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5.7-8

by 하린

분노를 표출할 대상은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나의 죽음에 직렬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 플랫폼이 안겨준 억울함은 두 가지 종류의 것이었다. 하나는 피해자인 나의 정당한 리액션을 ‘분쟁’의 시발점으로 놓고 사실상 ‘가해자’ 취급을 했다는 점. 플랫폼이 사용자들 간의 분쟁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잘 알겠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에 그들은 관심이 없을 만도 하다. 원활하게 지갑을 불려 나가려면 그런 것들은 얼굴 주변을 맴도는 날파리 같은 존재일 뿐일 것이다. 손바닥으로 내리쳐 삭제해버려야 하는.


두 번째는 요청인에게 견적을 보낼 때 계약이 성사되든 말든 일정한 금액을 지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 금액은 플랫폼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일단 적절하고 정확한 기준이 있기는 한 건지, 운영자들 조차 알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랜덤 한 느낌을 주는 금액 산정은 플랫폼에 문의를 한 뒤에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아니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 금액이 나의 경우 작업이 이루어져서 벌어들이는 노동력의 대가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때로는 1490원 때로는 2430원 때로는 3650원인, 단지 견적을 보내는 데만 드는 돈은 일주일에 30만 원이 넘곤 했다. 어떤 중개가 계약이 성사되지도 않은 일에 중개료를 받는가? 이건 명확히 정상적인 중개 수수료의 개념을 부당하게 뛰어넘는 독점의 횡포다. 벼룩의 간을 내어서 배를 불리는 기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를 준비하던 나는 일순간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지는 시점을 맞이했다. 지쳤다. 세상과 싸우는 일이 더 이상 삶의 의욕을 부추기지 못했다. 나의 보잘것없는 전투력은 거기까지였다.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과 부당함이 한 자리에 고였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은 나는 접시물에 코를 박듯 앞으로 꼬꾸라져버렸다. 전적으로 자발적인 행위였을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나의 등을 손가락 하나를 튕겨 밀어버린 트리거는 죄가 없을까? 대한민국 거대 플랫폼들은 참으로 해괴하다. 노동자를 기생하도록 만들면서 그들의 고혈로 배를 불린다. 나는 이제 기생하기를 멈춘다. 그들의 배가 부르다 못해 찢어져 내장이 튀어나오기를 염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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