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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가창오리, 그 날갯짓

by 규아

비명 소리 같은 게 연이어 터졌다. 하나의 울음이 아니었다. 수천의 소리가 겹쳐지며 하늘이 울렸다. 그녀는 잠시 두려움을 거두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 위로 검은 점들이 흩어졌다 모였다. 파도처럼 일렁거리며 때로는 범고래가 되고, 때로는 거대한 배가 되어 노을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감탄만 흘러나올 뿐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숨을 삼키는 순간, 택시기사가 말했다. "가창오리에요.” "아, 그래요?" 그녀는 눈을 떼지 못한 채 건성으로 답했다. 기사가 웃으며 덧붙였다. "군산사람 아닌가 봐요? 이곳에서 가창오리 군무는 찬 바람이 불면 꼭 보게 되거든요.”


군산사람 아닌가 봐요…. 그 말끝이 걸렸다. ‘나, 군산사람 맞나?’ 이곳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고, 엄마의 아빠,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대대로 군산에 뿌리를 두었건만, 정작 그녀는 이 도시를 모른다. 군산은 늘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군산이 없으면 그녀의 어린 시절도, 그녀 자신도 없다. 군산은 그녀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중학교 때 떠난 이곳에 23년 만에 돌아왔다. 세상살이에 버티다가 탈탈 털리고 결국 다시 밀려온 고향. 무언가 될 줄 알고 떠났지만 지켜야 할 것마저 잃었다. 인내로 버텨온 결혼의 끝에 남은 건 빚과 두 아이뿐이었다. 차를 팔고, 집을 팔고, 마음마저 내다 팔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알간 눈빛이 영혼만은 지켜주었다.


그녀의 앞날은 저 멀리 보이는 서해 바다처럼 탁했다. 비릿한 바닷바람이 그녀의 희끗한 머리칼과 화장기 없는 얼굴을 매만졌다. 바람 속 묻어있는 짠 내에 묵은 체증이 조금은 내려앉았다. 그녀는 잠시 바람에 기댔다.

아직 낯선 새집이 답답한 그녀는 휴일이면 기억의 장소를 찾아 밖으로 나섰다. 그날도 아이 둘을 데리고 금강하구둑의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바이킹이 오르내릴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하늘을 가르며 터졌다. 잠시 후, 아이들은 낯선 아이를 데리고 왔다. “엄마, 친구 생겼어! 저 애도 아빠랑만 왔데.” 동지를 만난 듯한 눈동자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함께였다. 그녀는 아이들이 느꼈을 이질감에 마음이 저렸다.


아빠라며 낯선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중년 남자. 그 스산한 모습에서 그녀는 자신의 그림자를 봤다. 눈이 마주치자 둘 다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택시가 안 잡히면 어쩌지.’ 갑자기 초조해졌다. “얘들아, 그만 가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거칠게 나왔다. ‘운전 못 하는 무능함을 어디에 풀고 있는 거야' 자책에 마음이 더 어수선해졌다.


겨우 잡은 택시 안, 히터의 열기가 공기를 눌렀다. 백미러로 흘끔거리는 기사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차도 없이 애들만 데리고 여기까지 왔네.’, ‘남편은 없나?’ 눈빛이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조사받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죄가 탄로 날 것 같아 빨리 내리고 싶어졌다.


그때, 그 소리가 들렸다. 비명처럼 터지는 울음. 아니 가창오리의 노랫소리였다. 수십만 마리의 새들이 점이 되고, 선이 되고, 하늘 위에서 면을 이루며 커다란 무언가가 되었다. 그 무리는 바람을 따라 흐르며 노을을 덮었다.


그 소리가 가슴 깊은 곳을 흔들었다. 어딘가 살 곳을 향해 날아가는 가창오리. 떠나기 싫어서 저리 우는 걸까. 빈손으로 돌아올 걸 알면서도 왜 가는 걸까. 그녀도 저렇게 떠났었다. 하지만 결국 바람이 이끄는 대로 돌아왔다.


가창오리 떼의 장엄한 검은 파도가 하늘에서 밀려온다. 그 기세가 닫혀있던 가슴을 쿵, 쿵 두드려댄다. 막혔던 무언가가 미세하게 열리는 듯하다. 그 틈에 주저앉았던 날개가 잠시 파닥인다. "내리세요, 다 왔어요."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다. 몇 번이나 불렀는데 듣지 못했나 보다. 아이들의 검은 눈동자가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집에 들어섰어도 가창오리 떼는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에서 흩날렸다. 밀물로 우우 몰려왔다가 다시 썰물이 되어 싸아 밀려간다. 쓰렸다가 간질거리다가 콩당 댄다. 눈물이 맺혔다 사그라들다 다시 맺힌다.


살아야 한다. 살려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몸서리가 나고 옴짝달싹 못하는 위협이 다가오더라도…. 텃세 부리는 주둥이에 털이 뽑히고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멈출 수 없다. 엄마 가창오리는 주저앉아 울 시간이 없다. 길을 잃어선, 벗어나선 안된다.


저 멀리 날아간 가창오리가 그녀의 가슴팍에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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