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책을 안 읽었다. 아니, 못 읽었다. 내가 어릴 땐, '책' 구경하기 힘들었다. 집안 사정이 그랬고 동네가 그랬다. 그나마도 책을 볼 수 있었던 건 중고등 학생 시절 이후였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도서관이 곳곳에 세워지거나 어딜 가도 서점이 있는 그런 때는 아니었기에 책이 가까이 있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그렇다.
그러한 이유로 책을 본격적으로 본 것은 대학 때부터였다. 하지만 그땐 성적과 취업을 위한 독서였기에 전공 서적과 자기 계발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때의 독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수단적 독서가 아닌 책 자체를 즐기는 진정한 독서의 시작은 결혼과 함께 시작되었다. 알콩달콩 둘만의 시간으로도 모자랄 것 같은 시기인 신혼이 찐 독서의 발로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역시 사랑의 힘은 크다.
결혼 이후 책은 나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고 나의 모든 삶의 방향과 가치를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이 무얼 해도 재밌을 신혼 때 독서를 즐기기 시작한 건 꿈 때문이었다. 7-8살 무렵 꼭 한 번쯤 '좋은 엄마, 좋은 아빠'가 꿈이 되는 순간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 꿈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꿈들로 덮여 마음 한구석 깊숙이 들어가 있었나 보다. 결혼 즈음 다시 나타나 수많은 동화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처럼 나 역시 영원히 행복하고 싶었고 '행복한 가정, 좋은 아내, 좋은 엄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자연스레 그때의 책 주제는 '자기 이해'와 '타인이해'였다. 그러다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를 간절히 원할 때에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들로 넘어갔고 자연임신과 출산에 꽂혀 다양한 기법과 방법, 전통적 출산 등에 대한 책들을 읽었고 아이가 태어나고는 '더불어 살고 더불어 키우는' 육아법에 관한 책들로 이어졌다. 아이의 육아법에 관한 책들은 생각보다 정말 다양했고 아이의 발달과 행동특성, 그때마다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에 관한 책들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지식들이 가득해서 읽는 재미와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 재미에 빠져 새벽이 오는 줄 모르고 읽었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기다리며 읽었던 수많은 육아서를 토대로 내 아이도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고 '책 교육이 모든 학습에 가장 중요한 기초이며 가장 중요한 습관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기에 아이의 모든 성장기에 맞춰 다양하고도 많은 책을 읽혔다. 초점 책부터 시작하여 짧은 그림책, 깊이 있는 줄 책까지 책값만큼은 아끼지 않고 구입했고 그도 모자라 마르고 닳도록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빌려와 읽혔다. 그렇게 빌리고 산 책들은 집안 곳곳에 놓였는데, 거실 책상은 물론이고 탁자 위와 탁자 밑 러그 위에, 아이들이 잠드는 머리맡에, 거실과 화장실에,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모든 길목에 책이 있었다. 우리 집은 하나의 '작은 도서관'이 되었고 책은 아이와 나의 놀잇감이면서 지식의 창고였고 사회화를 위한 지혜의 보고였다.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이사할 때마다 이사비 외에 도서를 옮겨주는 비용을 추가로 더 지불해야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 참 즐겁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도 그렇고 다음 장이 궁금해서 목을 쭈욱 빼고 '그래서?'라고 묻는 것도 그렇고 책에 담긴 내용을 가지고 놀이로 연장할 때 신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이 그렇다. "엄마, 또 읽어줘. 3권만, 아니 2권만 더"하는 날이 많아 책 읽는 시간은 아이와 나에게 무척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우기 위해 아이의 책을 미리 읽어두었다. 아이에게 좋은 책인지 확인하고 더 재미있게 읽어줘야 할 부분을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이의 반응과 성장하는 모습들을 일기에 적기 시작했다. 그 일기가 쌓여 여섯 권, 일곱 권이 되었고 사람들은 쌓인 기록들을 보며 감탄했다.
어느 순간,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읽은 책과 아이 육아에 대해 기록해 보라는 권유를 했고 그 권유에 힘 입어 블로그를 열게 되었다. 하루하루 한 권, 한 권 책을 읽고 읽은 책들을 내 나름의 이야기로 정리하여 기록하게 되었고 그 기록은 나를 입증하는 도구가 되어 주었다.
기록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는 '읽는 사람'이 되었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네이밍 뒤에는 자신감이 따라왔고 나는 그 자신감으로 마을방송에 도전해 1년 전부터는 '책 소개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얼마나 구독자가 많으냐' 혹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느냐'는 내겐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내 행위가 쌓여 일이 되고 그 일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나의 성장과 그 성장의 기록들이 남겨진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의 가치는 누구나 다르니까.
그러다 이를 더 확장해서 사업이란 것을 고민할 때 나는 주저 없이 책이 중심이 되는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책이 있는 공간, 공유 서재 '향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