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채움이 있는 공간을 꿈꾸다.
나는 누가 봐도 외향형이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 새로운 장소에 흥미를 느끼고 쉽게 잘 적응하며 헤어질 땐 반드시 모임을 만드는 사람. 결혼 전에는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모임을 만드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었고 그 즐거움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도 얻었다. 그땐 몰랐다. 누가 봐도 외향형인 내게도, 혼자 있는 시간, 내 안으로 잠시 숨어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람은 누구나 외향과 내향의 절묘한 조화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아마도 결혼 전에는 내 방, 즉 내 공간이 따로 있었으므로 굳이 어딘가로 숨어들지 않아도 외부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땐 자연스레 채워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결혼하고 특히 아이가 생긴 후에는 내게도 절실하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외향형 인간이므로 그런 시간이 필요 없지 않을까? 오히려 외부에서 힘을 얻는 유형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아이들이 예쁘지 않다거나 하는 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엄마이기 앞서 나 자신의 에너지 효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가끔씩 미치도록 혼자이고 싶었다. 나의 에너지 탱크에는 엔코가 표시되며 자꾸만 빨간 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아마도 나의 에너지가 24시간 쉬지 않고 소비되고 있을 뿐 채워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엄마는 가끔 숨을 공간이 필요하다. 쉼과 채움을 이룰.'
결혼하고 첫 집을 꾸밀 때, 방 하나는 내 서재로 꾸몄다. 편안한 의자와 노트북, 책을 놓기 좋은 크기의 책상, 베이지 색의 커튼을 드리워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꾸며 놓았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남편의 배려였다. 결혼 초에는 이 공간은 전적으로 내 공간이었다. 일과 관련된 책들을 읽기도 하고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기도 하면서 나를 쌓아가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다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가 생기길 바라게 되면서는 남편과 함께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보거나 임신에 관한 고민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고 아이가 생기자 그 방엔 아기 침대와 바운서가 설치되었다. 아이가 조금 자란 뒤에는 장난감 방이 되었다가 아이가 둘이 되고부턴 아이들 각 자의 방이 필요했으므로 자연스레 나의 서재는 사라졌다. 처음엔 기다리던 아이가 생긴 기쁨과 감동에 아이와 있는 시간들이 행복했고 아이에게 라면 무엇이든 다 주고픈 마음에 사라진 서재를 서운타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곧 아이가 달래도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날들이 찾아왔고 무엇을 해줘도 다 싫다고 말하는 '싫어 싫어' 시기가 왔고 미운 4살, 7살이 되면서 나는 그때마다 어디론가 숨어 들어가 숨을 고르고 싶었다.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었지만, 내가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너무나 좁았고 안타까워 읽고 또 읽고 이렇게도 적용해 보고 저렇게도 적용해 보았으나 다 소용없고 그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땐 조용히 호흡이라도 하고 나면 아이를 더 현명하게 대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수많은 엄마들이 그러할 것이다. 잠시 숨만이라도 돌리면 조금 나아진다는 걸 알고 있으나 그럴 공간도, 시간도 없다.
궁여지책으로 숨어든 공간이 부엌 식탁이었다. 부엌은 사방이 트인 거실에 있었으나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어둠이 내린 거실 한쪽 부엌의 전등 아래는 내 작은 쉼터이며 동굴이었다. 나는 그 식탁에서 낮에 있었던 상황들을 일기에 적었고 궁금했던 방법들에 대해 육아책을 찾아 읽었다. 그때 정말 많은 책을 읽었고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도왔고 그때부터 7년간 써 내려간 일기는 아이에게 책으로 만들어 물려주고 싶은 아이와 나의 기록이며 추억이다. 그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면, 육아 우울증으로 힘들었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지난 시간을 추억으로 긍정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혼자 읽고 정리하는 새벽 시간은 내게 소진되는 시간이 아니라 충전되는 시간, 다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에너지는 원을 그리며 순환해야 한다. 막힘없이 흘러가야 하지만, 밖으로만 흘러가도 안 되고 안으로만 응축돼도 안된다. 안에서는 밖으로, 밖에서는 안으로 신선하게 순환해야 한다.
엄마라고 무조건 줄 수만 있는 존재일까?
엄마도 에너지를 받아야 살고, 채워야 유지된다.
나는 그런 공간을 꿈꾸었다.
잠시 주기만 했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공간.
외부로부터 시달렸던 마음과 몸을 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
편안하고 아늑하게, 북적이는 인파로부터 나를 잠시 놓아둘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런 공간을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