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 기분 나쁜 느낌은 뭘까? 뭔가 불길한 기운이 나의 주변을 감싸 오는 것 같았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손이 뗠려오기도 한다. 입구에 다다르자 늘 있어야 하는 경비 담당인 중기의 동생들이 보이 지를 않는다. 소란스러운 안내실 쪽으로 가보자 나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중기와 그의 동생들은 모두 피투성이가 된 채 엎어져있었고, 희선과 아가씨는 무릎 꿇린 채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나머지 일꾼들마저 모두 무릎 꿇고 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울고 있었다. 누각의 손님들은 전쟁이라도 난 듯이 서둘러 짐을 싸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중기와 희선 아가씨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오?”
“오호라. 네놈이 이곳의 객주인가?”
“그렇소이다.”
나는 당당하게 그에게 맞서 답했다.
“어서 예를 표하지 못할까 이분은 이 나라의 태자이시다.”
시종인 듯한 이가 소리쳤다.
“태자인지 내가 확인할 길도 없을뿐더러 설사 태자라 하더라도 사람을 이리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오.!”
짝!!
나의 뺨을 때리며 태자는 말했다.
“아하 이놈들이 왜 이리 규칙 규칙 하면서 대드는지 했더니만 네놈 때문이었구나. 감히 태자가 이곳에서 묵겠다는데 네깟놈들이 나를 막으려 하느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겐가?”
나는 그 말에 아가씨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목숨은 아깝소! 하지만 나의 목숨은 아니오! 나의 목숨을 취하더라도 이 사람들은 놓아주시오!”
“하하하하. 건방지구나. 내가 파리 같은 너희들의 목숨을 거두는데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태자에게 맞선자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겠다.!!”
태자는 칼을 꺼내어 중기의 동생 중 한 명의 목을 베었다.
모두들 놀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그저 울고만 있었다. 중기가 이미 결심을 했는지 일어서 태자에게 다가가며 말을 꺼냈다.
“태자라 하면 이 나라의 왕이 되실 분이오! 어찌 백성들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단 말이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왕... “
태자는 중기의 가슴에 칼을 꼽으며 말했다.
“왕이 있다고? 하하하하하. 너희들은 왕을 위해 있는 거야. 어디서 감히 왕을 입에 담느냐? 이놈들을 모두 포박해서 관청으로 끌고 가라!! 내가 친히 이들의 죄를 물을 것이다. “
나는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중기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끌려가는 내내
나와 모든 이들은 관청의 옥에 가둬졌다. 며칠 동안 누각은 태자의 개인 기방이 되었다고 한다. 기녀들을 불러 모아 그곳에서 음탕한 짓을 벌이며 예전 호태누각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더 이상 손님을 받지는 않았다.
곽동원만이 뛰어난 음식 솜씨로 인해서 화를 면하였지만 태자에게 잡혀 그들의 술안주나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우리는 모두 풀려났다.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씨 어르신이었다.
“괜찮으냐?”
“아버님”
“어르신”
“태자가 너희를 이곳에 가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분이 사람을 보내어 알려주더구나 “
민주 누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어찌하여 저희가..”
“너희의 소식을 듣고 벼슬을 떠나신 승선 나으리께 방도를 물었다. 태자가 재물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니, 재물이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버님...”
“내 이쯤 살았으면 더 이상 재물이 필요가 없다. 젊은 너희들을 살리는 일에 쓰게 돼서 오히려 기쁘다.”
“어르신..,”
“내가 이 세상에 나와 이만큼 해온 일이 있고, 너를 도와 저 누각을 만들었다. 나의 재산은 더 이상 나만의 재산이라 생각했던 적은 없다. 재산은 잃어도 상관없지만 너희들의 목숨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겠느냐? 어서 누각으로 가서 손님을 모실 준비를 하거라.”
“어르신께서도 함께 가시지요.”
“아니다. 나는 개경으로 가서 할 일이 있으니 너희들 일이나 신경쓰도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