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이 얘기 들었어?”
“뭐? 왜?”
“죽었대…”
“어??”
“자살했대”
“왜…?”
“나도 몰라. 근데 경제적으로 어려웠나 봐. “
내가 알던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몇 개월 전에 나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를 끊었다. 대학 때부터 나름 끈끈하게 엮여 있었던 이들과도 모두 단절을 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이제 나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화를 원하는 나의 욕구와 맞닿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원래부터 그랬을 수도 있다. 내가 더 이상 좋게 좋게 넘어가고 싶지 않아 졌을 뿐. 나이가 먹을수록 자기 얘기만 늘어놓고 싶어 진다고 하던가. 나는 그게 싫었다. 핑퐁이 되는 대화가 필요했다. 그게 없이는 인간관계라는 것 자체가 부질없었다. 부질없는 것들은 내 주위에 점점 늘어만 가는 판이니 잘라낼 수 있는 부분은 잘라내고 싶었다. 후련하고 개운했다. 어쩌면 일종의 화풀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필요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가시덤불 같은 내 삶을 가지치기하며 정리해 나가야 했다. 물론 정리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덤불 속 가시들은 하나가 잘려나가면 다른 쪽에서 또 하나가 솟아나는 형국이었다. 파산 역시 그래 보였다. 그래서. 빚이 없어지면 살아갈 만할까? 거듭 자문했다. 그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상대적이라는 방어벽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만큼 절대적으로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나이를 앞두고 있었다. 얼마큼을 더 숨쉬기 위해 버티려고 아등바등해야 할까.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삶은 고(苦)라는 격언은 너무나 가치중립적이라 공정하지 않다. 삶은 불평등하다. 누구에게나 고(苦)라는 성찰은 일면 타당하나 추상 수준이 너무 높아서 말하자면 실용적이지 않다. 삶은 누구에게는 견딜 수 없고 누구에게는 그저 그렇게 지낼만하며 누구에게는 즐거운 때가 심심찮게 많은 각자의 터전이다. 나에게 삶은 들판을 걷다 장맛비를 만나고 수렁으로 발을 헛디뎌 그 속으로 쉼 없이 빠져들어가던 곳이었다. 내 노력이 부족했을까? 긍정적인 사고가 빈약했을까? 따지고 싶지 않다. 이제 와서.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말 한마디만 하자면. 할 만큼은 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다. 할 만큼 해보는 것. 그래서 미련도 없다. 살아봤으니 됐다. 손 탁탁 털고 발을 떼는 데 거리낌도 없다. 그래서 마지막은 짧게. 단편소설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더 짧게 인사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