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9년 차, 우리가 놓친 건 사랑이 아니라 ‘우리’였다
결혼식 날, 한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
“신부가 많이 웃으면, 아기가 금방 생긴대요.”
그땐 ‘에이, 설마’ 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웬걸, 정말 허니문 베이비가 찾아왔다.
놀랄 노(驚)에, 웃을 희(笑)였다.
사실 나는 결혼 전,
책임지는 삶이 두려워 딩크(DINK)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이는 반가움보다 혼란이 컸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부부로는 10개월,
부모로는 9년째 살아가고 있다.
부부로 살아가는 길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서로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부모로 살아온 9년 동안,
그 ‘남과 여’의 마음이 점점 옅어진 것 같다.
아침이면 눈뜨자마자 서로를 살필 여유도 없이,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아이 등원 전쟁을 치른다.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큰아이를 픽업하고, 막내를 데리러 가고,
놀이터에서 땀을 흘리고, 목욕을 시키면
마치 PT 두 시간을 받은 듯 녹초가 된다.
그 몸으로 저녁을 차리면 남편이 퇴근해 돌아온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나는 큰아이 숙제를 봐주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진다.
남편의 하루도 다르지 않다.
지옥철을 뚫고 돌아온 집은 늘 전쟁터다.
아이들은 벌거벗고 뛰어다니고, 나는 인상을 쓰고 무언가를 지시하고, 식탁은 분주하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 이제 좀 쉬나 싶지만,
좀비처럼 에너지가 부활한 두 아이가 “놀아줘!”를 외친다.
막내를 재우는 데 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나는 휴대폰을 붙들고 조용히 숨을 고른다.
남편도 게임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챙긴다.
이렇게 우리는, 부부보다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팀원’처럼 하루를 버틴다.
함께 있는 시간보다 따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편하다. 그런데, 조금 아쉽다.
이대로 편해져도 괜찮은 걸까?
노력을 해야 하는 건 알지만,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한쪽의 방식에만 맞춰주는 게 건강한 관계일까?
짧게나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설렘이 그리운 건 아니다.
다만 부모로만 사는 시간이 너무 빨리 온 것 같아,
서로의 얼굴을 다시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오늘, 최근의 우리보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눴다.
그게 지금의 나에겐 작은 기적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