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초기 저는 스웨덴의 이야기를 주로 접했고, 때문에 그때 코로나에 대해 접하며 가지게 된 생각이 화석처럼 박혀서 한국에서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아직도 왜 코로나에 걸리면 증상이 없어도 무조건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고(어떤 분은 "구치소"에 비유해서 "생치소"로 표현하더군요.),카페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는 건 넘어가는데 실외 마스크는 왜 집착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고,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 그 동선을 공개해달라는 요구가 입주자 대표회의라는 곳에 정식 안건으로까지 올라가서 그분께서 주변의 어떤 식당에 들렀는지 등이 공개되는 상황에 대해 이해를 못했습니다.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때부터 한국에 쭉 있었고 한국의 정보만 접했다면 지금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까요?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대응은 한국이 더 뛰어났고, 이는 지금 인구 대비 사망자 수치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간단한 질병이든 안 걸리면 좋긴 하지요. 감기도 안 걸리면 좋긴 합니다.
코로나같이 조금 더 심각한 질병이면 "확진자 0"이 이상적인 상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바이러스 제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치가 필요하고, 그 조치들의 비용이 확진자 0을 만드는 편익보다 클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 들어볼까요? 확진자 0을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일정 기간동안 집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가둔다고 합시다.
이것이 성공할지 여부조차 모르겠지만(성공하려면, 학교나 직장 폐쇄 등에 더하여, 혹시 거기서 아프거나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도 "예외는 없다"라며 계속 가둬야겠죠. 그런데 그 가두는 경찰이나 군인이 감염되면 또 어떻게 될까요? 사실 확진자 0은 지금처럼 많은 확진자가 있을 때는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만약 성공해서 확진자 0이 된다고 할지라도, 확진자 0의 편익이 이 조치에서 오는 비용, 가령 사람들이 굶어 죽고 아파서 죽고 등등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확진자 0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영원히 팬데믹에서 살아야할지도 모릅니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에서도 계속해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백신 맞는다고 확진자가 마법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 확진자가 아니라 사망자 수 중심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하루아침에 전환되지는 않기 때문에, 정부와 언론이 전환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나 언론도 "확진자 제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군요.)
확진자 0을 위해서는 비용이 너무 큽니다. 아무런 통제를 안해도(주황색) 비용이 너무 큽니다. 의료체계의 포화를 막는 수준에서 지속가능한 "커브 평평하게 하기"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히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고령층 등 고위험군이 보호받기 시작하고 있는 지금,
코로나 통제의 상대적 편익이 작아졌습니다.
가령, "4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동일한 조치가 가지는 효용이 예전에는 하루 30명의 사망을 줄일 수 있었다면,
지금은 하루 3명의 사망을 줄이는 효과만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물론 생명 하나하나는 소중합니다. 3명이 아니라 1명의 목숨도 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늙어서 사망하든, 교통사고로 사망하든, 코로나19로 사망하든 모든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지나치게 비정하게 들리신다면, 독감을 한 번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2천 명정도 발생한다고 하는데요,
우리는 겨울에 독감이 유행한다고 봉쇄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독감은 코로나보다 치사율이 낮기 때문에 통제조치가 없으면 사망자는 폭증할 것이고, 지금까지 각종 봉쇄조치를 통해 겨우 독감과 유사한 수준의 사망자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백신 접종 덕분에 코로나 또한 치사율이 백신접종자를 대상으로는 의미있는 수준까지 내려갔습니다.
즉, 백신이라는 무기가 생겼기 때문에, 통제조치를 조금은 완화해도 독감 수준의 사망자를 유지할 수있을 것입니다.
즉, 사망자 0이면 이상적인 상태이기는 하겠으나, 현실적으로 그게 불가능하다면 독감 수준의 사망자를 내는 정도에서 방역조치를 타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젊은 층을 포함한 모두가 백신을 맞기 전까지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40대까지의 치명률은 사실 코로나나 독감이나 아주 확률이 낮다는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50대 위험층까지 백신 접종이 완료된 이후에는 독감과 비슷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80대 이상 돌파사망률은 0.7(0.007은 오타)%로, 미접종자를 포함한 18.04%보다 훨씬 낮습니다. 백신접종의 효과는 명확합니다. 자료 종합하여 직접 작성.
아직까지 위험층까지 백신이 닿지 못했기 때문에 독감과 비슷하게 관리하는 것(즉, 모든 사회적 거리두기를 풀고 예방접종에나 확진자 격리 등에만 의존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지금과 같은 강력한 통제조치가 지속가능한지는 생각해야 합니다.
(좌) 스웨덴-한국 인구비례 확진자 수, (우) 스웨덴-한국 인구비례 사망자 수
스웨덴 방역정책과 우리나라의 비교. 유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우리나라에 비해 통제가 훨씬 약합니다. 자료 종합하여 직접 작성.
가령, 스웨덴은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가 매우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완화된 조치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해당 조치는 7월 1일에 대부분이 완화되었고, 일부 세부적 조치가 7월 15일부터 추가로 완화되었습니다. 완화 이후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수는 안정적인 상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난 시간동안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1년 반동안 집안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받았으며, 모임을 최소화하고 약속을 줄여달라고 요청받았습니다.
학교는 폐쇄되어 있습니다.
이때문에 자영업자는 괴로움에 신음하고 있고,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유아 또한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밟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대가를 치루며, 더 이상 이렇게는 못버티겠다고 탈출하는 사람이 생기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층은 본인에게는 위협이 될 확률이 아주 낮은 질병이지만 공공보건을 위해 희생하고 있으며, 때문에 그들은 "합리적으로" 통제조치를 위반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합리적인 판단에는 사회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합리적이지만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그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