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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차에 휘발유를 넣은 날...

수리비 이상의 값진 기억_

by 눈꽃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어본 적 있으세요?

아니면 휘발유차에 경유를 넣어본 적 있으세요?



몇 년 전 연말을 앞둔 주말.

친정엄마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특별한 일 없으면 오늘 잠깐 집으로 들를게."

난 친정엄마가 들른다는 이유를 전화 발신번호가 엄마라고 뜰 때 직감적으로 이미 알았다. 손주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이구나.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저 보고 싶으신 거다. 친정엄마는 용인, 나는 동탄.

멀다면 멀지만 그래도 다행히 고속도로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살 때다.



친정엄마의 방문과 동시에 양손에 들려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아이들은 연신 신났다. 우리도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주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하고 친정엄마는 시간이 늦어서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남편과 함께 친정엄마 배웅 차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차에 타서 시동 건 엄마에게 조심히 가시라며 손을 흔드는데...



"웽~~~"

"툭!"

"윙~~~~"

"툭!"



걸리던 시동은 멈춰버리고 이내 다시 작동되지 않았다. 분명히 오실 땐 잘 왔는데 아무래도 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남편은 차에 배터리가 나갔나 보라며 얼른 본인 차키를 다시 가지고 내려와 점프선을 연결시켰다.

작동되지 않았다. 남편은 친정엄마에게 혹시 오실 때 주유를 했는지를 물었다. 셀프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고 오긴 했는데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남편은 조용히 차를 열어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주유 영수증 (주유종 : 휘발유)



친정엄마 차는 경유차인데 셀프주유소에서 순간의 실수로 휘발유를 넣고 고속도로를 달려온 것이었다.



"어머니, 경유차에 휘발유 주유했어요. 이 차 오늘 못 끌고 갈 거 같아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수리센터에 빨리 전화해볼게요."



너무 미안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는 표정으로 서있는 나. 우리 둘은 그저 어딘가에 전화하고 있는 남편만 바라보고 서있었다. 남편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며 자리를 비웠다. 잠시 뒤, 남편은 서있는 우리 둘을 위해 추운데 이거 드시라며 이 와중에 어디선가에서 군고구마까지 들고 왔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이 상황을 너무나 온화한 얼굴로 차분히 바라보았다. 그저 며칠 고치면 되는 거라고. 고치면 괜찮은 거라고 했다.



"여보~ 먼저 집에 가있어. 내가 어머님 모셔다 드리고 올게!"

"어머니~다행히 차 수리비는 많이 나올 거 같진 않아요. 제가 알아서 맡기고 수리되는 대로 가져다 드릴게요."



너무나 쉽게 종료. 친정아빠가 알았더라면 우선적으로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하지도 못한 채, 정말 불같이 화를 내고도 어떻게 더 감당했어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친정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차분히 대처해주는 사위의 모습에 놀라고, 그 와중에도 춥다고 손에 따뜻한 군고구마까지 쥐어주는 남편을 둔 나에게 연신 부러움 그 이상의 눈빛을 보냈다. 친정엄마를 모셔드리고 귀가한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들 때문에 나는 엄마가 느낀 이 사람에 대한 감정 그 이상을 또 한 번 느꼈다.



"여보~ 아까 수리업체 전화하니까, 이게 엔진 전체를 교체해야 해서 생각보다 큰 수리더라. 생각보다 비용이 꽤 나올 거 같아. 어머니 놀래실까 봐 많이 나올 거 같진 않다고 했는데. 400만 원이 좀 넘을 거 같아. 아버님 아시면 어머니까지 너무 힘드실 테니까, 어머님께 돈 얘기는 하지 마. 우리가 딴 데 아끼자. 혹시나 마음 불편하셔서 비용 주시려고 하는 분위기면, 그냥 당신이 적당히 조금만 얘기해."



"그리고 아까 너무 놀래실까 봐 말씀 안 드렸는데 차종에 맞지 않는 주유를 하고 고속도로 달리는 거 정말 위험할 수 있었던 건데 너무 다행이야."


친정엄마는 그날 이후 너무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자다가도 속상해서 깼다고 하셨다. 그나마 그 속에서도 따뜻한 군고구마 건네주던 사위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고 하셨다.



'엄마.... 진짜 수리비 알면 엄마 진짜 잠 못 잘걸...?'



그 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너무 비쌌고,

군고구마는 정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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