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또 한 번, 엄마.

행복에는 늘 댓가가 따른다.

by 온오프

결과는 음성이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간 감정이

아이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안도감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내일 예정대로 출산할 수 있겠구나.”

그게 내가 느낀 ‘다행’의 첫번째 이유였다.


남편도 미리 출산휴가를 다 신청해두었고,

내 입원 기간 동안 첫째를 돌봐주실 시부모님도

일정을 조정해 연차를 이미 보고해둔 상황이었다.

마치 도미노처럼 맞물린 계획들이 모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그때는 더 크게 다가왔다.

‘이 모든 일들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안도감.

그 감정이 나를 스스로 ‘나쁜 엄마’라 낙인찍게 만들었다.


열 때문에 힘들었는지

아이는 숨을 쌔액- 쌔액-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작은 가슴과

땀에 젖은 옆머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더 뜨거워졌다.


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네게 난 상처가 내 상처보다 더 아팠을 때,

나는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았었다.

네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도,

잠결에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작은 손이 떨리며 내 품에 안길 때도.

나는 항상 그 순간 깨닫곤 했다.

“아, 이게 사랑이구나.”

그래서 지금처럼

네가 열로 지쳐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때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저절로 떠오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분명, 이건 사랑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너만큼이나 내일의 나를 걱정했다.

출산 일정이 틀어질까 봐,

또다시 병실 생활을 하게 될까 봐,

이미 준비해둔 계획들이 모두 어그러질까 봐.

아이의 아픔보다 내 앞날을 먼저 떠올린 나.

어쩌면 이것은

너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조금은 이기적인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목 끝이 아릿해졌다.



밤새 간호한 덕분에 아이의 열은 기적처럼 내렸다.

하지만 아이를 두고 가는 발걸음은,

열이 내린 사실과는 상관없이 끔찍할 만큼 무거웠다.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지

눈이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따끔거릴 정도였다.

눈의 피로와 함께 마음도 같이 따끔거렸다.


나는 시큰거리는 코끝을 찡그리며

아이를 한 번, 아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꼭 안아보았다.

놓고 싶지 않았다.

단지 며칠의 이별일 뿐인데

왜 이렇게 천년의 이별처럼 느껴질까.


이별이 무엇인지,

헤어지는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모를 그 맑은 눈의 아이는

"엄마 금방 올게."

내 목소리에 묻어나는 떨림도,

숨겨보려 한 눈물도 모른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순간, 나보다 더 단단하고 의젓해 보였다.

이제 막 돌이 지난 그 어린 아이가

어쩌면 나보다 더 용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나서기 직전

또다시 돌아보아 아이의 얼굴을 눈에 새겼다.

작고 따뜻한 그 존재를 두고 병원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세상의 어떤 길보다 길고 잔인했다.


2021년 8월 30일,

나는 첫 아이를 품에 안았고

그날 세계가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보였다.

그리고 2022년 9월 22일,

나는 다시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곳에 누워, 다시 한번 나는 엄마가 될 준비를 했다.

기나긴 진통 끝에,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순간을

견디고 또 견디어

나는 둘째를 마주했다.

세상에서 가장 낯설지만,

동시에 가장 익숙한 얼굴.

기적은 그렇게 또 한번 나를 찾아왔다.



첫째를 출산했을 때 나는

믿기지 않을 만큼 회복이 빨랐다.

출산 직후인데도 몸이 가뿐했고

기력이 금방 돌아왔다.

무엇보다, 그 작은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이가 너—무 예뻤다.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그때의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면 둘째도 낳을 수 있겠다.

아, 셋째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심지어 농담처럼 넷째까지도 떠올렸다.

그래서 둘째 출산은 두렵지 않았다.


진통이 날카롭고

근육과 뼈 사이를 찢는 듯한 고통일지라도

그 끝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존재와의 아름다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진통은 고통의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를 맞이하는 과정이라는 걸.

그 행복을 향해

나는 내 몸이 허락하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숨이 끊어질 듯 견디고 또 견디며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순간에도

딱 하나의 생각만 했다.

“이 아기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 출산의 끝에서

나는 또 한 번 사랑에 빠졌다.


아름다웠다.
분명 두 번째 겪는 일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익숙해지고, 덤덤해지고,

첫 번째 때만큼의 벅참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만큼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같은 장면인데도 전혀 같지 않았다.


작고 따뜻한 몸이 내 품 안에서 꿈틀거리는 그 순간,
새로운 생명의 체온이 피부를 통해 가슴으로 번져오는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처음이 되었다.

이 아이를 처음 만난 것처럼
내 가슴이 처음으로 사랑을 배운 것처럼.

아이를 품는 일은
몇 번을 다시 겪는다 해도
늘 새롭고, 늘 따뜻하고,
늘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다.


마치 눈부신 햇살 한 줌이
내 가슴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느낌.
가늘고 따뜻한 빛들이 심장을 두드리고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환하게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또 믿게 되었다.

사랑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은 나누면 줄어드는 게 아니라
확장되고, 넓어지고, 더 깊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엄마가 되었다.

keyword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