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밥 한그릇 에세이집
밥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끼니때마다 똑같은 밥상을 받아도, 그 안에는 매번 다른 마음이 담긴다. 서러움이 스며 있고, 생채기가 남으며, 그리움이 묻어난다. 밥은 밥 그 이상이다.
에세이집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에는 작가들의 사연이 깃든 밥상이 차려 있다. 책을 선택할 때는 제목과 박완서 작가의 이름에 끌렸는데, 결국 마음을 빼앗긴 것은 신경숙 작가의 「어머니를 위하여」 였다. 정갈한 기름 냄새보다는 소박한 시골 내음이 더 좋았다.
신경숙 작가는 예전엔 “사람은 어렸을 때 먹은 음식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그 말이 맞다고 한다. 많은 감자요리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감자는, 어렸을 때 먹었던 삶은 알감자라고 말을 꺼낸다. 아무리 비싼 음식도 어머니가 여름 내내 끓여주던 호박된장국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며 가장 원초적인 맛이 최고라고 추켜세운다.
작가가 어렸을 때 먹은 그 맛은, 그대로의 것에 가장 가까운 ‘맨얼굴 같은 맛’이다. 손이 덜 가고 멋스럽지도 않은 맛. 어머니가 뒤란에서 바로 따온 애호박에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 끓여낸 된장국처럼 말이다. 요즘은 땅에서 떠나 손에 닿기까지의 나물이 제맛을 다 잃어버린다며 아쉬워한다. 특히나 비닐에 담겨 슈퍼의 냉장 진열대에 놓여있는 동안에 말이다. 그는 어렸을 때 먹은 금방 뜯어온 원초적인 맛에 곁들여진 어머니의 손맛은 수많은 양념이 따라올 수가 없다고 애석해한다.
작가는 시골에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계절에 따라 먹을 것이 바뀌는 것을 감각 있게 풀어간다. 고구마꽝의 고구마, 무꽝의 무가가 바닥나는 것이 봄이고, 달디단 물고구마를 까먹는 게 겨울이라고 했다. 무꽝의 무가 바람들면 어머니는 봄을 기다렸다고 한다. 여름날에는 텃밭에 주렁주렁 달린 채소를 뜯어다가 마루에 차려놓고 이웃들과 함께 보리밥을 쓱쓱 비벼 먹었다. 어느 날 작가는 식당에서 깡된장에 보리밥을 먹는 동안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났다며 이런 표현을 했다. “나는 지금, 어린 시절을 먹고 있었다.”
한편, 결혼 전에는 음식 재료들을 씻고 다지고 썰고 찧어 이것저것 만드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고 한다. 두부에 칼이 들어가는 순간의 느낌은 얼마나 부드럽고 아슬아슬한가, 뜨거운 물에 산낙지를 데치는 순간은 또 얼마나 긴장되고 오싹한가라는 표현으로 요리하는 짜릿함을 전한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이 기쁨을 잃어버렸다고. 매일 밥상을 차려야 하는 처지가 되니 음식이 노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묵묵히 파를 썰거나 마늘을 찧는 노동을 하다 보면 생각나는 어머니. 작가는 어머니가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가족에게 먹이는 일로 전 생애를 보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음식 만들기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 희생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복받칠 때가 있다고 한다. 작가는 어머니가 더 늙기 전에 오로지 어머니만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