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랑 같이 밖에 나가줄 수 있어?
바람 많이 불어서 시원해.”
지금 시각 저녁 8시 10분.
39개월 막둥이가 집순이 엄마를 꼬신다.
사실, 이렇게 말하기 전에도 요구는 많았다.
한 시간 전, 형아가 친구들과 나가는 걸 보고는
참을 수 없었나 보다.
“나도 나가고 싶다.
팬티 주세요. 바지 입었어요.
자전거 타고 싶다. 킥보드 타고 싶다.
놀이터 가고 싶다.”
밖에 나가기 위해 쏟아내는 말들.
듣고 있으면,
내 속은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이 싸우는
전쟁터가 된다.
십중팔구는 나가주지만…
그중 대부분은 남편이 간다.
아이들의 요구를 웬만하면 들어주는 편이지만,
들어주면서 화를 낼 때가 많았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웬만하면 들어주는 편’이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거절할 용기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거절 후 아이들의 감정을 받아낼 힘이.
한계에 다다른 걸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해 결국 내 힘듦을 아이에게 풀어버리는 것.
그건 해주고도 기분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요구사항을 먼저 듣고,
나름의 우선순위를 세운다.
“엄마가 이거하고 있어서 지금은 어려워.
조금 기다려줄래? 하던 거 다 하고 해 줄게.”
거절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어찌하겠는가 떼쓰고 우는 그 꼬락서니를
견뎌내야지.
수용만이 답은 아니었다.
제한과 정당한 거절은
오히려 서로에게 안전함을 준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진통은 있지만, 이 과정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