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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재 replay Sep 29. 2021

밥은 먹고 다니냐?







“그렇게밖에 말 못 해?”


마감 맞추느라 며칠 밤을  신경이 바늘처럼 뾰족할 때였다. 나는 그만 애처럼 고래고래 길거리 한복판에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책에 쓰일 폰트가 문제였다. 뒤늦게 1교가   책의 폰트의 설정을 바꿔야 한다고 하니 동료는

“대충 그냥 하자(예민한 척은).”


20 출판사에 다니던 초보 디자이너 시절, 책에 관해선 애인을 다시 사귈 기회보다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어른이 길 한복판에서 싸우다니, 낯 뜨거운 일이다.

일이 벌어진 직후 마주 보고 밥을 먹어야 하는 점심시간.

식당에는 앉았는데 도저히 같이 앉아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식당에서 나와 버렸다.     


배도 고프고 기분은 구질구질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만 눈물이 눈을 비집고 흘러나오려고 했다.  쫓아온 동료가 밥은 먹어야   아니냐며 달래 들어간 곳은 죽집이었다. 호박죽을 시켰다.

분명 먹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몇 수저 먹고 나니 뜨거운 돌덩어리가 누르는 것같이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괜찮아졌다. 노란빛의 적당히 달큰한 호박죽이 ‘괜찮아’ 나직이 소곤거리며 내 속을 달래주는 것 같다.     


“밥 안 먹어.”

어릴 때 잔뜩 화가 나 퉁퉁 불어 짜증 내는 내 모양을 보면 엄마는 곧잘 죽을 쒀 줬다. 어떤 일에 속상했는지 억울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위해 죽을 쑤어 주던 엄마 모습은 기억이 선명하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잘 체하던 나를 위해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나름의 위로였으리라. 엄마가 쒀준 죽을 먹고 나면 답답했던 마음이 달래져 내려가는 듯했다.    

 

결혼한 지금은 예전처럼 속상한 일이 생길  엄마 죽은 얻어먹지 못한다. 대신 죽집에서 호박죽을  온다.


괜찮다고, 내가    안다고 오늘치의 위로를 건네는 음식. 기운 내서 하루를  위로의 음식.   


당신도 그런 음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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