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마음을 가장 잘 다독여줄 수 있는 일이 나에게는 아무래도 글쓰기인 것 같다. 브런치를 시작했던 시점도 그랬다. 어린 시절의 결핍과 지금의 나를 연결시켜보는 작업을 하고 있던 때였고, 이 정도면 더 버틸 수 있겠다 싶던 사업을 급작스럽게 접었던 때이기도 했다. 당시 내 마음 속 가장 큰 화두가 되었던 그 두가지 주제로 브런치북을 만들어 연재를 시작했고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되어 주었으니까.
그러다 12월 3일이 찾아왔다. 그 날의 사건은 비록 위태했으나 겉보기엔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던 일상까지 온통 휘저어 놓았다. 글을 쓸 마음의 여유는 턱없이 부족했고 내 촉수는 나의 안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온갖 가능성들에 닿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렇게 몇주가 흘렀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마음 속 묵직한 얼룩이었던 두가지 이야기는 이미 색이 바래고 힘을 잃어버렸다. 글을 써나가는 동안 어느 정도 답을 얻었던 까닭이기도 했고 때가 지나 관심이 옅어져 버린 탓도 있었다. 계속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어보였다. 연재를 중단하고 싶었다.
물론 일상이 세차게 흔들렸던 그 시간 동안 내가 넋을 놓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먹고 살아야 했다. 사업을 하면서 받았던 그 많은 대출과 사업을 놓으면서 없어져버린 벌이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 목전에 있었다. 각종 지원금을 알아보고 채무조정에 들어가고 소위 땡처리로 재고정리를 하는 한편, 앞날을 보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취업이나 창업 구상을 하는 등의 일도 나의 일상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사실 버거웠다. 이런 저런 잔병치레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 정도면 살만큼 살았고 하고 싶은 일도 다 해봤잖아. 누군가 나에게 고통 없는 끝맺음을 선사하겠다고 제안한다며 오케이.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살아있는 한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다. 발을 질질 끌며 어거지로 걸어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었다. 뭔가 돌파구 같은 것이 필요했다. 그게 글을 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 건 며칠 전이었다.
누구나 가끔 어이없는 바보가 되곤 한다. 나는 글쓰는 일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 일에서 손을 떼고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잠시 뜸을 들인 뒤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연재하던 두가지의 이야기를 미련없이 삭제했다.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기로 했다. 50살이 되어서야 이전과는 영판 다른 삶을 살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 다름이 가져다주는 자족감 보다는 궁핍함이 점점 더 커져가고만 있는 나의 상황을 이야기로 담아내고 싶었다. 지난 5년 동안 내 주변의 다른 50대들처럼 살지 못했고 여전히 그러한 나의 모습을 글에 비추어보고 싶었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어떤 모습으로 빚어지고 열려갈 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부정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벌레만한 가능성이 날개를 펼친 새가 되는 해피엔딩을 움켜쥐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되든 간에. 나의 발자국은 항상 지금 이 순간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 자취를 기록하는 일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진실을 흐릿한 눈으로 대충 보고 지나치지 않도록 해줄 것만 같다. 아마 그 짐작이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