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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Nov 28. 2022

무지개 같은 인생, 삶에 무디개가 필요한 날

'무지개'의 의미

'그렇지 않아도 월요일인데....'

작스러운 비에 축축해져 버린 기분을 달래려고 좀처럼 손대지 않던 교실 책상 옆 블라인드를 죽죽 올렸다.


투두둑 빗 빗방울은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을 툭툭 찔러댔는지 까르르 까르르 소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어! 저게 뭐야? 무지개잖아!!!'

여전히 투두둑 소리를 내고 있는 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활짝 핀 무지개는 여러 가지 소리로 월요병에 걸린 인간들을 향해 아주 잠시 노래하는듯했다.


1교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어둑어둑 구름이 가득했다. '같은 하늘 위에 떴지만 무지개의 무자도 보지 못했겠지?'라고 생각하며, '수행평가' 알림 페이지는 살짝 뒤로 미루고 무지개 사진을 보여주었다.


"와아.....! 학교예요? 무지개라고요?"

먹구름 가득했던 아이들 얼굴에 잠시 햇살 같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물론 '수행평가' 이야기에 이내 찌뿌둥, 우르르 쾅쾅 기분이 되었지만 뽀송뽀송한 음악을 틀어주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현대사 관련 수업 활동을 해나갔다.

그러다 문득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무지개란?'


"'빗방울 반대쪽에서 오는 햇빛이 굴절․ 분광, 반사되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입니다."라는 대답에 문과 아이들은 핵노잼이라며 반격을 했고, 어마어마한 공격으로 응수했다.

"무지개는 비의 슬픔과 해의 기쁨이 아닐까요?"

아이들은 으아아아~ 소리와 함께 닭살을 털어댔다.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

-LGBTQ


당연히 나와야 할 '정답'들도 속출했고, 의무감에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온갖 무지개들로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잠시 스쳐 지나가던 미소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험 결과에 스러져갔다. 문과적 감성이 풍부한 자신이만 '무지개'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한 순간의 아름다움


물과 빛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예술 작품인 무지개는 아이들 표현대로 '한순간의 아름다움'이기에 늘 설렌다. 찰나에 지나가버리는 청춘 같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같기도 하다. 저 하늘과 지상 사이의 경계선에 무심히 걸쳐진 상태로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인생 같기도 하다.


-인생 무지 개 같다.


띄어쓰기 하나로 달라져버리는 이놈의 인생사 같기도 한 무지개 정의에 아이들은 격하게 공감하며, 나이 들어서 힘들다는 망발을 해댔고, 부러 '아이고아이고'까지 하며 희끗희끗 자글자글한 선생님 눈치를 봤다.





아직은 너무도 예쁘고 순수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올림포스 산의 이리스 여신은 이슬방울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무지개를 밟고 사람의 세계로 내려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대. 아마도 오늘은 너희들에게 힘내라고, 애쓰며 산다는 거 다 안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왔다 간 것 같아."


아이들은 더 이상 항마력이 딸려서 들어줄 수 없다며, 살려달라면서도 씩 하고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무지개는 아이유의 밤편지 감성'이라고 말한 친구 덕에 노래를 들으며 인사를 나눴다.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아마도 무지 개 같다'의 여파 때문인지 자꾸만 마음이 쓰여서 아이들을 보내고, 자연스레 '무지개'를 검색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디개'라고 입력해버렸고, 오타 탓에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무디개 :

 날이나 손잡이 부분 따위를 무디게 하기 위하여 쓰던 연장으로 자갈돌을 많이 씀 (V.무디다)



 무지개 하나로 말랑말랑해질 수 있는 우리는 왜 이다지도 날을 세우며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마다 '개'를 소환해야 할 정도로 격해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제주도 몽돌 해변에 가면 둥글둥글 자갈이 많은데 거기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날이 잔뜩 서서는 마음이 요만해져 버린 나 자신부터 무디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면 아주 잠시라도 무지개가 반짝 또 떠 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오늘의 행시 소회]


 : 무디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 지난 시간들에서 자꾸 허무가 떨어짐에도

 : 개의치 않고 피어오르는 무지개는 삶의 '무디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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